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5

최소한의 공간으로 여유를 주는 해외 건축물 4

대자연 속에 지은 작은 집들
작지만 효율적인 집이 가진 가치는 주로 도시에서 빛을 발한다. 좁은 공간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집 밖으로 생활 공간을 확장해 나가면서 집 앞 거리와 살고 있는 도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작은 집만이 가진 미덕은 한적한 자연 속에서도 유효할 수 있다. 최대한 창 밖의 자연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작은 건물을 짓는 경우나, 단순하고 제한적인 공간에서 뜻밖의 마음의 여유를 얻으려 하는 경우다. 눈 앞에 넓은 숲이 펼쳐져 있다고 해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게 정답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작은 집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고요 속 홀로 자연을 마주하는 ‘은둔처’

이미지 출처: llabb Architettura

이탈리아 아펜니노 산맥에 자리 잡은 12제곱 미터 짜리 오두막 ‘허미터지(The Hermitage)’는 안정감과 심플함이 돋보이는 개인 소유 별장이다. 일본의 다실과 북유럽의 산장에서 영감을 받아 목재로 직사각형 공간을 만들었다. 조립식으로 지은 이 오두막의 한 면은 완전히 열린 통창이다. 오두막 안에는 작은 화장실이 있고, 화장실을 제외한 생활 공간에는 한 명이 사용할 만한 데스크 및 테이블 공간과 접이식 침대가 있다. 화장실은 물탱크와 퇴비 생산 바이오 변기를 이용하는 자체 처리식 친환경 화장실이다. 남쪽으로 난 통창을 열면 작은 테라스로 이어진다. 테라스는 한 명이 의자를 놓고 쉬거나, 요가를 할 수 있는 정도 크기다. 강한 햇빛을 가리기 위해 동쪽에 나무 패널 벽을, 위에는 패브릭 커튼을 설치했으며 그 외에는 산을 향해 최대한 개방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호빗들의 동굴을 닮은 코티지

이미지 출처: airbnb

미국의 한 숲 속에는 호빗들이나 피터 래빗이 살 것만 같은 작은 오두막이 있다. 오두막의 이름은 ‘더 샤이어 캐빈(The Shire Cabin)’이다. 뉴욕 북부 케노자 호수 인근, 언덕과 숲, 그리고 연못과 산책로가 가득한 39헥타르의 거대한 농장 안에 더 샤이어 캐빈이 오롯이 서있다. 귀여운 아치형 창문들 옆으로 넝쿨 식물과 가지런한 화분이 영국의 시골을 닮은 주위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더 샤이어 캐빈에서는 주변을 산책하고,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어린이들과 반려동물들은 오두막 앞으로 넓게 펼쳐진 들판 어디서든 뛰어놀 수 있다. 오두막 옆에는 작은 화목식 사우나가 설치되어 있다. 뒤로 보이는 개조된 헛간에는 간단한 운동기구와 소파, 화실이 있어 독특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작아 보이지만 주방과 화장실을 갖췄고, 최대 4명까지 숙박할 수 있다. 조용한 숲 속에서 일상을 환기하고 싶을 때 가기 좋은 곳이다.

힐링 스폿으로 다시 태어난 캡슐 호텔

이미지 출처: airbnb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의 숲 속, 도심을 떠나 산길을 차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여러 개의 캡슐이 옹기종기 모인 형태의 숙소 ‘캡슐하우스 K (CAPUSULE HOUSE-K)’가 있다. 이곳은 도쿄의 상징이자 메타볼리즘(Metabolism) 건축의 대표주자였던 ‘나카긴 캡슐타워’의 구성품 캡슐 일부를 재활용해 만든 여행자 숙소다.

메타볼리즘 건축이란 ‘신진대사’라는 말 그대로 낡은 부분을 새로운 부분으로 교체해가며 수명을 이어가는 건축 사조를 말한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1960년대 일본에서, 변하는 도시의 모습에 맞게 건축물도 적응해 변화를 거듭해가야 한다는 의미로 탄생했다. 나카긴 캡슐타워는 메타볼리즘 건축을 주도한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가 1973년 도쿄 긴자에 지은 모듈식 소형 주거 빌딩이었다. 이 역사적인 건물의 캡슐 몇 개가 나가노현으로 옮겨져, 지난해에 관광객용 숙소로 새롭게 문을 연 것이 캡슐하우스 K다. 건물의 가치를 알아본 이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캡슐 보존과 개조를 지원했다. 그 과정을 거쳐 이른바 ‘원조 캡슐호텔’은 2020년대에 맞는 캡슐호텔로 다시 태어났다.

이미지 출처: airbnb

캡슐하우스 K는 거실 공간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캡슐이 연결되어 4~7명의 손님이 동시에 묵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주방, 욕실 등의 기능적인 공간과 함께 50년 전 빌트인으로 설치된 텔레비전이 그대로 남아 있어 자연스러운 ‘레트로 SF’풍을 만들어낸다. 거실의 조명과 가구, 오브제 상당수가 구로카와 기쇼가 사용하던 것이며, 그가 생전에 그린 스케치도 전시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다다미와 미닫이 문을 군데군데 활용해 예스러운 정취를 더한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한 시간 반 거리의 가루이자와는 아사마산의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도시 주민들의 주말 휴양지로 인기 높은 곳이다. 캡슐하우스 K를 디자인한 미라이 구로카와 디자인 스튜디오(MIRAI KUROKAWA DESIGN STUDIO)는 이곳의 주변 환경을 산과 자연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도쿄의 바쁘고 팍팍한 삶을 상징하는 초소형 원룸 아파트가,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옮겨와 느리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휴양 주택이 되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미라이 구로카와 디자인 스튜디오는 공식 웹사이트에 ‘가족과 친구, 소중한 사람과 이 건물에 흐르는 조용한 시간 속에서 자연과 도시,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라고 적고 있다. 지난해 가을 영업을 시작한 캡슐하우스 K는 현재 잠시 동절기 휴관 기간을 갖는 중이다. 오는 4월부터 다시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을 예정이다.

어린이가 있는 가족을 위한 초미니 별장

이미지 출처: Madeiguincho

포르투갈의 소도시 멜리데스는 깎아지른 산과, 그 아래 조금은 황량한 평원과 바닷가가 이어져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 해안 도시다. 포도 농장과 코르크 농장이 있지만 주민의 수가 많지 않아 비교적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멜리데스의 평원에 나무로 만든 작은 오두막, ‘콜럼바(Columba)’가 서있다. 트리하우스의 형태를 한 이 오두막은 어린이가 있는 가족을 위한 초미니 별장이다. 입구로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미끄럼틀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지붕 위에는 침실을 겸하는 작은 다락이 딸려있어, 온 가족이 함께 별을 보거나 해가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미지 출처: Madeiguincho

오두막은 나무의 일부가 된 듯 안과 밖 모두 목재를 사용했다. 그 덕분에 건물 안에서도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좁지만 생기 있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콜럼바는 목재로 만든 협소주택과 가구를 주로 제작하는 포르투갈의 건축 디자인 스튜디오 마데이긴쇼(Madeiguincho)가 설계했다. 경험과 전문성이 있는 만큼 오두막 안에서도 기능적인 공간과 휴식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한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거실과 주방, 자는 곳을 구분하는 문이 없는 좁은 스튜디오 공간이지만, 삼나무, 소나무, 자작나무 등 나무의 종류를 달리하여 기능이 다른 부분들을 질감으로 구분한 점도 눈에 띈다.

박수진 객원 필자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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