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8

디자이너가 말하는 ‘구부림’은 무엇인가?

디자인 창작 그룹 WorkPlay, <구부림>전
디자인 기반의 창작 그룹 WorkPlay의 첫 번째 전시 <구부림>이 오는 3월 19일(일요일)까지 산업 디자이너 송봉규의 스튜디오 BKID에서 열리고 있다. 클라이언트 일에서 벗어나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하고자 한 디자이너에게 주어진 공통 주제는 바로 '구부림'. 디자인 창작 및 수용 과정에서 마주하는 구부러진 형태의 조형적 특징에 주목해 참여 디자이너 각자가 해석한 구부림의 정의를 이야기한다.
WorkPlay 전시 전 전경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전시 서문에 따르면 구부림은 곡선의 부드러움, 자연스러움, 유연함, 방향의 전환 등 감각적 가치를 사물 혹은 대상에 부여하는 행위이자 동시에 기계와 기술, 물질 재료 등이 디자이너에게 부과하는 제약 조건에 섬세하게 맞서는 기교적 행위이다. 이번 전시는 그간 감각과 기술, 사회문화적 배경과 시각 결과물에 가려진 조형 창작 과정 속 디자이너의 복합적인 고민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전시 기간이 비교적 짧은 점은 아쉽지만 디자이너를 비롯해 크리에이터에게 작업적 환기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놓치기 아쉬운 전시이다.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과 함께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성용, 최호랑 기획자와 나눈 짧은 이야기를 아래에서 만나보자.

MATERIAL SEOUL #3 VORTEX

이장섭 + Day1Lab

이장섭 디자이너와 Day1Lab이 함께 선보인 'MATERIAL SEOUL #3 VORTEX'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이장섭 디자이너와 Day1Lab이 함께 선보인 'MATERIAL SEOUL #3 VORTEX'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이장섭 디자이너는 플라스틱 대체 신소재 개발 회사 Day1Lab과 협업한 프로젝트 〈MATERIAL SEOUL #3 VORTEX〉를 선보였다. 이들이 주목한 건 바로 해조류 기반의 바이오플라스틱. 이는 자연에서 빠르게, 그리고 완전히 분해 가능하다는 소재의 장점을 지녔지만 제품 개발을 위한 가공성과 안정성 면에서는 기존 플라스틱을 뛰어넘지 못하는 문제를 겪고 있다. 이장섭 디자이너와 Day1Lab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전시 주제 ‘구부림’을 연결했다.

 

평면의 얇은 필름을 입체적으로 변형하는 것부터 필름의 두께, 수분 증발로 인한 뒤틀림, 보강재 첨가물 변경을 통한 가공성 향상 시도까지. 바이오플라스틱의 가공성을 높이는 실험 과정의 면면을 소개했다. 아울러 일련의 작업 과정 속에서 이들은 새로운 자연 패턴을 우연히 발견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소재의 특성과 패턴 디자인을 에코백 제작에 활용했다. 소재의 실험과 발견부터 제품 제작까지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과정을 한눈에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SKIN ON FRAME 12FT

STEAM WOOD BEND CANOE

송봉규, 정순구, 김민창(Assistant), Cape Falcon CFK 66 Plan(Reference)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송봉규, 정순구, 김민창, Cape Falcon CFK 66Plan은 프레임과 카누 외피가 분리된 구조를 선보였다.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송봉규, 정순구, 김민창, Cape Falcon CFK 66Plan은 인간이 고안한 모빌리티 디자인 중 가장 오래된 카누를 주목했다. 이들은 카누 빌더들이 제작해 둔 메뉴얼을 참고해 작업 환경에 맞춰 계량한 카누 프레임을 선보였다. 특히 합판, 유리섬유, 금속 등 다채로운 재료 중에서도 나무를 활용해 가장 가볍게 제작할 수 있는 스팀 밴딩 공법으로 카누 프레임을 제작했다. 유연성과 강도를 모두 충족해야 하는 프레임 제작 과정 속에서 이들은 ‘구부림’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데, ‘카누’라는 사물이 대중에게 낯선 만큼 디자이너의 설명을 함께 들으면서 감상하길 추천한다.

디자인 작업 과정에 참고한 우드 카누 빌더들의 메뉴얼과 디테일 작업 모습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ARCHARCH

성정기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성정기 디자이너의 'ARCHARCH'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성정기 디자이너가 소개한 가구 디자인 ‘ARCHARCH’는 하늘에 다다르고 땅을 이기려는 ‘아치’의 건축적 이상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그는 가구로서 간결한 쓰임이 강조되는 일상 속 ‘아치’의 모습을 표현했는데, 아치 하나를 한 그루의 나무로, 나아가 여러 개의 아치가 모인 복합 단위에서는 하나의 숲으로 확장되는 의미를 가구 디자인에 부여했다. 구부림이 지닌 형상과 건축의 개념인 아치를 접합한 디자인에 개념적 의미를 더해 해석한 점이 인상적이다.

성정기 디자이너의 'ARCHARCH'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GUVRI

조기상, 김민지, 이양지, 김중훈(Assistant Designer)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GUVRI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조기상, 김민지, 이양지, 김중훈이 소개한 ‘GUVRI’는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구부러진 술잔, 즉 주기이다. 이들은 동양 문화권에서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예절 문화로부터 아이디네이션을 시작했는데, 그 종착지가 바로 술자리이다. 현대에도 여전히 구부리고 기울임이 필요하거나 요구되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바로 술자리라고 생각한 것. ‘구부리(GUVRI)‘는 이처럼 우리네 정서와 문화에 맞게 이들은 주기와 주병에 기울임의 디자인을 담았다. 전시장에 놓인 이들의 작품 설명에는 고부 관계 속 구부림에 대한 고찰도 적혀있으니 찬찬히 읽어보길!

TYPETUBE

이성용+ Michel Buetepage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입체 서체 시리즈 중 첫 번째 작업인 'TYPETUBE'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산업 디자이너 이성용과 그래픽 디자이너 미쉘 뷰테파게(Michel Buetepage)가 소개한 ‘타입튜브’는 이들이 함께 제작한 입체 서체 시리즈 중 첫 번째 작업이다. 튜브벤딩 가공 방식으로 제작했다. 타입튜브는 튜브를 구부려 표현한 새로운 형태는 물론, 튜브의 새로운 성질과 구조 그리고 표면 마감 처리에 따른 빛의 반사와 다양한 색 구현이 특징이다. 기존의 평면 서체를 개발하는 것과 다르게 공간과 빛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러한 성질로부터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도 타입튜브의 또 다른 재미이다. 이들이 제안하는 입체 서체의 매력도 놓치지 말자.

mini interview

이성용 디자이너 & 최호랑 기획자

(왼쪽) 이성용 디자이너 (오른쪽) 최호랑 기획자

WorkPlay의 결성 배경이 궁금합니다.

성용/호랑. 작년에 DDP에서 멘토링을 하며 멤버들이 함께 모일 일이 몇 번 있었어요. 이렇게 모인 김에 ‘뭐 간단하게라도 한번 해보자’ 하며 모이게 되었습니다.

WorkPlay의 첫 번째 전시 입구 모습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느슨한 연대로 불리는 ‘콜렉티브’와는 또 다른 개념일까요? WorkPlay는 어떤 점에서 기존의 콜렉티브와 다른지 궁금하네요.

성용/호랑. 아직 명확하게 이렇게 다르다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직 많은 부분을 이야기해야 하고, 서로 가지고 있는 생각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죠. 현재는 ‘브리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디자인 개발을 해본다’ 정도이지만 이마저도 앞으로의 진행 방식으로 굳어진 건 아닙니다.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WorkPlay의 전 전경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WorkPlay의 첫 번째 전시 주제가 ‘구부림(Bending)’인데요. 이를 조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성용/호랑. 무엇이 되었건 전시를 진행하기 위해서 하나의 주제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십여 개의 후보를 두고, 공동 기획을 맡은 최호랑과 이성용 디자이너가 함께 논의했는데 자연스럽게 주제가 ‘구부림’으로 좁혀졌습니다. 처음부터 든 생각인지, 아니면 최근에 정리된 것인지는 다소 헷갈리지만 ‘구부림’은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기에 전시를 기획하기에 좋은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조형미로 풀어낼 수도, 또 제작 과정과 기법에 주목할 수도 있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허리나 머리를 구부린다(굽힌다)’라는 표현처럼 관습화된 언어에서도 힌트를 얻을 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

WorkPlay의 전 전경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이번 전시에서 참여 작가이자 동시에 공동 기획자로 참여하셨는데요. 본인은 구부림을 어떻게 정의하시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호랑. 전시장에 가져다 둔 기획 노트에 처음 전시 주제를 제안하며 쓴 글을 다듬어 실었습니다. 구부림을 다소 자유롭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하고자 한 이야기는 여기에 담겨 있죠. 요약하자면 구부림은 형태와 조형에 관한 명사형 단어이지만, 이를 가치에 관한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효 기간이 지났으나 여전히 공고하고 단단한 기성의 질서를 구부린다는 차원에서 말이죠.

WorkPlay의 전 전경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한편, 전시 준비 과정에서 어려웠던 부분은 없었나요?

성용/호랑. 친분에 기초한 느슨한 모임이고, 재정적 지원을 받거나 유료 대관 전시장을 예약해 둔 것이 아니다 보니 긴장감을 가지기 어려웠던 점. 실제로 전시 일정을 몇 번이나 연기했는데 이런 식으로 한없이 늘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의지를 다지지 못하게 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각자 생업이 있는 상황에서 결연한 의지를 가지는 상황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았고, 또 그런 태도가 꼭 바람직했을 것 같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보통의 기획자에게 늘 따라붙는 고민들이 있었죠. 다시 말해 창작자의 창작 과정에 관해, 그리고 공동의 과업을 나누는데 어느 정도 의견을 낼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 전시는 기획자가 제작비를 지급하는 것도 아니었고, 참여자 각자가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참여한 형태라 애매하고 어려운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WorkPlay의 전 전경 ⓒFENOMENO Creative Associates

이번 전시를 포함해 관객이 ‘디자인 전시’를 보다 재밌게 볼 수 있는 팁이 있다면 무엇일지도 궁금합니다.

성용/호랑. 현업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경험 많은 디자이너들이 나름대로 결과물을 내어 놓은 만큼 각각이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의 미감이나 조형적 완성도부터 그 제작 과정이나 동기까지 차분히 훑어보면 각각의 작업을 보다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시장 한편에 제작 과정에 대한 이미지를 반복해 재생하고 있으니 이를 보시는 것도 좋겠네요. 비록 작은 규모의 전시장이지만 어떤 분들은 한 시간에 가깝게 머물면서 이것저것을 뜯어보곤 하시더라고요.

WorkPlay가 준비 중인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성용/호랑.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주기적으로 전시를 열고, 서로 역할도 조금씩 달리해 보자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생각이 여전히 유효한지 모르겠습니다. 전시를 마치고 이번 전시가 각자에게 만족스러웠는지, 또 어떤 의미였는지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project credit

 

 

기획                최호랑 + 이성용

전시 그래픽     Michel Bütepage

그 외 모든 것   WorkPlay

Instagram      @workplay2023

 

 이정훈 기자

자료 제공 WorkPlay

프로젝트
〈구부림〉
장소
BKID 연희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길 45-6, B1
일자
2023.03.11 - 2023.03.19
시간
13:30 – 18:30
참여작가
성정기, 송봉규 + 정순구, 이성용 + Michel Bütepage, 이장섭 + Day1Lab, 조기상 + 김민지, 이양지, 최호랑
이정훈
독일 베를린에서 20대를 보냈다. 낯선 것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쉽게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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