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나이키’를 만들던 부산
부산은 국내 신발 산업의 메카다. 국내 신발 산업의 시초는 1912년 일본에서 고무신이 들어오면서부터. 이후 고무신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산항은 고무신의 원료인 고무를 일본으로부터 빠르고, 쉽게 수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항구라는 이점을 배경으로 1920년대 부산에는 삼화고무, 태화고무, 동양고무, 국제상사 등 신발 제조 기업이 다수 등장했다. 각 기업은 자신들만의 공정 시설과 새로운 공법을 개발하며 신발 제조에 박차를 가했다. 대표적으로 국제상사는 컨베이어벨트 생산 기술을 개발했고, 태화고무와 삼화고무는 고무 원료에 황을 첨가해 탄성을 높이는 가황 처리 공법을 도입했다. 뛰어난 생산력과 높은 품질을 보장하는 부산의 신발 산업은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세계 최대의 신발 생산 도시 중 하나로 손꼽혔을 정도로 해외 주문량이 많았는데,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1974년 삼화고무에 직접 찾아와 3,000켤레의 나이키 신발을 주문한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발을 매만지는 일에는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노동 집약적 구조와 함께 높아진 인건비가 발목을 잡았다. 더욱이 이들이 생산하는 신발의 95%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이었다. 즉, 주문자인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신발 생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어느 날 클라이언트가 신발 주문을 하지 않으면, 신발을 만들지도 판매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자체 브랜드를 키우지 않은 것이 패찰이었다. 줄어드는 주문량과 높아지는 인건비를 견디지 못하고 부산의 신발 산업은 결국 사양 산업으로 전락했다.
사양 산업에 뛰어든 사나이
먼슬리슈즈 이제한 대표는 2018년 11월 처음으로 신발 사업을 시작했다. 그전까지 그는 주방기기를 판매하는 현 벽산그룹의 계열사 ‘하츠’에서 근무했다. 영업 7년, 마케팅 3년, 경영기획 3년을 거치며 기업 운영 노하우를 공부했다고. “특히 마지막에는 경영기획팀에서 사업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아요. 회사 내에서 한 가지 이슈를 두고 부서별로 입장이 다른데,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팀과 구성원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죠. 베이크솔을 운영하는 지금도 문제가 생기면 그때의 경험을 거울 삼아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어요.”
13년의 직장 생활을 갈무리할 즈음, 부산에서 신발을 제조하는 회사 케이맥스를 운영하는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 이원호 케이맥스 회장은 과거 태화고무 기술 입사를 시작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글로벌 신발 제조사 ‘컨버스’ 아시아 지역의 품질 관리까지 도맡았을 정도로 부산 신발 업계에서도 손에 꼽는 전문가다. 부산 신발 기업들이 높아진 인건비를 견디지 못해 모두가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때, 이원호 회장은 부산에 남아 2005년 케이맥스를 설립해 묵묵히 신발을 만들었다. 도전과 실패를 반복해 일본으로 수출 활로를 개척해 기업을 유지했다. 이제한 대표는 산전수전을 겪은 아버지 밑에서 신발 제조 과정을 익히고, 신발 산업의 역사와 생태계를 몸소 체험하며 배웠다.
하지만 부자가 함께 사업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경험과 가치관이 달랐다. 부산 신발 산업의 전성기에 기업을 이끈 이원호 회장은 대량 생산과 수주에 무게를 뒀다면, 이제한 대표는 브랜드 사업과 개발 그리고 마케팅에 초점을 맞췄다. 이제한 대표가 자체 브랜드의 필요성을 확고하게 다짐하게 된 한 사건이 있다. 케이맥스는 스니커즈 브랜드 ‘엑셀시오르’의 신발을 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생산했는데, 최고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더 이상 수주가 불가능하게 됐다. 당시 엑셀시오르는 케이맥스 생산의 최대 70%를 차지했을 정도로 사업 내 비중이 높았다. 이제한 대표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사업 수익이 쉽게 변하는 구조로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아버지의 동의를 구해 2018년 케이맥스가 지분의 50%를 투자한 먼슬리 슈즈를 설립했고, 이듬해 3월 자사 대표 브랜드 베이크솔을 선보였다.
구워서 만드는 신발, 베이크솔
빵을 굽다는 뜻의 ‘베이크(bake)’와 신발을 의미하는 ‘솔(sole)’이 합쳐진 베이크솔은 말 그대로 구워낸 신발이다. 빵을 오븐에 구워서 만드는 것과 비슷한 신발 제조 과정이 특징이다.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키는 것처럼 황을 첨가해 숙성한 고무 반죽으로 신발 밑창을 만든다. 이후 신발 몸통인 갑피를 열에 강한 알루미늄 합금 몰드에 감싼 뒤, 밑창과 결합해 115˚C 의 증기 가마에 약 65분간 구워낸다. 이는 초창기 삼화고무와 태화고무가 도입한 가황 처리 공법으로 기계 접착 방식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는 사용하지 않는 공법이다. 장시간 열에 노출되어 있기에 갑피의 소재 사용에 제한적이고, 황과 고무 반죽의 배합이 잘못되면 누렇게 변하는 황변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가황 처리 공법으로 만든 신발만의 장점도 뚜렷하다. 신발의 원료인 천연 고무에 황을 섞어 열을 가하면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데, 이때 고무의 특성인 탄성력이 증가한다. 즉, 걸음걸이마다 몸의 체중이 실리는 신발 밑창이 가해지는 힘으로부터 금방 회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가황 처리 공법으로 탄생한 베이크솔은 내구성과 쿠션감이 뛰어나다. 사실 이러한 기술력은 오랜 시간 태화고무에서 일한 이제한 대표의 아버지 이원호 회장의 노하우가 더해진 결과다. 이제한 대표는 “일본 출장을 갔을 때 아버지가 만든 신발을 신고 간 적이 있어요. 하루에 적어도 2만 보는 넘게 걸었는데 발이 뜨겁다 뿐이지 물집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그때 사람들이 보행하기에 가장 편한 신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이제한 대표는 베이크솔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아버지에게 신발의 기본적인 틀을 부탁했다.
기술력을 빛나게 할 디자인 베이크솔은 매일 편하게 신을 수 있는 데일리 슈즈를 지향한다. 신발 제조업에서 평균 근속 30년 이상의 직원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다. 숙련된 기술로 완성한 베이크솔이지만 이제한 대표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편안함은 기본이고 다른 제품보다 돋보일 개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해답을 디자인에서 찾았다. 베이크솔은 빵마다 다른 특징을 신발 밑창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조개 모양의 마들렌을 닮은 ‘이스트’부터 소보로의 거친 표면을 표현한 ‘크러스트’, 동그란 베이글 빵을 무늬처럼 새긴 ‘베이글’, 가운데 크림이 들어간 마카롱의 특징을 살린 ‘마카롱’과 바게트의 길쭉한 모양을 본뜬 ‘스프린터’ 등 한 브랜드 안에서 고객의 다채로운 취향을 만족시킬 다양한 라인업을 개발했다. 세상에서 한순간에 빵이 모두 없어지지 않는 한 베이크솔 제품의 다양성은 보장된 셈이다. 빵과 신발을 연결한 콘셉트는 포장 디자인에서도 잘 드러난다. 빵집에서 빵을 담아주는 갈색 종이 봉지에서 착안했다고. 확고한 브랜드 콘셉트와 디자인은 SNS를 통해 금방 입소문을 탔다. 최근에는 2022 부산국제영화제와 협력해 공식 굿즈로 신발을 제작했고, 국내 최초로 업사이클링이 가능한 친환경 실크 소재를 사용한 신발 ‘쉴크’를 개발했다. 매일 새롭게 빵을 굽는 부지런한 마음가짐과 고객의 니즈를 탐구하는 자세, 베이크솔이 다시 한번 부산의 신발 전성기를 만들고 있다.
글 이정훈 기자
사진 공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