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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6

미술관과 놀이공원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면?

바스키아, 해링, 호크니 작품이 있는 테마파크 ‘루나 루나’
1987년, 여름의 시작과 함께 독일 함부르크에서 ‘세계 최초의 예술 놀이공원’을 표방하는 테마파크 ‘루나 루나(Luna Luna)’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키스 해링(Keith Haring), 장 미쉘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등 최고의 현대미술 아티스트들이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한 놀이기구 30여 개가 있었다. 카니발은 13주 동안 열렸으며 그 동안 무려 25만명 가까운 입장객들이 ‘루나 루나’를 찾았다.
1987년 첫 카니발 당시 ‘루나 루나’의 모습.|이미지: Luna Luna
키스 해링의 회전목마.|이미지: Luna Luna

‘루나 루나’의 입구에는 소냐 들로네(Sonia Delaunay)의 초대형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키스 해링의 회전목마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환상적인 거울의 방,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가 숲을 테마로 만든 미로가 있었다. 케니 샤프(Kenny Scharf)의 스윙 라이드, 외르그 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f)의 사격장이 있는 한편으로는 바스키아가 오리지널 배경 음악까지 직접 기획한 대관람차가 있었다. 리히텐슈타인이 그림을 그린 유리 미로에는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음악이 흘렀다. 공기주입식 카페와 키오스크들까지 부대시설들마저 화려했다. ‘루나 루나’의 크리에이터인 오스트리아 출신 예술가 겸 큐레이터 안드레 헬러(André Heller)는 1976년 소냐 들로네를 시작으로 하여 1986년 키스 해링을 마지막으로 10년 넘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예술 놀이공원’에 참여할 아티스트들을 모두 섭외했다.

(왼) 장 미쉘 바스키아가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한 대관람차.
(오) 바스키아의 대관람차 도안.
이미지: Luna Luna

|모두의 도피처이자 누구나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곳

 

헬러가 미술관과 놀이공원을 한 데 모은 콘셉트의 공간을 만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일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 것, 그리고 평소에 예술을 찾지 않는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할 것. 헬러는 ‘루나 루나’에 관해 쓴 책 ‘Luna Luna: The Art Amusement Park’(Phaidon Press, 2023)에서 이곳을 일종의 예술 유토피아라고 설명한다. 예술이 관습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드러나고, 그럼으로써 일반적으로 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는 예술을 찾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마법에 걸린 나무(Enchanted Trees)’ 미로. 모델(왼쪽)과 실제 놀이기구(오른쪽).|이미지: Luna Luna

1987년의 카니발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음에도 ‘루나 루나’의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원래 ‘루나 루나’는 함부르크에서의 첫 시즌을 마친 후 유럽 투어를 돌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과 자금 문제, 그리고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의 법적 분쟁 등이 끊이지 않고 수년간 이어지면서 1987년 함부르크에서의 첫 번째 카니발은 그대로 마지막 카니발이 되었다. 헬러는 카니발을 되살리기 위해 수십년 간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기도 한 놀이기구들과, 예술 놀이공원이라는 ‘루나 루나’의 독특한 정신도 그대로 컨테이너에 갇혀 잠들어 버렸다. 시설물들은 2007년 미국 텍사스의 한 시골 창고로 옮겨진 것을 마지막으로 단 한 번도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채 방치됐다. 뜻밖의 투자자를 찾아 복원 프로젝트가 가동된 2022년까지는 말이다.

(왼) 케니 샤프의 스윙 라이드.
(가운데) 아릭 브라우어의 회전목마.
(오) 안드레 헬러의 공기주입식 카페.
이미지: Luna Luna

‘루나 루나’는 예술 경험이자 눈부신 모험

 

‘루나 루나’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만든 주인공은 래퍼 드레이크였다. 뉴욕타임스 등에 의하면 ‘루나 루나’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는 현재 드레이크가 공동설립한 엔터테인먼트 제작사 드림크루(DreamCrew)가 주축이 되어 2022년 1월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되고 있다. 드림크루는 복원 프로젝트에 1억 달러 이상을 들인 최대 투자자로, 이밖에도 예술품 수집가, 예술품 전문 변호사, 뉴욕의 아트 마케팅 에이전시 등 다수의 새 파트너들이 ‘루나 루나’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또 스타트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작곡가이기도 한 헬러의 아들 등 많은 이들이 참여해 20세기 말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유산으로 남긴 유랑 미술관을 부활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복원 프로젝트 팀은 원본 작품들 외에도, 현재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인터랙션 방식의 놀이기구 작업을 의뢰해 추가할 계획을 갖고 있다. 2023년 말까지 모든 준비 마치고 미국 LA에서 개장하는 것이 목표다. 2024년부터는 ‘태양의 서커스’와 같이 프랜차이즈로서 북미 지역을 시작으로 35년 전 중단되었던 세계 투어를 이어갈 계획이다.

1987년 카니발 당시의 모습과 2022년 LA에서의 복원 프로젝트 과정.|영상: Luna Luna 유튜브

드레이크는 지난해 말 복원 프로젝트를 공개하며 발표한 공식 성명에서 ‘루나 루나가 예술을 경험하는 매우 독특하고 특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복원 프로젝트 팀은 ‘루나 루나’에 매료된 이유에 대해, 공식 홈페이지에서 “‘루나 루나’는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누구에 의해 경험하는지에 대한 공간을 열어준다”고 설명한다. 또 “‘루나 루나’는 자신의 상상력의 가능성과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어지럽고 눈부신 모험”이라고도 말한다.

헬러는 복원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루나 루나’의 사연과 사진을 담은 책의 개정판을 냈다. 1987년 개장 당시 독일어로 출판된 책을 영어로 번역하고 보완하여 예술 전문 출판사 파이돈 프레스를 통해 펴낸 것. 놀이기구 각각의 스케치와 현장 이미지 및 자세한 설명, 그리고 첫 카니발 당시의 분위기와 현재 진행 중인 복원 과정 사진이 총 336페이지, 350개 이미지 자료로 담겼다. ‘루나 루나’가 새로 개장하고 나면 복원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공개될 예정이다. 공식 웹사이트에서 놀이기구들에 대한 설명과 당시 방문객들이 즐기는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박수진 객원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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