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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4

어린이의 타고난 감수성을 믿는 예술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거장들> 展
“많은 폴란드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린이에게만 적합한 시각언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의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을 믿고 어린이 독자를 어른과 동등하게 대하는 점이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큰 특징입니다.” 폴란드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 역사를 연구하고 정리해 온 정리한 이지원 연구자∙큐레이터의 설명이다.

이런 특징을 품은 폴란드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은 어떤 모습일까? 193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는 100년 동안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을 한눈에 살필 기회가 찾아왔다. 6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알부스 갤러리에서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거장들〉 전시가 열리는 것.

이 전시는 지난해 순천에서 열린 폴란드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 전시를 서울로 옮겨 새롭게 단장한 것인데, 순천 전시는 폴란드 밖에서 열린 가장 큰 규모의 폴란드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 전시였다. 한국과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이 이토록 깊은 연을 맺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를 기획한 이지원 연구자∙큐레이터에게 한국과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관계와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특징을 두루 물었다.

알부스 갤러리 외관. 사진 제공: 알부스 갤러리
Interview 이지원 연구자∙큐레이터

번역가, 큐레이터, 어린이책 연구자

서울 시립대학교 일러스트레이션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90여 권의 어린이책을 번역·소개했다. 2022년 안데르센 상 심사위원. 폴란드 문화부와 함께 순천 그림책도서관과 알부스 갤러리에서 열린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거장들〉 전시를 기획했다.

알부스 갤러리에서 여는 전시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에서 열렸던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거장들〉을 재단장해 선보이는 것입니다.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 전시를 처음 기획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폴란드에서 옛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은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폴란드 문화의 소중한 한 부분입니다. 저는 폴란드 문화부의 폴란드 문화 해외 홍보를 맡고 있는 아담 미츠키에비츠 재단(Instytut Adama Mickiewcza)과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 몇 년 전 문화부가 『캡션 오브 일러스트레이션(Captains of Illustrations)』이라는 대규모 화집을 편찬하면서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습니다. 독특한 문화적 자산이면서도 여러 나라 사람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라는 점에서, 폴란드 문화부에서 이런 대형 전시를 꾸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출판 시장은 폴란드의 어린이책 작가와 도서들을 다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해외에서 열린 것으로는 가장 대규모의 폴란드 어린이책 전시가 한국에서 개최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림 형제 동화집 Baśnie Braci Grimm, Nasza Księgarniaⓒ1956. Bożena Truchanowska i Wiesław Majchrzak

지난 전시와 알부스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전시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이번 전시는 어떻게 구성하려고 했는지 들려주세요.

순천 그림책도서관에서 처음 한 이 전시를 꼭 서울에서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개관 때부터 함께 일했던 알부스 갤러리에서 흔쾌히 전시 개최에 동의하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알부스 갤러리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위해 세워진 매우 아름다운 공간을 갖췄고, 폴란드 작가인 유제프 빌콘(Józef Wilkoń)과 요안나 콘세이요(Joanna Concejo)의 단독전을 개최한 적이 있어서 특별한 인연이 있기도 합니다.

알부스 갤러리 1층. 사진 제공: 알부스 갤러리

순천의 전시관보다 규모가 작은 알부스의 전시를 위해 순천에서 공개되었던 작품들 중 하이라이트라고 생각되는 작품을 조금 더 추렸습니다. 갤러리라는 공간 특성상 아트 프린트보다 원화 작품을 보여드리는 데 중심을 두고,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폴란드 일러스트레이터인 요안나 콘세이요와 매우 회화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보여주는 엘라 바시우췬스카(Ela Wasiuczyńska)의 원화를 1층에 배치했습니다. 거장 유제프 빌콘의 조각 등 갤러리의 소장품 중 몇 점도 함께 공개되어서 순천 전시를 보셨던 분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기획했습니다.

요안나 콘세이요, 올가 토카르축의 Playing on a Multitude of Drums 표지 삽화, 2020 Playing on a Multitude of Drumsⓒ2020. Joanna Concejo

알부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어떤 점을 짚어 가면서 관람하면 좋을까요?

이번 전시는 독특한 사회적 배경 속에 발달해 왔던 1960~70년대 거장들의 손으로 그린 작품은 물론, 작업을 위해 치열하게 진행되었던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탐구, 색채나 구도에 대한 실험 같은 것을 세세하게 살필 좋은 기회입니다. 앞서 말한 현대 작가들인 엘라 바시우췬스카나 요안나 콘세이요, 안데르센 상 쇼트 리스트에 세 번이나 올라간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ska)의 작품 세계를 면면히 볼 수 있도록 작품을 전시했어요. 또한 책 일러스트레이션 전시인 만큼 작품의 종착점이 된 책 역시 놓아 두었으니, 책을 살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갤러리 곳곳에 책이 놓여 있다. 사진 속 책은 요안나 콘세이요가 표지를 그린 올가 토카르축의 책 세 권 ⓒ heyPOP

폴란드의 옛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은 폴란드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요.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교육과 문화 정책은 어린이책 발전을 위해 경쟁과 시장의 원리를 배제한 인공적인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폴란드는 국가 재건과 함께 출판 산업의 모든 분야를 국유화했는데, 이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싼 값에 양질의 책을 공급하겠다는 사회주의적 이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어요. 국가의 보호 아래 어린이책 출판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1960년대와 70년대 폴란드 어린이책들은 대부분 1쇄당 2~3만 부씩 제작된 데다가 매년 재쇄를 거듭하여 대부분은 10쇄를 넘어서는 일이 많았습니다.

알부스 갤러리 2층. 사진 제공: 알부스 갤러리

폴란드의 어린이책, 그림책이 공통으로 띠고 있는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순수회화에 비해 검열에 훨씬 자유로웠던 일러스트레이션은 젊은 작가들이 회화적인 색채와 형태, 질감과 기법의 실험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이기도 했습니다. 수채화의 번짐과 흐르는 듯한 색면의 구성, 오린 종이의 불규칙한 선과 다양한 질감을 이용했던 콜라주, 어둡고 비현실적인 색채의 실험적인 사용, 민속 목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강렬한 색 대비와 윤곽선 표현 등을 통해 폴란드의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은 수많은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1930년대 아르데코 포스터와 러시아 아방가르드 그림책, 1960년대의 스위스 스타일로 이어진 그래픽 디자인의 전통 또한 개성 있는 표지 디자인과 글 그림의 레이아웃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요. 이러한 실험의 목적은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에 적합한 시각적 언어를 찾기보다는, 작가 스스로 주관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드러내는 데 있었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많은 폴란드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린이에게만 적합한 시각언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무엇보다도 화가 자신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린이의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을 믿고 어린이 독자를 어른과 동등하게 대하는 점이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큰 특징이라 생각합니다.

레시미안 동화집 O pięknej Parysadzie i ptaku Bulbulezarze, Krajowa Agencja Wydawniczaⓒ1983. Antoni Boratyński

그렇다면 현재의 폴란드 그림책 경향은 어떤가요?

지금의 폴란드 출판 시장을 살펴보자면, 폴란드에서 출판된 논픽션 정보그림책이 전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많은 작가가 외국 출판사를 통해 세계를 무대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고요. 현대의 젊은 작가들에게서 1960~70년대 거장의 자취가 엿보이는 부분은, 상징과 연상의 효과를 거침없이 이용하며 텍스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는 그림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현한다는 점입니다.

숲으로 여행 Leśne wędrówki, Muchomorⓒ2019. Ela Wasiuczyńska

앞서 순천에서 열린 전시가 폴란드 밖에서 개최된 가장 큰 규모의 폴란드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 전시라고 하셨지요. 알부스 갤러리 역시 이미 유제프 빌콘, 요안나 콘세이요 등 폴란드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고,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은 한국에서도 크게 사랑받았어요. 한국과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 분야는 어떻게 깊은 연을 맺게 되었나요?

한국에서 어린이책, 특히 그림책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외국 판권의 수입이 굉장히 활발했던 2000년대 초반에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를 중심으로 한 폴란드 작가들과 한국 출판사들의 협업으로 많이 알려진 듯합니다. 흐미엘레프스카는 한국의 ‘논장’ 출판사를 통해 데뷔한 데다, 세 번의 볼로냐 라가치 상을 모두 한국 출판사에서 낸 책들(『마음의 집』(2011 볼로냐 라가치 논픽션 대상 수상, 창비)’, ‘『눈』(2013 볼로냐 라가치 픽션 대상 수상, 창비)’, ‘『할머니를 위한 자장가』(2020, 볼로냐 라가치 뉴 호라이즌 수상, 비룡소)로 받았기 때문에 외국에서조차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작가로 유명합니다. 전시와 함께 새 책 『잃어버린 얼굴』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한 요안나 콘세이요 작가도 비룡소에서 『빨간 모자』를 오리지널 출간하며 세계적인 명성의 토대를 쌓았습니다.

알부스 갤러리 2층. 사진 제공: 알부스 갤러리

연구자님은 폴란드의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고, 폴란드 문화국가유산부의 글로리아 아르티스 문화공훈을 수훈하기도 했습니다. 폴란드 예술에 깊이 빠져든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폴란드 아트의 어떤 점이 연구자님을 폴란드로 향하게 했나요?

문학과 언어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그림과 글을 모두 볼 수 있는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에 매혹되었습니다. 폴란드는 100년이 넘게 이어져 올 만큼 깊은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 역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술사 분야에서는 정리와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폴란드의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 역사를 정리하는 박사논문을 썼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수많은 폴란드 일러스트레이터를 제가 할 수 있는 한 돕고, 그들의 책을 만들고, 한국에 출판하는 일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그림 형제 동화집 Baśnie Braci Grimm, Nasza Księgarniaⓒ1956. Bożena Truchanowska i Wiesław Majchrzak

이번 전시를 어떤 이에게 특히 추천하나요?

어린이책과 일러스트레이션에 관심이 있는 분들,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 작가 지망생들, 특히 디자인 분야와 일러스트레이션 분야, 출판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폴란드라는 나라의 독특함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도요.

글 김유영 기자

프로젝트
<폴란드 일러스트레이션의 거장들>
장소
알부스 갤러리
주소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28길 26
일자
2023.04.21 - 2023.06.07
시간
화 - 토 10:00~18:00
일, 공휴일 10: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 종료 30분 전 입장 마감)
참여작가
유제프 빌콘, 아담 킬리안, 요안나 콘세이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외 다수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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