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서울 망원동에서 경기도 분당으로 거점을 옮긴 디자이너가 있다. 신도시답게 쭉쭉 뻗어있는 아파트와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 사회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분당은 살기에 너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심심하게 느껴졌다. 바로 이것이 분당러에 의한, 분당러를 위한 로컬 브랜드 ‘신분당씨티클럽’이 탄생한 이유다.
신분당씨티클럽의 프로젝트 디렉터이자 나인픽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전우상 디자이너는 분당을 ‘깨끗하고 편리하지만 재미가 없는, 마치 백화점과 프랜차이즈 같은 도시’라고 표현했다. 게다가 연고도 없으니 분당이라는 도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 역설적으로 다 좋아서 심심한 이 도시를 재밌게 바꿔줄 사람을 찾던 전우상 디자이너는 없으면 내가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2020년, 신분당씨티클럽을 시작했다.
신분당씨티클럽의 첫 행보는 강렬한 빨간색으로 브랜드 로고와 엠블럼을 새긴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왠지 모르게 록 밴드 콘서트 굿즈처럼 보이는 이 티셔츠에는 분당이 속한 성남시의 대표 동물과 식물인 까치와 철쭉이 그려져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기괴해 보이는 이 티셔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제 생각이 맞았죠.”
티셔츠를 공개하자 분당에 사는 ‘분당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작년 6월에는 분당 앱스트랙커피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어 티셔츠와 키링을 판매했다. 알음알음 알고 온 분당러들이 와서 티셔츠를 구매했다. 뉴요커가 ‘I♥NY’라고 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처럼, 이제 분당러는 ‘신분당씨티클럽’이라고 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1년 6월, 신분당씨티클럽은 다시 한번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이번에는 초코와 파이라는 귀여운 강아지들이 맞이해주는 분당의 카페 ‘AMP COFFEE’에서 진행했다.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외관에 끌려 들어갔는데 그만큼 내부 공간도 매력적이었다고.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팝업스토어를 제안했고, AMP COFFEE 역시 흔쾌히 승낙했다.
두 번째 팝업스토어는 첫 번째보다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분당을 가로지르는 ‘탄천’을 산책할 때 입을 수 있는 티셔츠와 모자, 키링과 푸푸백(Poopoo bag, 배변봉투)을 판매하고, 오픈 날에는 실크스크린 이벤트를 진행했다. 판매 제품 중에서 제일 반응이 좋은 것은 너굴맨이 그려진 티셔츠다. 너굴맨은 ‘탄천에는 너구리 가족이 살고 있어요. 너구리가 출몰하면 만지지 마세요.’라는 안내판을 보고 전우상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캐릭터다.
키링과 푸푸백은 두 마리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AMP COFFEE와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으로, 너굴맨과 함께 AMP COFFE의 캐릭터 엔조가 그려져 있다. 카페 고객에 견주가 많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산책 시 꼭 챙겨야 하는 푸푸백을 디자인했다. 이와 함께 세트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키링은 뒷면에 반려견의 정보를 적어두는 인식표로도 사용할 수 있다.
티셔츠와 굿즈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걸 보고 혹자는 신분당씨티클럽을 패션 브랜드로 오해한다. 하지만 신분당씨티클럽은 ‘로컬’이라는 영역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브랜드다. 즉, 재미있는 일이라면 한계를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 시작이에요. 로컬이라는 핵심가치를 중심으로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싶어요.” 전우상 디자이너는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며, 분당의 로컬 씬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재미있는 활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사를 간 동네에서 친구를 만들고, 그곳에서 즐겁게 살고자 시작한 신분당씨티클럽은 로컬 브랜드의 또 다른 시작을 알려주고 있다. 분당에 살고 있는 분당러라면 이번 주말, AMP COFFEE에 가보자. 당신도 얼마든지 신분당씨티클럽이 될 수 있다. 야, 너두? 야, 나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