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1

문 닫은 미술관을 점령하라!

“미술관은 휴관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5월, 베를린 주립미술관(Berlinische Galerie)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미술관의 휴관 소식을 알리는 피드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피드에는 여러 작가들이 미술관이 휴관하게 된 이유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데, 미술관의 휴관 일정을 공지하는 피드가 뭐 그리 특이하겠냐 만은 그 이유들이 가관인지라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미술관 관계자가 아닌 그 누구라도, 주택난 때문에, 오트밀 우유가 떨어져서 또는 미술관 관장이 바빠서 미술관이 휴관한다는 내용을 쉽게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떻게 미술관이 이러한 이유로 휴관할 수 있냐는 질문부터 이 피드들이 퍼포먼스 혹은 해프닝의 일환은 아닌지 추측하기도 하고, 이유는 그렇다 쳐도 미술관이 휴관하는 것은 정말로 사실이냐고 되묻는 댓글들이 달렸다. 물론 그 중에는 계속 올라오는, 이 진짜인지 장난인지 모를 피드가 무엇인지 빨리 알려달라고 재촉하는 글도 보였다.
Thank you for your understanding, An artistic Intervention by Cem A., Berlinische Galerie, 2023 © Victoria Tomaschko

미술관은 큐레이터가 USB를 잃어버린 관계로 휴관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your understanding, An artistic Intervention by Cem A., Berlinische Galerie, 2023 © Victoria Tomaschko

미술관은 베를린의 주택난으로 인해 휴관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your understanding, An artistic Intervention by Cem A., Berlinische Galerie, 2023 © Victoria Tomaschko

미술관은 작가의 비자 접수 문제로 휴관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이 피드들은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작가이자 큐레이터, ‘켐 아(Cem A.)’의 프로젝트다. 작가는 지난 4월 말부터 한 달 간, 건물의 개보수를 위해 휴관했던 베를린 주립미술관의 앞마당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활용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Thank you for your understanding)’라는 타이틀의 장소 특정적 작업을 선보였다. 작업의 과정은 간단하다. 그는 아멧 오굿(Ahmet Öğüt), 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 조에 클레어 밀러(Zoë Claire Miller) 등을 포함한 7명의 작가들에게 미술관이 문을 닫게 된 가상의 이유를 적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를 표지판으로 제작해 미술관 외부에 2~3일 간격으로 설치하고, 해당 표지판을 들고 있는 작가의 사진들을 미술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게시했다.

베를린 주립미술관 인스타그램 계정(@berlinischegalerie) 스크린 캡쳐 이미지

미술관 계정에 올라온 프로젝트의 피드들은 얼핏 봐도 그간 미술관에서 게재한 1,000여건이 넘는 게시글과 결이 달라 보인다. 여느 미술관처럼, 베를린 주립미술관도 주로 SNS 계정을 활용해 향후 예정된 전시를 홍보하거나 컬렉션 작품과 작가들을 소개한다. 피드의 형식 또한 일관된 디자인과 톤을 유지해 최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용과 관계없이 유지되는 이 ‘일관성’은 무색무취의 화이트 큐브를 떠올리게 한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엄숙하고 고압적으로 느껴지는 새하얀 전시장이 디지털 공간의 그리드 속으로 이전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하나 둘 씩 올라온 작가의 피드들이 더욱 눈에 띄었다. 기존의 내용과 형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 ‘예술적 개입’은 다른 게시물에 비해 3~4배 많은 ‘좋아요’ 수를 기록하며 팔로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작가의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9년부터 ‘프리즈 매거진(@freeze_magazine)’이라는 계정을 운영하며, 미술계 내 부조리한 관행과 문화를 밈으로 제작해 올리고 있다. 인터넷에서 모방과 유머를 기제로 영상물과 사진을 공유하는 밈 문화는 미술에서도 작업의 한 형태이자 비평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계정 주소인 ‘프리즈 매거진(freeze magazine)’도 영국의 현대미술 전문잡지인 <프리즈(Frieze)>를 패러디했다. 동명의 잡지 ‘프리즈’가 아트페어까지 운영하며 국제 미술계 내 ‘권위 만들기’에 열심히라면, 작가의 프리즈 매거진은 미술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웃픈’ 이야기들을 2천 여개가 넘는 밈으로 공유한다.

예를 들어, ‘연대순으로 기획되지 않은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라는 문장과 함께 ‘Fxxx’을 남발하는 디카프리오의 짤방이 실렸는가 하면, ‘내 지원금 신청서가 선정되었다’는 문장 아래에는 5 달러 상금을 받고 환호하는 퀴즈쇼 참가자의 밈이 자리한다. 전시를 몇 번이고 둘러봐도 도대체 무얼 봤는지 모르겠는 난해한 경험을 한 이가 어디 한 둘이겠는가.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기금을 받았지만 작업을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 때문에 선정된 기쁨도 잠시, 그 뒤에 밀려오는 막막함을 필자도 잘 안다.

현재 15만 팔로워를 보유한 프리즈 매거진은 시작부터 거대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터키 출신인 작가는 비유럽권 시민으로 런던에 거주하며 비자를 받고, 일자리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느꼈던 좌절감을 해소하고자 2019년부터 매일매일 밈을 제작해 올렸다. 그리고 디지털 밈에서 물리적 공간으로 한 발 더 나아가 특정 상황과 연계된 설치물을 모색하기에 이르는데, 이번 베를린 주립미술관에서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Thank you for your understanding, An artistic Intervention by Cem A., Berlinische Galerie, 2023 © Victoria Tomaschko
Thank you for your understanding, An artistic Intervention by Cem A., Berlinische Galerie, 2023 © Victoria Tomaschko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은 곱씹어 보면 꽤 일방적이다.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이해를 요구하고 있을 뿐더러 그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감사함을 빙자해 그저 받아주기만을 강요하는 것처럼 들린다. 오트밀 우유가 떨어지든, 주택난 때문이든, 큐레이터가 USB를 잃어버려서든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이해를 하든 안 하든 미술관은 지난 한 달간 휴관했다. 그런데 미술관의 휴관이 가능한 것일까? 지난 판데믹에 문을 닫아야 했던 많은 미술관들이 디지털 미술관을 표방하며 웹사이트와 SNS를 활용해 온라인 전시를 지속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 미술관 건물이 운영되지 않더라도 미술관의 디지털 공간은 24/7일 열려있다. 작가는 이렇게 휴관을 이해해 달라는 미술관을 도리어 점령해 밈으로 물들였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늘 중립적이고 멀게만 느껴졌던 미술관 계정을 매일 같이 찾아보고 다음에 올라올 피드를 기다리기도 했다. 어쩐지 미술관의 재개관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박은지 객원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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