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빌라 메디치는 작년 말부터 오는 2025년까지의 장기적인 재단장 프로젝트로, ‘다시 매력적으로’라는 뜻을 담은 <리인찬팅 빌라 메디치(Re-enchanting Villa Médici)>를 진행 중이다. 대대적인 실내 디자인 개조 프로젝트는 빌라의 오랜 유산과 함께 현대 디자인, 예술과 공예를 더 잘 홍보하기 위해 빌라의 총괄 디렉터 샘 스투르제(Sam Stourdzé)가 주도하고 있다. 작년 12월에 시작한 ‘챕터 1: 리셉션 살롱(Chapter 1: The Reception Salons)’은 정원 층에 위치한 빌라의 6개 리셉션 살롱을 재단장한 것으로, 펜디의 킴 존스(Kim Jones)와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가 지휘를 맡았다. 여기에 프랑스 문하부 산하 기관으로 17세기부터 창작 및 문화 유산을 관리해 온 모빌리에 나쇼날(Mobilier National)도 손을 보탰다.
며칠 전 대중에 공개된 ‘챕터 2: 역사적인 방들(Chapter 2: The Historical Rooms)’은 프랑스의 고급 베딩 브랜드 메종 트레카(Maison Tréca)와 몰입적인 경험을 더해 줄 음향 엔지니어링 회사인 드비알레(Devialet), 그리고 모빌리에 나쇼날과 20년 이상 예술과 공예를 꾸준히 지원해 온 베탕쿠르 슈엘러 재단(Bettencourt Schueller Foundation)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특히, 두 번째 프로젝트는 프랑스 기반의 건축가, 디자이너이자 시노그래퍼로 특유의 환대, 편안함, 우아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스타일을 선보이는 인디아 마흐다비(India Mahdavi)와의 협업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재다능한 예술성으로 빌라 메디치의 신임을 얻은 그녀는 6개의 유서 깊은 객실에 세련된 기하학과 다채로운 컬러를 부여하며 고유한 창의성을 증명해 보였다.
총 6개의 방 중에서, 16세기 말에 완성되어 고대의 대리석과 빛바랜 태피스트리 등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페르디난드 데 메디치 추기경의 아파트는 인디아 마흐다비의 실험정신을 토대로 그동안 잊고 있던 새로운 쓰임새와 아이덴티티를 갖게 되었다. 엘리멘츠의 방(Chamber of the Elements), 뮤즈의 방(Chamber of the Muses,) 주피터의 사랑의 방(Chamber of Jupiter’s Loves) 이렇게 새로운 이름도 생겼다. 이와 더불어 3개의 게스트룸인 릴리 불랑제 살롱(Lili Boulanger Salon), 드뷔시 룸(Debussy Room), 갈릴레오 룸(Galileo Room)은 빌라 메디치와 관련된 예술과 과학 분야의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을 붙여 특별함을 더했다.
릴리 불랑제 살롱의 릴리 불랑제는 당대 여성 작곡가로서 여러 가지 제한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로마 대상을 수상하며 1913년 프렌치 아카데미 역사상 작곡 부문에 입학한 최초의 여성 펠로우다. 마찬가지로 로마 대상을 수상한 뒤 1885년에서 1887년까지 아카데미의 펠로우였던 클로드 드뷔시는 이곳에서 파리 음악원에서는 호평을 받지 못했던 4개의 작품을 작곡하며 비순응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 메디치의 수제자(Medici protégé)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615년, 그리고 지동설에 대해 집필한 책이 로마 교황청의 반발을 사며 종교 재판이 열렸던 1633년 이렇게 두 차례에 걸쳐 머물렀다고 한다.
인디아 마흐다비는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히며, “추기경 방의 침대는 르네상스 시대와 빌라 바닥 자체의 패턴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라고 소개했다. 유쾌하다 못해 리듬감마저 느껴지는 컬러와 패턴으로 가득한 침대를 비롯해 녹색과 보라색의 대비가 강렬한 카펫, 이와 나란히 위치한 인디아의 시그니처 가구인 비숍(Bishop) 등 우수한 소재의 완성도 높은 가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매너리스트 화가 자코포 주치(Jacopo Zucchi)의 16세기 프레스코화, 발튀스(Balthus)의 벽 장식과 같은 귀한 과거의 흔적도 정성껏 복원됐다.
이 외에도 탁월한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장인 및 유수의 브랜드들이 참여했다. 피아노 조율 장인인 알폰시 피아노포르티 달 1906(Alfonsi Pianoforti dal 1906), 복원가 안나 마르티노타(Anna Martinotta), 크리스티나 폰타나(Cristina Fontana), 에밀리아노 리치(Emiliano Ricci), 프란체스코 라티(Francesco Latti), 코골랭(Cogolin)의 카펫과 데다르(Dedar)의 패브릭, 고블랭(Gobelins)의 태피스트리, 플로스(Flos) 조명, 게브뤼더 토넷 비엔나(Gebrüder Thonet Vienna)의 가구, 캐비닛 제작자 파스칼 미샬론(Pascal Michalon), 상감 세공 기술로 유명한 메종 크라망-라가르드(Maison Craman-Lagarde), 전등갓만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파랄루미(LARParalumi LAR), 파인 아트 운송 전문의 트라아트(TRAART)까지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아 그 의미를 더했다.
글 유승주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로마 빌라 메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