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7

동네에 생긴 우리술 양조장, 꿀꺽하우스 ②

"좋은 술은 결국 좋은 사람들을 함께 하게 만든다"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주택가를 지나 10분 정도 걷다 보면 이르는 곳. 바로 꿀꺽하우스다. 한적한 도심에 자리한 이곳은 우리술을 빚어내는 양조장이다. 이와 동시에 정성 들여 빚은 술을 음식과 페어링 해 즐길 수 있는 바(Bar)이다. 국내에는 전통술을 빚는 양조장과 이를 마시는 식음료 공간이 함께 자리하는 경우가 드물다. 꿀꺽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준표 대표는 선례 없는 프로젝트에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두려움도 잠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꿀꺽하우스만의 발자국을 낼 생각에 설렘이 더 컸다고 말한다. 우리 동네에 생긴 우리술 양조장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기사는 1편에서 이어집니다.

맥주 덕후에서 우리술을 빚기까지

꿀꺽하우스 이준표 대표

꿀꺽하우스가 2022년 7월에 문을 열었더라고요. 어느덧 1주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 소감이 궁금합니다.

벌써 1주년이 가까워진다니 감회가 새로운데요. 준비 과정까지 생각하면 체감은 10년 정도 되는데 말이죠 (웃음) 사실 사업 초기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사업 모델이나 술, 또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선례가 없어서 두려움이 따르기도 했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수만 가지의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하듯, 두려움을 부정하기보다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덕분에 1년간 좋은 이웃을 만났고, 멋진 기회들을 얻을 수 있었어요. 긴 호흡으로 앞으로 3년, 5년 남들이 밟지 않은 곳에 우리 발자국을 남겨서 꿀꺽하우스만의 길을 꾸준히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우리가 누군지, 또 왜 꿀꺽하우스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지를 계속 알려가 보려고요.

꿀꺽하우스로 독립하기 전에는 부산에서 수제 맥주를 생산하고 유통하기로 유명한 ‘와일드웨이브’에서 근무하셨더라고요.

맥주에서 우리술로 산업 군을 옮겼지만 크게 보면 ‘발효’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자연스러운 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다양하고 독창적인 크래프트 문화를 만들어간 맥주 시장의 성장기와 부흥기를 함께 했고, 특히나 와일드웨이브는 다양성과 실험을 기반으로 ‘사우어 맥주’를 양조한 곳이기에 저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어요.

사우어 맥주를 양조하는 '와일드웨이브'에서 독립해 현재는 꿀꺽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다만, 맥주 기본 재료 대부분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보니 내가 직접 지역에서 난 재료를 눈으로 보고 관리하면서 술을 빚고 이를 매개로 충분히 재밌는 문화를 만들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러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지금의 꿀꺽하우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생각해 보면 전통주가 크래프트의 집약체이기도 했거든요. 결국 전통주와 맥주, 과거와 현대,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이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표현하는 수단이 달라졌을 뿐이지 술로써 ‘새롭고 재밌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은 달라진 게 없어요. 최근에는 커피, 사케, 위스키에도 관심이 생겨서 다양한 영역을 교차해 우리술로 표현해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전히 설렙니다.

우리술 양조에 대한 관심이 생긴 특별한 계기도 있었을까요?

사실 전 굉장히 단순한 사람인데요. 맥주 베이스였던 몰트를 쌀로 바꿔볼까?라는 생각이 우리술 양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어요. 그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의아해했어요. 그런데 복분자로 약주를 만들어 맛 보여드렸더니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더라고요. 덕분에 쌀을 가지고도 충분히 다양한 스타일의 술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었죠.

이준표 대표는 언젠가 꿀꺽하우스가 빚은 술이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요즘은 경계가 허물어지고 교차하면서 전에 없던 또 하나의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겨나기도 하는데 분명 술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지!라는 생각도 있고요. 장점을 살려 단순히 전통주라는 카테고리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쌀로 다양한 문화를 믹스해 전에 없던 새롭고 맛있는 술을 빚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꿀꺽하우스가 빚은 술이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립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꿀꺽하우스, 200% 즐기기

꿀꺽하우스에서는 우리술과 어울리는 메뉴 페어링을 즐길 수 있다.

꿀꺽하우스의 시그니처 메뉴를 소개해 주시자면요?

익숙하지만 새로운 요소를 배합해 지속적으로 다양한 술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욕망의 거친 물결’과 ‘텃밭’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욕망의 거친 물결’은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방정아 작가님의 작품 ‘욕망의 거친 물결 Rough Waves of Desire’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술입니다. ‘욕망’이라는 키워드는 12도의 도수로, 물결에서 느껴지는 혼탁함은 탁주로, 그림 색에서 연상되는 유자와 스피어민트를 넣어 파도처럼 거친 물결에 착안해 상큼한 맛을 표현했습니다. 유자의 싱그러움과 은은한 허브향이 매력이죠.

(왼쪽) 방정아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술 '욕망의 거친 물결' (오른쪽) 아버지의 텃밭에 대한 기억에서 탄생한 '텃밭'
김해 쌀과 복분자를 베이스로 만든 술 '텃밭'

‘텃밭’은 아버지 텃밭에서 영감을 얻었는데요. 김해 쌀과 복분자를 베이스로 텃밭의 향긋한 풀 내음을 떠올리며 바질과 후추를 더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복분자의 단맛과 은은한 바질 향, 알싸한 후추 향관 실키 한 질감이 한데 어우러지는 점이 특징이죠. 일반적인 탁주의 느낌보다는 내추럴 와인과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는데요. 다양한 음식과 페어링 하기에도 좋습니다.

앞서 소개해 주신 술을 포함해서 각 술이 지닌 이름이 재밌더라고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만의 가양주 문화를 만들자.’라는 게 저희 모토예요.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우리술 문화가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기 위해선 끊임없이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내뱉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우리의 관심사와 좋아하는 것을 술에 반영하게 되는데요. 가끔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기억에서 영감을 얻기도 해요. ‘텃밭’도 그렇게 탄생했고요. 그 밖에도 ‘아침에 쌀’, ‘산뜻’, ‘새벽녘’, ‘정오’, ‘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등이 있는데 집으로 비유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나 상황을 주로 표현해 내고 있어요. 추후에 술만으로도 꿀꺽하우스라는 공간이 그려질 수 있도록 말이죠.

개인적으로 술과 함께 음식 메뉴와의 페어링도 좋았는데요. 추천하는 페어링도 몇 가지 소개해 주세요.

‘정오’와 ‘텃밭’은 양념 가브리살 & 세발 나물 무침과 ‘욕망의 거친 물결’은 아롱사태 냉수육과 드셔보길 추천드려요. 음식 메뉴 중에는 비건 옵션도 있는데요. 인기 메뉴인 참타리 튀김은 ‘산뜻’과 잘 어울리고, 술에 좀 더 집중해서 드셔보고 싶다면 구운 콜리플라워와 다양한 약주를 함께 페어링 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왼쪽부터) 구운 콜리플라워, 참타리튀김, 아롱사태 냉수육

최근에는 베러먼데이와 함께 <우리술 빚기 클럽>이라는 팝업 행사도 진행했어요.

작년 12월, 베러먼데이와 진행한 ‘나만의 온리원 막걸리를 찾아서’ 술빚기 클럽을 진행하고 ‘내가 만들고 싶은 막걸리는?’ 이란 이벤트에 참여해 주신 분의 글이 있었어요. 어머니 고향인 “밀양의 단장 대추로 가족과 함께 술을 빚어보고 싶다”라는 내용이었는데 누군가는 술을 통해 이런 생각도 하는구나 싶었죠. 어쩌면 ‘우리술’이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으로 갈라진 서로 다른 세대가 연결되고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러먼데이와 꿀꺽하우스의 과 5월 가정의 달을 기념해 출시한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그래서 5월 가정의 달을 기념해 그분의 아이디어를 더한 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출시했어요. 더불어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우리술 빚기 클럽>이 탄생했습니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술과 음식 페어링, 대추를 활용한 과하주 빚기, 구성원이 함께 할 수 있는 가족 오락관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실제로 부모님과 함께 온 팀을 보니 뿌듯하더라고요. (웃음)

밀양의 단장 대추로 빚은 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꿀꺽하우스가 앞으로 지향하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꿀꺽하는 순간에 즐거움을 전하고, 늘 새로운 영감과 경험을 전할 수 있는 공간이고 싶습니다. 올해도 선보일 것들이 많아요. ‘꿀꺽-‘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리듬감처럼 우리술을 통해 꿀꺽에 대한 개념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고 확장해갈 예정입니다.

공간 디렉팅 김환일, 이준표, 최승하, 이우주

시공 및 설계 블랙핑거스

로고 디자인 준빠 (차준오)

이정훈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꿀꺽하우스

장소
꿀꺽하우스
주소
부산 수영구 광남로 184-1 2층
시간
수 - 토 17:00~01:00 (주문 마감 00:00)
일 17:00~00:00 (주문 마감 23:00)
(매주 월, 화요일 휴무)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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