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9

세상을 비틀어 바라보는 시선, 버드핏 ①

하나의 장면 속 별별 이야기
버드핏, 김승환의 드로잉을 보고 있자면 실없는 웃음이 샌다. 첫눈에 발견하기 힘든 흥미로운 장면들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인데, 가령 수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장면 모퉁이에 담벼락 너머를 몰래 살피다 들킨 한 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는 식이다. 캐릭터가 짓는 의기소침한 표정도 한몫한다. 사람도, 새도, 의자도, 하물며 바닥까지 늘 침울한 눈이다. 작가가 일상의 장면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From a Bird_s View ⓒBird Pit

김승환의 활동명 ‘Bird Pit(버드핏)’은 ‘Bird(새)’와 ‘Pit(구덩이)’의 합성어다. 새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군상이 마치 커다란 구덩이에 빠진 듯 혼란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스토리 라인에 기반한다. 색연필로 그린 작업을 묶어 낸 첫 책과 SNS 계정 역시 동명이다 보니 다들 김승환을 버드핏이라 부르기 시작했단다. 일상의 장면을 풍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버드핏, 그 이름 뒤의 주인공 김승환을 만나 이야기 나눴다.

Interview with 버드핏

김승환 작가

ㅡ 대기업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7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어요. 그중 5년 가까이는 업무와 개인 작업을 병행했고요. 직장을 나와 홀로서기까지의 시간은 어땠나요?

어려서부터 막연히 창작자를 꿈꿨고,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해서는 실무에 관심이 많았어요. 작업적으로 저만의 표현법을 갖추기 전이다 보니 실무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었던 거죠. 당시는 소규모 그래픽 스튜디오가 붐이던 시기여서 관련된 일을 하다 이후에 대기업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7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회사에 소속된 상태로도 늘 개인 작업에 열망이 있었는데 스스로에 대한 불확신 등 여러 이유로 주로 틈 나는 시간을 활용해 작업했어요. 퇴근 후 들른 카페나 길거리 주인 없는 벤치가 곧 작업실이었죠. 꽤 오랜 시간 업무와 개인 작업을 병행했고, 점차 연차가 쌓이면서 제 작업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훗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 독립을 결심했습니다.

〈Bird Pit〉 ⓒBird Pit

ㅡ 〈Bird Pit〉은 색연필 드로잉만을 묶은 첫 책이죠.

연필 드로잉 책 이후 제가 펴낸 세 번째 책이기도 해요. 색연필이라는 매체를 만나니 색을 쓰는 행위가 정말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색이 좋을까, 저 색이 좋을까 하며 종이 구석마다 색 덩어리를 그려 둔 흔적이 〈Bird Pit〉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마치 새똥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분방한 느낌이 좋아 남겨뒀습니다. 매체를 탐구한 과정을 매끈하게 다듬기 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원화를 스캔해 책으로 묶었어요.

〈Bird Pit〉 ⓒBird Pit

ㅡ 색연필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한데요.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작업하기에 색연필이 가장 수월하더라고요. 눈에 띄는 장면을 소재로 활용하는 만큼 포착한 순간을 선으로 빠르게 스케치할 필요가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작업 과정에 적합한 매체를 선택한 것 같아요. 연필, 펜, 색연필…. 보관이 용이한 건식 재료 위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ㅡ 색연필이 도구로써 가지는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한 내용에 덧붙여보면 색연필은 컬러 팔레트가 정해져 있어 매력적이에요. 전문가들이 구성한 팔레트 안에서 제가 자유롭게 색을 운용할 수 있으니까요. 색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오롯이 이미지에만 집중할 수 있죠. 다만, 생각보다 악력을 많이 요하는 편이에요. 캔버스 크기가 커지면 몸에 무리가 오기도 합니다.

You play the way you practice ⓒBird Pit

ㅡ 버드핏의 드로잉 속 캐릭터들은 우울해 보이기도, 어딘가 불만족스러워 보이기도 해요. 축 처진 입꼬리와 옆을 흘기는 듯한 눈. 특유의 표정은 무엇을 말하나요?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을 투영했어요. 예민하지만 게으른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모든 것에 날 서있고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그저 관망하는 태도를 취할 뿐이에요. 세상을 바꾸는 일에 어떠한 일조도 없이 불평불만만 내뱉는 거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문득 뭔가 내뱉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설령 하찮은 것일지라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그렇게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표정으로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From a Bird_s View ⓒBird Pit

ㅡ 대체로 어떤 장면에 눈길이 머무르나요?

모순되거나 이중적인 면들이요. 사실 어떤 상황을 한 문장으로 단정 지어 말할 수가 없거든요. 차와 차가 충돌했을 때 단순히 “차가 충돌했네”가 아니라 왜 충돌했는지 그리고 이 사건을 목격한 인물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 상황의 인과나 그로 인해 촉발되는 또 다른 상황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또 의도치 않은 우리의 행동이 어떤 대상에게는 폭력이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식물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식물이 시들어버리고, 의자를 삐끗해서 바닥에 금이 가면 바닥이 괴로워하겠죠. 무엇이 존재함으로써 끊임없이 관계와 상황이 발생해요. 절대적으로 무엇을 정의하기란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주로 관찰합니다.

 

ㅡ 그 무수히 많은 상황들을 하나의 바탕에 담아내는 거군요.

먼저 종이에 점을 찍듯이 무언가를 그려요. 이후엔 점과 점을 잇는 느낌으로 연결될 법한 상황들을 상상하며 채워 나가죠. 빈 종이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저도 잘 모르는 채로 작업을 시작하는 거예요. 몇 가지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있지만, 그것들을 명확하게 묘사하기 보다 요소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확장될 수 있도록 그려 나갑니다.

Moving Dots ⓒBird Pit

ㅡ 아트북 페어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는데 국내와 국외 아트북 페어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국내와 국외를 나누기보다는 어떤 국가에서 열리는 페어인지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서양권 작가들이 많이 참가하는 페어, 로컬 작가들만 모이는 페어 등 특성에 차이가 있거든요. 예로, 뉴욕 아트 북페어(NY Art Book Fair)나 도쿄 아트 북페어(Tokyo Art Book Fair, TABF)는 1세대 아트 북페어와도 같아서 자연스럽게 신(scene)의 1세대 작가들이 모이는 편이죠.

국외 페어를 통틀어 본다면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이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이 작업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데요. 저는 오히려 그 순수한 관점이 새롭게 느껴지더라고요. 페어에 참가하는 횟수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제 작업을 다른 문화권의 관람객들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게 되었어요. 작업에 글이 필요한 경우 영어를 사용한다거나 아예 글을 배제하고 이미지로만 구성하기도 해요.

 

ㅡ 페어에 참가할 땐 무엇을 고려하나요?

되도록 신작을 출품하려는 편이에요. 관람객도 새로운 걸 보고싶어 하지 않을까요? 또 국외에서 열리는 페어는 캐리어에 책을 어떻게 담을 건지, 택배로는 어떻게 부칠 건지 등 책을 운송하는 일 자체가 부담이 되는데요. 경험이 쌓이다 보면 스스로 소개하고 싶은 작업이 분명하고, 재고도 원하는 만큼 준비되었을 때 참가하는 편이 좋겠다고 느끼죠.

기사는 세상을 비틀어 바라보는 시선, 버드핏 ② 로 이어집니다.

김가인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Bird Pit

Art
김가인
사소한 일에서 얻는 평온을 위안 삼아 오늘도 감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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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비틀어 바라보는 시선, 버드핏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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