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테마, 이른바 간병과 노인문제와 가족 내 젠더 이슈 등을 과감하게 선택하고 진실성 있게 다뤄낸 놀라운 작품입니다. (중략) 인물들을 매우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한편, 그들의 상황을 매우 영화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는 성취를 이뤄낸 이 작품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심사평을 받은 이 작품은 가장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다뤄냈다는 점에서 의미는 물론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작품을 만든 정은욱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Interview with 정은욱 감독
— 반갑습니다. 우선 간단하게 감독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정은욱입니다. 세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했고, 현재는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습니다. 오는 일은 막지 않는다는 신조(?) 아래 다큐멘터리 영화를 편집하거나 방송국에 다니기도 하면서 다양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 감독님께서는 <그리고 집>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수상하셨어요. 그때도 소감을 말씀해 주셨는데, 이후 감독님께 생긴 변화가 있으시다면?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많은 축하를 받았는데, 사실 그때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논문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수상 이후의 제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영화를 하는 데 있어 큰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이다, 하는 그런 마음이 생겼어요.
— 주제 의식도 주제 의식이지만, 저는 그 주제 의식을 극대화하여 표현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연출과 전개는 언제부터 고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이나 이야기가 화면을 통해 보였을 때 관객분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가장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구상하는 첫 단계부터 마무리하는 단계까지 이러한 부분을 가장 신경 쓰고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 사실 전작인 <틈>이나 <아유데어>만 해도 상실이나 갈등을 몰아붙이는 느낌이 인상적이지만, 이 정도로 극단적으로 밀진 않잖아요. 이번 작품을 만들 때 남다른 각오, 혹은 뭔가 결심이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런가요? 시나리오 초기에는 장르의 문법을 적극 차용하며 지금보다 더 극단적인 설정과 이미지들이 많았습니다. 장르 영화에 대한 열망도 있었고, 제가 느꼈던 일상의 공포를 영화의 주된 정서로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준비하면서 공포보다는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인물의 감정라인에 좀 더 주력하고자 했고, 초기에 구상했던 많은 부분들이 수정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버전에서 시나리오 초기에 있었던 강렬함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그리고 집>이 지닌 영화적 상상력은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단순히 시각적으로 구현하면서 그 장치들이 매력적인 것도 있지만 그게 내용을 타고 간다고 해야 할까요, 그 주제 의식이나 주인공이 겪는 마음을 너무 잘 보여줘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영화를 만들면서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분들이 제가 그랬듯 이 주인공을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 영화가 끝나고 어떤 관객분이 다가오셔서 수진(주인공)이가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꼭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이 이야기와 감정에 공감을 하시는구나, 생각하면서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에 장르를 활용한다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처럼 영화는 어떻게 보면 호러라는 장르의 요소를 담고 있기도 해요. 이러한 문법을 택하신 이유나 계기도 궁금합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의 일상에는 늘 불안과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이 제 영화의 톤 앤 매너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집>은 부양이나 돌봄 노동에 관한 공포가 주를 이루었지만, 이전 단편인 <틈>과 <아유데어>에서는 일상의 긴장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다만 <그리고 집>은 집이라는 공간이 주인공에게 공포로 다가오며 그것을 직접 감각하기 때문에, 이를 관객분들도 느끼게 하려면 장르적인 요소를 좀 더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 들어 장르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빌려 표현해 보았습니다.
— 전작인 <아유데어>의 경우에도 SF의 요소를 지니고 있고, 그런 부분이 이번 작품만큼은 아니지만 드러나기도 해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원래도 여러 장르에 관심이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집>까지 만들고 나니 그동안의 제 영화들이 장르가 겹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창작자가 아닌 관객으로서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해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지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구로사와 기요시의 호러 장르 영화들뿐만 아니라 멜로 드라마 작품들도 좋아하고, 더글라스 서크의 가족 멜로 드라마도 너무 재밌고, <사랑은 비를 타고>는 스무 번도 넘게 본 것 같고, 오우삼의 영화들도 재밌고…. 저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단 생각을 늘 합니다.
— <아유데어>에서는 이명에 가까운 사운드가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번에는 좀 더 시각적인 부분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데요. 앞으로도 이러한 영화적 상상력이 담긴, 경험이 극대화되는 감상을 다음 작품에서도 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영화는 이미지와 사운드로 표현되는 매체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에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유데어>와 <그리고 집>은 그런 저의 관심을 여러 방법으로 시도해 본 작품입니다. 앞으로도 잘 연구해서 재밌는 시도를 하는 영화를 만들고 선보이고 싶습니다.
— 장르의 활용이나 화면 구성에 있어 영화적 상상력을 더하는 데 있어 나름의 비결이 있으시다면.
뻔한 얘기 같지만, 다른 분들의 조언처럼 좋은 영화와 책을 많이 보고 공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런 작업들이 사실 구현 후에 관한 확신이나 믿음이 없으면 현장에서는 그 과정이 어렵기도 할 것 같아요. 작업에 있어서도 전작보다 더 많이 고생하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제 나름 책과 영상을 찾아보면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했지만 이게 정말 가능할지 확신이 안 설 때가 있어요. 이번 작품은 좁은 공간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렌즈를 이용한 장면도 많았고, CG 처리를 해야 하는 부분도 꽤 있었기에 좀 더 어려웠습니다. 박병규 촬영감독님이 워낙 베테랑이셔서 큰 도움을 받았고, VFX를 한 여진희 씨는 제 친한 친구이자 동료인데 그분에게도 많은 조언을 들었습니다. 다른 스태프분들의 도움도 컸고요. 그렇지만 준비를 열심히 해도 현장에서는 늘 변수를 만나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선택의 기로에 서고요. 확신을 가지고 촬영에 임해도 순간 이것이 맞는 것인지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있는데, 열심히 준비해온 제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게 맞을거라 생각하며 촬영했습니다.(웃음)
— 영화가 가진 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어둡고 습한데 그러면서도 또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더 짧게 느껴지고 몰입감이 느껴지는데요. 화면의 전환이나 속도감에 있어서도 많은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이러저러한 시도를 해보느라 편집 기간이 예상보다 조금 더 길어졌어요. 영화가 가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일종의 시적인 편집을 해보고자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불친절한 편집이 될 수도 있지만, 보시는 관객분들의 궁금증과 상상력을 유발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러닝타임보다 더 짧게 느껴졌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저는 아직도 영화의 호흡이 그날그날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느 날엔 적당한 것 같다가, 빠른 것 같다가, 느린 것 같다가… 정말 어려운 작업이구나 늘 깨닫고 있습니다.
— 작품의 제작 기간은 어느 정도였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집>은 원래 제가 대학 졸업 작품으로 찍으려던 영화여서 2019년쯤에 대략적인 시나리오를 완성했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촬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2021년에 영화진흥위원회와 성남문화재단에서 제작비 지원을 받게 되어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프리 프로덕션은 2021년 가을쯤부터 시작을 했고요, 촬영은 그해 11월 말에 4회차 진행을 했습니다. 포스트 프로덕션은 좀 더 여유를 두고 작업했고, 2022년 6월에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 음악의 경우 전작에는 아도이가, 이번에는 조월이 크레딧에 적혀 있는데요. 보통 어떤 식으로 함께 작업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영화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그때부터 저 혼자 어떤 이미지와 분위기의 영화가 될지 상상을 많이 해보는 편입니다. 그때 음악을 많이 찾아 듣기도 하고, 시나리오를 쓸 때도 음악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아유데어>는 아도이와 짙은, 신해경, 시규어 로스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그리고 집>은 조월과 스파클호스의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리고 집>의 원래 제목이 ‘홈커밍퀸’이었습니다. 스파클호스의 ‘홈커밍퀸’을 꼭 영화에 쓰고 싶어서… 그런데 막상 편집본에 붙여보니 분위기가 잘 맞지 않아서 쓰지 못했습니다) 편집을 하면서 어떤 음악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면 아티스트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서 작곡 의뢰를 하거나 음악 삽입에 대한 허가를 받았습니다. 아도이와 조월은 제가 개인적으로도 너무 팬이었는데, 음악 사용을 허락해 주셔서 영광스럽고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 올해 <그리고 집>을 더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혹시 예정된 것들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공식 발표 전이라 언급을 할 순 없지만, 올해 더 많은 곳에서 상영하여 더 많은 관객분들을 찾아뵙고 싶습니다.
— 아직 <그리고 집>이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혹시 차기작에 대한 계획도 있으실까요.
요즘은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온다면 좋은 영화로 또 관객분들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 박준우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정은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