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협업에서는 아티스트의 시그니처인 ‘도트’만 집중적으로 사용했다면, 이번에는 도트 외에 작가의 호박과 꽃 작품까지 활용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컬렉션 곳곳에는 개성 넘치는 질감을 가진 도트들이 흘러넘치고, 꽃 그림에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패턴은 컬렉션에 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호박 조각 작품은 홍보 영상에서 그 매력을 슬며시 보여주는 동시에 작은 소품으로 만들어져 컬렉션의 다른 제품에 매력을 더하는 존재가 되었다.
두 번째 협업인 만큼, 루이 비통이 협업을 드러내는 방법도 다채롭고 재미있어졌다. 작가와 작가 작품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티저 영상을 시작으로, LED 전광판을 활용한 3D 애니메이션 영상, 도트가 가득한 팝업 스토어 등이 전 세계에서 선보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가장 화제가 된 곳은 루이 비통의 샹젤리제 스토어였다. 건물 외벽에는 작가가 건물을 내려다보며 도트를 그리는 듯한 조형물이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의 해로즈(Harrod’s) 백화점에서도 벽에 도트를 그리고 있는 듯한 작가의 모습을 담은 거대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어 화제가 되었다. 루이 비통이 이렇게 작가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이유는, 그만큼 작가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컬렉션을 홍보하는 캠페인에는 유명 모델들이 앞다투어 나와 그 명성을 드러냈다. 현재 유명 모델인 벨라 하디드를 시작으로, 모델계에서 전설로 꼽히는 모델인 지젤 번천, 칼리 클로스, 크리스티 털링턴, 나탈리아 보디아노바, 데번 아오키 등이 기꺼이 캠페인의 모델이 되었다. 컬렉션에서 볼 수 있는 도트가 사진 위에 덧붙여져 입체감을 드러내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는 루이 비통의 혁신적인 기법과 장인들의 노력을 통해 컬렉션에 실제 작품과 유사한 질감을 선보인 것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루이 비통은 예전부터 예술계에 아낌없는 후원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하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이를 통해 아티스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브랜드에 잘 녹여내며 브랜드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사람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선사했던 협업은 일본의 또 다른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
2002년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마크 제이콥스가 작가에게 협업을 제안해 성사된 이 협업은 브랜드와 작가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다. 루이 비통은 이 협업으로 인해 젊은 이미지를 얻게 되었으며, 작가는 고급 예술과 상업의 경계 속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전을 진행하면서 디렉터와의 불화와 더불어 운영하던 카이카이 키키의 직원들의 대거 퇴사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작가에게 한 줄기 빛이나 마찬가지였던 협업이기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 ‘모노그램 멀티컬러(Monogram Multicolor)‘는 출시되는 즉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덕분에 무라카미 다카시는 2015년까지 루이 비통과의 협업을 진행하며 다양한 디자인을 남겼다.
모노그램 멀티컬러와 더불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 스테판 스프라우스(Stephen Sprouse)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모노그램 그라피티(Monogram Graffiti)’ 또한 루이비통을 대표하는 협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는 그라피티와 펑크를 패션에 접목시키는 시도로 화제를 모았던 스프라우스의 자유분방함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고풍스러운 모노그램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출시와 동시에 모든 제품이 품절 사례를 빚었다. 이런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루이 비통은 처음 컬렉션을 선보였던 2001년에 이어 2009년에 새로이 한정판을 내놓았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처음 선보였을 때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그다음으로 화제가 되었던 것은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의 협업이었다. 수많은 협업을 통해 이름을 알린 슈프림은 매번 내놓는 디자인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브랜드다. 하위문화로 여겨지던 스트리트, 스케이트 보더 문화를 주류로 올려놓은 공신으로 인정받는 만큼, 루이 비통과의 협업은 뜨거운 감자가 되기 충분했다.
당시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Kim Jones)가 먼저 슈프림에 손을 내밀었고, 현재까지도 화자되는 협업이 완성되었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가죽 가방에 새겨진 슈프림 로고나, 옷과 스케이트보드에 가득 채워진 모노그램과 슈프림 로고 패턴을 보면 왜 이 협업이 사람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는지 알게 된다. 이 흥미로운 협업을 통해 사람들은 스트리트 감성도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패션 하우스들은 스트리트 브랜드와의 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게 된다. 또한 킴 존스가 떠난 자리에 스트리트 패션의 대가로 인정받은 버질 아블로가 들어오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협업으로 패션계의 판도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협업 당시에는 평이 좋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뜨거운 인기를 얻는 협업도 있다. ‘키치의 제왕’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와의 협업이 그랬다. 그동안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신선한 분위기를 추구해왔던 루이 비통이었지만, 제프 쿤스와의 협업은 신선함을 넘어 엉뚱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예술계에서 ‘악동’이라 불렸던 작가의 진가가 협업을 통해 드러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방 전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빈센트 반 고흐, 티치아노, 루벤스 등 유명한 화가의 명작이 프린트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을 프린트한 것도 모자라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까지 박아 넣었다. 또한 컬렉션 구매자들에게는 원작자의 초상화와 전기가 담긴 책을 함께 제공했다. 컬렉션의 이름인 ‘마스터스(Masters)’에 걸맞은 아이디어와 디자인처럼 보였지만,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리 차가웠다. ‘박물관 기념품 숍에 있는 굿즈’라는 평을 들으며 예술과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의 종말을 알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 협업은 시간이 지나면서 작가의 연작인 ‘게이징 볼(Gazing Ball)’에 이어지는 ‘작품’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으며, 리셀 가격도 오르고 있다. 명작과 관객이 한 공간 안에 있게 만드는 게이징 볼 시리즈를 통해 작품과 상호작용을 도왔던 작가는 다시 한번 패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작품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고, 이런 개념이 사람들의 마음을 서서히 사로잡은 듯하다. 이런 기반에는 현대 미술을 비롯한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
협업마다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던 루이 비통은 올해 쿠사마 야요이 뿐만 아니라 아티카퓌신 프레젠테이션(ArtyCapucines Presentation)을 통해 여러 작가들과 협업을 진행한 것을 전 세계에 알려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협업에서 눈여겨볼 점은 한국 예술가 최초로 박서보 화백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박 화백이 1960년대 말부터 계속 작업해온 ‘묘법’ 연작 중 2016년 작을 기반으로 협업이 이루어졌다.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재질감, 컬러감을 가방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와 더불어 다니엘 뷔랑, 우고 론디노네, 피터 마리노, 케네디 얀코, 아멜리 베르트랑 등의 아티스트가 참여하여 개인의 개성을 뽐냈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꾸준하게 협업을 진행하며 사람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루이비통은 계속해서 협업을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그 협업은 늘 그래왔듯,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앞으로 선보일 협업들을 기대해 본다.
글 박민정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