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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1

세계의 시선이 다시 백남준을 향하다

SFMOMA의 메이저 회고전.
백남준의 작품이 인상적인 점은 작가 생전의 최첨단 기술인 TV와 미디어를 주제로 함에도 작품에서 인간미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초호화 스케일의 작품에는 그에 걸맞는 전율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작은 TV 한 대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그의 따뜻한 휴머니즘이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서양인들이 느끼는 백남준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Nam June Paik, “Sistine Chapel,” 1993/2019 (installation view, SFMOMA); courtesy the Estate of Nam June Paik; ©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Andria Lo
Timm Rautert, “Nam June Paik lying among televisions,” Zürich, 1991; © Timm Rautert

 

이번 전시 “백남준 Nam June Paik” 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하 SFMOMA)과 런던 테이트 모던 Tate Modern이 함께 기획한 것으로 두 도시와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까지 순회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20년만에 열리는 백남준의 메이저 전시이자 미서부로서는 첫 대규모 회고전이 된다. 지금 이 시점, 세계의 이목이 다시 백남준에게 쏠리는 이유는 세계 최초 글로벌 아티스트로서 그의 면모가 그 어느 때보다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Nam June Paik, “Self-Portrait,” 2005;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Phyllis C. Wattis Fund for Major Accessions; ©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Katherine Du Tiel
Nam June Paik, “Egg Grows,” 1984–89;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Accessions Committee Fund: gift of Elaine McKeon, Byron R. Meyer, Madeleine Haas Russell, and Mr. and Mrs. Robert A. Swanson; ©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Johnna Arnold

 

1932년, 일제 시대 때 한국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일본 도쿄, 독일 뮌헨, 미국 뉴욕으로 차례차례 거처를 옮겨가며 전위적이며 여러 분야를 접목시키는 예술 세계에 대한 열정을 키웠고, 자신을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세계 최초의 글로벌 아티스트’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번 전시 카탈로그에서 설명하듯, 그는 하나의 언어나 장소도 묶이지 않는 아웃사이더로서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는데, 이는 그가 강조하는 ‘자유’의 개념에 열린 상태로 새로운 화법 창조를 가능하게 했다.

그 결과, 작품 속에서 동양과 서양의 문화, 아트와 테크놀로지 같이 서로 다른 가치들이 연결되었고, 동서양과 장르를 불문한 세계 여러 크리에이터들 간의 협업도 자연스레 장려되었다. ‘글로벌’, ‘협업’, ‘분야 간의 접목’. 지금 같아선 너무나 익숙한 용어들이지만 작가가 왕성히 활동을 시작하던 1960년대만해도 달랐다.

Nam June Paik, “TV Cello,” 1971; collection Walker Art Center, T.B. Walker Acquisition Fund, 1992, Minneapolis, formerly the collection of Otto Piene and Elizabeth Goldring, Massachusetts; © Estate of Nam June Paik
Nam June Paik, “Merce by Merce by Paik,” 1978;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gift of the Hakuta Family; © Estate of Nam June Paik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50년 커리어를 아우르는 2백 여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하며 작가에 대한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한다. 그 중에서도 하나의 방은 유독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 Charlotte Moorman과의 협업을 주제로 꾸며졌다.

백남준은 음악 교육을 받은 음악가였다. 일제 시대의 한국에서 일찍이 서양의 모던 음악과 문학에 눈을 뜬 그는 1952년 동경대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에 대한 논문을 썼다. 졸업 후 뮌헨으로 향한 그는 음악학과 아트 히스토리를 공부하며 그곳의 실험적 뮤직 신과 연결된다. 백남준의 관심은 초반부터 음악이건 예술이건 그 지경을 넓히는 것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샬롯 무어만과의 괴짜 같은 협업들은 음악에 부족한 ‘성’의 개념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음악을 듣는 관객에게도 듣거나 듣지 않는 두 가지의 단순한 방식 대신 보다 다양한 선택지의 ‘자유’를 부여하고자 예측 불가능하고 관객 참여적인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아놀드 쇤베르크 Arnold Schenberg 고전 음악 기법을 타파하고 새로운 작곡 기법을 창안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Nam June Paik, “Magnet TV,” 1965;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purchase with funds from Dieter Rosenkranz; ©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courtesy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Nam June Paik, “TV Crown,” 1965/1999;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gift of the Hakuta family; ©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Katherine Du Tiel
Nam June Paik, “Zen for TV,” 1963/1990;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gift of the Hakuta family; ©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Katherine Du Tiel

 

백남준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작곡가 존 케이지 John Cage와의 인연이다. 장르간 벽을 허물고, 음악에 불확정성과 우연적의 요소를 도입한 존 케이지는 백남준의 초기 커리어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더 나아가 불교에 대한 그의 관심은 백남준에게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볼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1960년대 초는 백남준이 아방가르드 뮤직과 플럭서스 Fluxus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전자 기술을 공부하고 실험해 나가던 시기다. 1963년의 첫 개인전에서 그는 조작한 13대의 TV를 가지고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이때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전시장에 도착한 두 대의 텔레비전이 고장 나 있었던 것. 백남준은 그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하여 두 대의 텔레비전을 각각의 작품으로 둔갑시켰는데, 그 중 하나가 브라운관의 고장으로 전자 선만 방출하고 있던 TV를 이용한 그 유명한 작품 ‘Zen for TV'(1963)이다.

Nam June Paik, “TV Chair,” 1968; 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Phyllis C. Wattis Fund for Major Accessions; ©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Benjamin Blackwell

 

이번 전시를 기해 테이트 모던에서 마련한 영상 “아티스트 백남준이 예언한 다섯 가지 미래”는 통찰력과 예지력이 남달랐던 백남준의 면모를 파헤친다. 그는 구체적인 용어까지 사용해가며 1) 인터넷, 2) 비디오 아트, 3) 기후 위기, 4) 글로벌 미디어, 5) 스마트폰을 예견했다. ‘인터넷’의 경우, 그는 1974년의 글 속에서 위성과 케이블, 섬유광학을 사용해 멀리 떨어진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일렉트로닉 수퍼 하이웨이 Electronic Super Highways’를 짓자고 하면서, 그러면 각각 다른 장소에서도 함께 컨퍼런스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스마트폰’ 부분도 놀랍다. 백남준은 1974년의 글 속에서 “언젠가 1001가지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을 위한 ‘멀티미디어 전화 시스템 mixed media telephone system’이 생길 것”이라며, “그것으로 비디오 콜, TV 시청, 쇼핑, 심지어 건강 진단까지 받을 수 있게 될”이라고 예견했다. 참고로 IBM에서 처음 스마트폰 개념의 기기를 내놓은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였다. 그뿐 아니다. 캠코더, 라이브 스트리밍, 소셜 미디어의 미래를 내다보며 “카메라의 발명은 모든 상황을 바꾸고, 모든 사람을 활발한 비주얼 아티스트로 만들 것이다”라 했다.

기술이 생태계를 거스르다는 편견을 깨고 생태계의 일부로 만들었다. Nam June Paik, “TV Garden,” 1974–77/2002 (installation view, Stedelijk Museum Amsterdam); 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Düsseldorf; ©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Peter Tijhuis
Nam June Paik, “Merce / Digital,” 1988; collection Roselyne Chroman Swig, San Francisco; © Estate of Nam June Paik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남준의 손을 거친 하이테크는 전혀 차갑지 않다. 어려서부터 뉴욕에서 살며 백남준과 가까이 그의 조카 켄 하쿠타 Ken HakutaSFMOMA와의 인터뷰에서 그 정곡을 찌른다. “저는 그가 오늘날 소니에서 만드는 것 같은 로봇을 만드는 데 흥미를 느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완전성은 그의 예술의 일부였기 때문이에요. 거기에 그의 세련됨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완벽하게 기능하는 로봇은 무작위로 고장 나는 로봇만큼이나 세련되지가 못하기 때문이에요.”

 

Nam June Paik, “Sistine Chapel,” 1993/2019 (installation view, SFMOMA); courtesy the Estate of Nam June Paik; ©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Andria Lo

 

전시의 마지막 방에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작품 ‘시스티나 성당 Sistine Chapel’(1993)이 놓였다. SFMOMA 미디어 아트 분야 큐레이터인 로돌프 프릴링 Rodolf Frieling의 설명에 의하면, 여기에서 작가의 관심은 관객을 360도 몰입되는 경험으로 이끄는 데 있다. 모던 건축에서 흔히 간과되는 천장까지 활용한 것이 포인트다.

“우리는 가끔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백남준에게 있어 보다 중요한 것은 형태에 열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그 흐름만 파악한다면 모든 레퍼런스를 알아야할 필요는 없는 거지요.” 

-로돌프 프릴링

 

 

한예준

자료 협조 SFMOMA

장소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151 3rd St, San Francisco, CA 94103 USA)
일자
2021.05.08 - 202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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