|올여름 대란템, 레인부츠
7월 한 달 동안 5일 빼고 내내 비가 온다는 이른바 ‘장마 괴담’이 돌았다. 기상청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역대급 비 소식에 장마철 특수 아이템들이 쏟아졌고, 그 최대 수혜자는 레인부츠가 되었다. 무신사, 29cm, W컨셉, 지그재그, 머스트잇 등 인기 패션 플랫폼에 의하면 올해 레인부츠 판매량은 전년대비 적게는 40%, 많게는 600% 이상 폭등했다. 최근 파산한 헌터(파산 소식과 함께 더 귀해졌다)부터 락피쉬, 문스타, 벤시몽, 어그, 크록스 등 레인부츠와 클로그로 유명한 브랜드들이 지금도 쇼핑 검색어 1, 2위를 다투며 그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80만 원대부터 250만 원대까지 혀를 내두르는 가격에도 없어서 못 산다는 보테가 베네타, 프라다, 발렌시아가, 샤넬 등 럭셔리 브랜드의 레인부츠들도 SNS 구매 인증숏과 함께 대란을 부추기고 있다.
사실 어떤 레인부츠도 괜찮다. 올여름 인기가 대단할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레인부츠는 본디 기능성 신발이므로, 특별한 디자인보다는 내가 신었을 때 편하고 좋은 게 훨씬 중요하다. 그럼에도 새로운 부츠가 필요하거나 새롭게 구매할 계획이라면 최신 트렌드를 참고하면 좋겠다. 작년에는 종아리 반 정도까지 오는 넉넉한 미디 부츠가 인기였다면 올해는 기장에서 양파전을 보인다. 승마용 부츠를 닮은 무릎 밑 길이의 일자핏 롱부츠와 발목을 살짝 덮는 앵클부츠가 대세. 어떤 옷차림에도 무난하고 세련된 멋을 드리우고 싶다면 검정 혹은 크림색의 매끈한 롱부츠를, 지금 가장 힙한 레인부츠를 신고 싶다면 워커 스타일의 앵클부츠를 주목한다. 설현과 세븐틴 정한의 레인부츠처럼, 투박한 아웃솔과 핑크, 옐로 등 생경한 컬러감까지 갖췄다면 더욱 힙하다.
레인부츠보다는 가벼운 클로그 샌들도 인기다. 의사들의 신발에서 개성 넘치는 멋쟁이들의 신발로 승승장구 중인 크록스와 그 뒤를 잇는 수많은 브랜드에서 다양한 디자인의 클로그를 쏟아내고 있다. 부츠 타입이 부담스럽다면 새로운 멋의 클로그를 신어보길. 플립플랍의 미끄러움을 보완한 밑창과 고무의 올록볼록 볼륨감, 빗속에서도 통통 튀는 화려한 색감이 트렌드를 주도한다.
다시 레인부츠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올여름은 어떻게 신어야 스타일리시해 보일까? 다음 두 가지 스타일링 공식이면 꽤 매력적인 요즘 레인 룩을 즐길 수 있다. 첫째, 산뜻한 프린트 의상을 적극 활용한다. 드레스면 제일 효과적이다. 드레스를 선택할 때는 프린트의 화려함과 레인부츠의 부피감을 고려해 너무 박시한 핏보다는 몸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는 핏을 고른다. 화사한 색감의 미니 드레스라면 가장 예쁜 선택이 될 것이다. 우중충한 날씨를 환기하는 발랄함에 레인부츠 위로 드러나는 다리를 길고 날씬하게 만드는 마법까지, 최고의 합을 드러낸다. 미니가 부담스럽다면 애매한 기장보다는 끌릴 듯한 맥시 기장을 추천한다. 여름의 이국적인 멋을 담은 프린트 맥시 드레스 사이로 슬쩍슬쩍 드러나는 레인부츠의 투박한 멋은 생각보다 더 드라마틱 하다.
한 벌로 된 프린트 셋업을 선택하는 것도 근사한 한 수다. 세트의 통일감을 묵직하게 잡아끄는 레인부츠는 프린트의 과함을 줄이는 동시에 스타일에 힘을 싣는다. 프린트 의상이 어렵게 느껴질 때는 포인트로 섞으면 쉽다. 시원한 스트라이프부터 강렬한 그래픽 프린트까지 상하의 중 하나를 프린트 의상으로 고른 후, 나머지 의상은 비슷한 톤 온 톤으로 맞춘다. 예를 들면 정유미처럼 새빨간 셔츠를 입고, 우산, 반바지, 레인부츠 등 나머지 아이템은 아이보리색으로 통일한다.
두 번째 공식은 흰색, 회색, 검은색의 무채색 톤에 집중한다. 요즘 멋쟁이들은 튈 거면 확실히 튀게, 아닐 바에는 시크한 ‘꾸안꾸’ 스타일로 오히려 힘을 뺀다. 후자에 해당되는 무채색톤 스타일링은 언제 어디서나 세련되면서도 힙한, 묘한 멋을 풍긴다. 투박한 레인부츠가 내는 멋 덕분인데, 올 블랙 룩부터 블랙 앤 화이트, 그레이 앤 블랙 등 무채색끼리의 차분한 배합으로 즐기는 레인 룩은 볼수록 매력적이다.
무채색톤 스타일링에 쇼츠, 미니스커트, 크롭 티셔츠, 민소매 톱 등 살갗을 드러내는 실루엣을 더하면 금세 Y2K 무드의 멋쁨이 살아난다. 헐렁한 팬츠를 매치해도 멋스러운데, 낙하산 팬츠를 닮은 패러슈트 팬츠와 트래킹 팬츠 등 요즘 유행인 고프 코어 룩 분위기의 디자인을 선택하면 빗속에서도 쿨하다. 게다가 이런 팬츠는 가볍고, 방수 효과도 좋다. 흰색 상의를 입고 싶을 때는 습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뽀송뽀송 혹은 사각사각 느낌의 면 소재를 고르는 것도 팁. 장마철의 축축함을 단번에 날려버린다.
|쿨하게, 윈드브레이커
으스스한 장마철에는 가벼운 아우터 한 벌이 꽤 요긴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추천하고 싶은 아이템은 바람막이, 즉 윈드브레이커다. 원래 러닝과 라이딩 등 바람을 가르는 스포츠와 레포츠를 즐길 때 입는 점퍼이지만, 90년대 스트리트 패션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힙한 무드도 지녔다. 초경량, 방수, 방풍 등 기능적인 면은 말할 것도 없고, 오락가락하는 실내외 온도에 맞게 지퍼로 입었다 벗었다, 돌돌 말아 가방에 쏙 보관하기에도 편하다. 걸치는 순간 분위기를 환기하는 스포티한 멋까지, 장마철에 진심 찰떡이다.
다만 습하고 더운 날씨 때문에 잘 골라야 한다. 몇 가지 주의점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건 부드럽고 가벼운 착용감. 윈드브레이커는 폴리에스터, 나일론, 고어텍스, 최근 시원한 촉감으로 급부상 중인 우븐 등 물과 땀에 강한 원단으로 만들어지는데, 여름철에는 입었을 때 덥지 않고 쾌적함이 감도는 소재감을 잘 확인해야 한다. 둘째, 윈드브레이커는 핏이 생명이다. 아무 데나 툭 걸치고 싶다면 오버핏을, 보다 힙하고 싶다면 박시한 핏의 크롭 기장을 추천한다. 크롭 디자인의 경우, 밑단을 스트링으로 조였다 풀었다 할 수 있다면 더 예쁘다. 한때 유행했던 일자핏에 허리에 스트링이 달린 롱 윈드브레이커는 요즘은 살짝 촌스럽다. 오히려 넉넉한 핏에 각이 잘 잡히는 도톰한 원단의 레인코트를 선택한다면 다양한 이너웨어와 함께 한결 폼 나는 연출을 즐길 수 있다.
컬러나 프린트는 취향대로 고른다. 스타일링 트렌드는 크게 두 가지인데, 옐로, 그린, 블루 등 화사하고 시원한 색감의 점퍼로 옷차림에 생기를 더하거나, 블랙 앤 화이트의 간결하고 묵직한 멋을 즐기거나. 포인트로 입겠다면 짧고 밝은 하의를 매치해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면 한결 경쾌하고 다리도 길어 보인다. 블랙 혹은 화이트 윈드브레이커도 대세인데, 하의와 레인부츠의 색감을 통일해 셋업 분위기를 살리면 빗속의 쿨한 멋쟁이로 변신한다.
꼭 윈드브레이커가 아니어도 괜찮다. 요즘 유행인 오버사이즈 셔츠를 아우터처럼 툭 걸치기만 해도 장마철 분위기가 산다. 셔츠 역시 거즈면, 리넨 같은 부드럽고 시원한 원단으로 선택하고 안에는 탱크톱이나 크롭 톱으로 여름의 멋을 얹는다. 커다란 후디, 아이스 데님 재킷, 메시 카디건 등 옷장에 있는 다양한 여름 아우터를 활용해도 좋으며, 마무리로 레인부츠까지 신으면 훨씬 스타일리시한 레인 룩이 완성된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다. 나만 없어, 레인부츠랑 윈드브레이커. 늦지 않았다. 지금도 온갖 쇼핑몰에서 장마철 특수를 노리는 레인템을 절찬리 판매 중이다. 더군다나 우리에겐 로켓 배송, 슈팅 배송, 스마일 배송 등등 빛보다 빠른 익일 배송이 있지 않은가. 내일이면 현관문 앞에 놓일 신상 레인템과 함께 비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신기한 마법이 펼쳐질 것이다.
글 박선영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