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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6

한지와 옻칠의 서정적 조우, 〈Su(m)im : 쓰임, 스밈〉

강정은 작가와 문경전통한지의 만남
전 세계가 한국 전통 종이 한지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 한지의 쓰임에 오롯이 집중한 〈Su(m)im : 쓰임, 스밈〉 전시가 지난 5월 23일부터 한지문화산업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 함께 한 강정은 작가는 한지와 옻칠의 아름다운 조화, 그리고 생태학적 중요성을 묘사하고 자연과 우리 인간의 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사유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강정은 작가가 표현한 한지의 '쓰임'과 '스밈'은 어떤 모습일까?
ⓒ피스피스

강정은 작가는 작품 소개에 앞서 닥나무의 섬유로 만드는 한지는 나무의 근육으로, 옻칠은 나무의 흐르는 피로 비유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캐스팅 기법을 활용해 공예와 전통적 재료 그리고 기술의 통합을 조명한다. 이는 현대 사회의 무분별한 소비와 그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비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함이다. 전통 재료와 공예의 지속 가능한 사용을 장려하는 이번 전시의 최종 목적은 관람객이 자연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에 있다.

ⓒ피스피스

특히 이번 〈Su(m)im : 쓰임, 스밈〉 전시에는 뛰어난 내구성과 수명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화재 복원지 문경전통한지*를 사용해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경전통한지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문화재 복원과 기록에도 사용되는 한지로, 작가는 이러한 전통적 재료들이 어떻게 작품에 스며들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지 이야기하고자한다. 공예와 전통 기술의 사용의 강조를 통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우리의 행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미래 세대를 위해 전통 방식을 보존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한다.

*문경전통한지
5대에 걸쳐 이여져 온 한지 제조장. 1955년부터 종이를 뜨기 시작한 4대 김삼식 지장(경북 무형문화재)과 함께 아들 김춘호 대표가 전수자로 가업을 잇는 중이다. 전통 손 뜨기 방식을 고수하며 문화재 보수용지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만화지, 책지, 탁본지 등을 생산한다.
메인 작품 아래에는 한지 제작에 쓰이는 도구와 관련 재료를 전시했다. 닥나무 씨앗, 피닥, 잘린 칼나무, 칼, 외발뜨기 판 등 ⓒ피스피스
상단 행잉에는 한지에 캐스팅된 공예 도구들, 하단 행잉에는 한지와 생옻칠에 캐스팅된 공예 도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피스피스
ⓒ피스피스

국내 공예 작가와 한지장의 만남을 장려한 한지문화산업센터의 〈Su(m)im : 쓰임, 스밈〉 전시는 한지와 옻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연과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선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금 한지에 주목해야 할까. ‘한국의 종이’라는 의미의 우리나라 전통 종이 한지韓紙. 선조들이 한 땀 한 땀 닥나무에서 채취해 13번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한지는 그 내구성이 뛰어나 세계적으로도 우수성을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아주 값진 전통문화유산이다. 2016년 이탈리아 공식 문화재 복원 용지 인증 시험을 통과한 이래로 다빈치 코드 작품 복원부터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의 성 프란체스코 친필 기도문 등 중요 문화재 5점 복원에 한지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지난 4월에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2023 한국 전통문화 페스티벌 : THAT’S KOREA’ 기간 동안 ‘전통한지의 우수성과 복원’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해 현지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과거에는 서양 유물 복원에는 주로 일본 화지가 사용되었는데 화지和紙의 내구성은 복원가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반면에 한지는 천년 세월을 거뜬히 견디는 내구성을 지닌 데다 천연 성분으로 만들어져 원작의 재질, 색상 등과도 조화를 잘 이룬다는 점이 현지 유물 복원가들을 매료시켰다.

ⓒ피스피스

공예 도구뿐 아니라 한지와 옻 재료의 특징을 보다 잘 묘사하기 위해 나무껍질을 한지에 캐스팅한 작품 역시 함께 만날 수 있다. 나무껍질 부위를 중심으로 옻이 번지는 모습을 연출한 다음, 그 주변으로는 한지 고유의 순백한 느낌을 자연스레 살릴 수 있도록 레이어링 했다. 이번 한지문화산업센터와 함께 한 전시를 통해 강정은 작가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와 그간 한지를 사용해 선보인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Interview with 강정은 작가

강정은 작가 프로필 | 사진 제공 : 강정은

― 작가님은 한 가지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잘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과감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습니다. 2021년 〈BUK-SU〉전시에서 ‘이중성’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지를 사용한 첫 작품을 선보인 바 있죠.

오래전부터 아티스트로써 친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느껴왔지만 실제로 체감하기란 쉽지 않았어요. 모두가 환경 위기를 직감하고 있으면서도 편리함과 욕망을 떨치지 못해 패스트 소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기술적인 대책만을 마냥 바라왔죠. 저 또한 전통 재료와 같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작품이라는 소비재를 만들어냈으니 마찬가지였고요. 그때 인간의 이기심을 표현하고자 했던 전시가 바로 전시였어요. 이때 취조실에서 쓰이는 거울로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옻칠을 칠흑같이 올린 한지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 위기를 거울과 상반되게 표현했습니다. 한지는 닥 섬유질이 살아있고 흡수력이 높은 재료인 만큼 옻칠을 올리면 올릴수록 빛까지 흡수해버릴 듯한 어둠을 머금거든요.

한지 위에 공예 도구를 캐스팅한 강정은 작가 작품 ⓒ피스피스

― 〈Su(m)im : 쓰임, 스밈〉에서는 공예에 사용되는 공예 도구를 한지에 캐스팅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전통 종이 한지 위로 옻이 아름답게 물들어 가며 조우하는 순간이 담긴 서정적 서사가 느껴지는데요. 해당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맨 처음 전시를 의뢰받았을 때 문경전통한지와 옻칠의 조화를 보여줄 수 있는 전시가 되었으면 한다는 요청이 있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이번 전시를 통해 한지의 특성을 보여주고 지금의 우리가 전통 재료를 마주하며 고민해 나가야 할 부분을 상기시키고자 했죠. 복원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해 기록되는 작업이잖아요. 이러한 ‘복원’ 방식을 ‘한지 캐스팅’이라는 방식으로 색다르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한지는 닥나무의 섬유질이고, 옻칠은 옻나무의 수액이죠.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근섬유와 피처럼 생명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거든요. 한지로 캐스팅된 도구들(창작물을 만들 때 사용되는 도구)은 인간의 소비문화가 생명과 밀접한 연결을 가지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았어요. 생명을 구성하는 한지와 옻칠, 그리고 캐스팅된 도구들과의 대조는 관객들에게 현대 소비문화가 어떻게 생명과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인식을 관객(창작자와 소비자)들에게 간접적으로 화두를 던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고요.

시리즈 작품 ⓒ피스피스

― 전시장에는 2022년 메종앤오브제(MAISON&OBJET)에서 선보인 작가님의 〈산, 풍경〉 시리즈도 함께 합니다. 한지의 투박한 결을 살려 산의 능선과 음영을 표현한 작품으로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산, 풍경〉은 국내여행 중 마음의 평안을 주었던 풍경을 떠올리며 작업한 시리즈에요. 옻칠로 염색한 한지를 유리 위에 중첩을 통해 겹겹이 쌓인 산자락을 표현했어요. 한지로 중첩한 산자락 위로 드리운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저도 모르게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해요. ‘모두 다 괜찮다’라는 다독임을 주는 듯하죠. 제가 실제로 그 풍경을 바라보며 느꼈던 ‘고요함’과 ‘위로’를 한지의 결과 질감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문화재 복원에 사용되었던 ‘문경전통한지’를 사용해 이번 전시 작품을 완성했어요. 작가님에게도 뜻깊은 작업이었을 텐데요.

문화재 복원 종이로 인정받은 문경전통한지와 저의 주 작업 재료인 옻칠을 사용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작업 기간 내내 문경전통한지 명성에 혹여나 누가 되지 않도록 신중하면서도 즐겁게 임했고요. 그와 동시에 전통 재료에 대해 우리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가 많음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는 작업 기간이 짧았던 탓에 아쉬움이 남지만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피스피스

― 평소에도 현대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쓰는 것’에 대해 고민하며 오브제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이번 전시 이후에 한지를 사용해 우리 일상 속에 사용되는 오브제, 사물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시도를 해보고 싶나요?

아직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새롭게 창조하는 작업보다는 일상 안에 이미 녹아든 물리적인 사물 혹은 개념에 대해 ‘복원’과 ‘기록’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Information

참여 작가 및 공방 Vonz 강정은 작가 & 문경전통한지

기획 메타포서울

디자인 아엘시즌

그래픽 김현지

사진 피스피스

하지영 기자

자료 제공 한지문화산업센터

프로젝트
〈Su(m)im : 쓰임, 스밈〉
장소
한지문화산업센터 1층 한지마루
주소
서울 종로구 북촌로 31-9
일자
2023.05.23 - 2023.07.02
시간
10:00 - 19:00
(매주 월요일 휴관)
하지영
에디터가 정의한 아름다운 순간과 장면을 포착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세상에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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