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갯빛 도트로 이루어진 인상적인 건물 디자인
아프리카와 남미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는 카니발 축제로 유명한 카보베르데(Cape Verde)의 상비센트(São Vicente) 섬 북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 민델루(Mindelo)의 중심에는 수공예, 예술 및 디자인 산업 증진을 위한 ‘국립 공예 및 디자인 센터(Centro Nacional de Artesanato e Design, CNAD)’가 있다.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이후 카보베르데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문화 기관인 이곳은 지속 가능한 문화 발전과 홍보를 위한 플랫폼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지역의 오래된 문화와 현재 지역 예술가, 그리고 미래의 지역 발전의 결합을 도모하고 있다.
센터는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이자 민델루 사람들의 삶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 일부로 여겨지는 ‘Casa Senador Vera Cruz(상원 의원 베라 크루즈의 집)’을 중심으로 파티오(보통 집 뒤쪽에 만드는 테라스), 그리고 파티오와 연결된 오래된 건물에 자리 잡고 있다. 몇 년 전, 문화 예술의 미래를 위한 비전을 나타내기 위해 센터의 책임자는 건축물의 재건을 추진했고, 건축회사 라모스 카스텔라노 아르키테토스(Ramos Castellano Arquitectos)와 협업을 진행하게 된다. 건축회사는 건물 전체의 복원과 더불어, 센터가 새롭게 지역의 상징적인 건물이 될 수 있도록 뒤쪽의 건물과 주택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디자인을 설계했다. 그리하여 새롭게 탄생한 센터의 모습은 컬러풀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건축회사는 오래된 주택의 복원을 통해 전통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뒤편에 있는 건물을 현대적으로 바꾸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려 의도했다. 현대적으로 건물을 재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들은 대서양 한가운데에 있는 1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와 항구 도시의 생활에 주목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제품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컨테이너와 드럼통으로 물건이 들어오는데, 특히 드럼통은 수입품을 수납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이곳의 일상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고 한다. 건축가들이 건물의 디자인에 지역의 일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채로운 색감의 드럼통 뚜껑을 사용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나 싶다. 이 뚜껑은 창문처럼 열어젖혀 환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에어컨 없이도 내부 공기를 순환시킬 수 있으며 공간에 자연광을 들이는데도 한몫한다. 일상에서 버려질 수 있는 물건을 재활용했기 때문에 환경에도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 회사는 지역의 역사, 문화, 환경을 고려해 설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까지 놓치지 않았다. 건축가들의 탁월한 컬러 배치 덕분에 건물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듯하다. 덕분에 센터는 지역의 명소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환자들의 기분 전환을 돕는 병원 디자인
몸의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해 가게 되는 병원의 공간은 대부분 환자의 치료를 위해 디자인되기 때문에 기능적인 면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병원은 하얀색이 주를 이루고, 불필요한 장식이 없다. 치료를 위해 잠깐 머무는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오랫동안 입원하는 환자들의 경우 공간의 무미건조함에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들을 위해 컬러를 들이고 있다. 영국에 있는 셰필드 어린이 병원(Sheffield Children’s Hospital)은 환자는 물론이고 병원의 직원 및 방문자들의 기분을 경쾌하게 만드는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병원이 원래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1876년에 세워져 오랜 역사를 지닌 병원이었기에, 어느 순간 이 병원에도 리모델링 기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영국 건축회사 아반티 아키텍츠(Avanti Architects)가 참여해 빅토리아풍 빌라의 재건축과 별관 건물의 개조 등을 맡았다. 이들이 환자들의 마음을 중요시하며 공간을 설계한 덕분에 병원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즐거워지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건물 곳곳에 있는 넉넉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채광과 더불어 컬러풀한 색감의 기하학 도형은 병원의 모습을 한결 밝게 만든다.
이곳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병실의 모습이다. 기존의 병실과 달리 이곳에는 다양한 색감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병실의 디자인을 맡은 이는 디자이너 겸 아티스트 모라그 마이어스코우(Morag Myerscough)였다.
병원의 예술 프로그램인 ‘아트펠트(Artfelt)‘를 통해 디자인에 참여한 그녀는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어린 환자들이 언제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색에 과민 반응을 보이거나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일부 방은 초록색과 파란색 위주로 색을 선택했으며 어떤 연령대가 봐도 색이 유치해 보이지 않도록 고민한 결과 경쾌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의 병실 디자인이 탄생했다.
디자이너는 추가적으로 외부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렇지만 자금 부족으로 인해 그 잠재력이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다. 병실이 선보인 지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병원 안마당에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현실화되었다. 병실보다 더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색감과 패턴으로 이루어진 조이 파빌리온(Joy Pavilion)은 환자들의 기분 전환을 돕는 겸, 직원과 방문객의 휴식을 돕는 공간이 되었다. 디자이너는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주변에 색깔과 자연이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며 공간을 디자인한 소감을 밝혔다. 그녀의 소망과 의지처럼 밝게 빛나는 공간은 병원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며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컬러와 패턴의 마법사 잉카 일로리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잉카 일로리(Yinka Ilori)는 화려한 색감과 패턴으로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이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그는 어렸을 때 들었던 나이지리아 우화와 더불어 아프리카 직물에 영감을 받아 이국적인 분위기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손길이 닿은 건축, 가구, 설치미술, 소품, 홈웨어 등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유쾌함이 느껴진다. 또한 그는 예술과 디자인을 위한 작업뿐만 아니라 공공을 위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사람들에게 컬러의 힘을 되새기게 한다. 그의 디자인이 이리 주목받는 이유는 색과 패턴 때문인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의 바탕에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기 위한 마음이 숨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를 대표하는 디자인은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던 공공 디자인은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을 통해 선보인 ‘브링 런던 투게더(Bring London Together)’라는 프로젝트였다. 이는 매일 런던의 거리를 건너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을 선사하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라고 한다.
런던 예술대(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학생들과 함께 그는 런던 중심에 있는 토트넘 코트 로드(Tottenham Court Road)의 11개 교차로에 있는 18개의 횡단보도에 다채로운 색감을 부여했다. 오렌지, 핑크, 초록, 파랑, 보라색 등, 다소 과감하다 싶을 정도로 강렬한 컬러가 모여 길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얻은 횡단보도는 사람들에게 길을 건너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며 디자인과 컬러의 힘을 되새기게 했다. 아침부터 알록달록한 횡단보도를 건넌다면 절로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최근 그는 런던 킹스 크로스에 있는 메타의 새롭게 문을 연 사무실의 벽화를 맡았다. 22명의 런던 기반 예술가들이 사무실을 꾸미는데 참여한 가운데, 그는 명성답게 사무실의 가장 큰 부분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그의 감성이 담긴 화려한 색감의 변화는 증강 현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색다른 탐험을 떠날 수 있게 했다. 메타의 증강 현실 플랫폼인 스파크 AR(Spark AR)을 사용하면 그가 벽화를 만들기 위해 탐구한 주제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사무실 곳곳에 경쾌함을 더하는 벽화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디자인의 배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일을 한다면 매일 일을 하러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이국적인 분위기에 한 번, 그 의미에 한 번씩 감동할 것만 같다.
친근함을 선사하는 컬러와 패턴을 만드는 카미유 왈랄라
횡단보도에 색을 더한 이는 일로리뿐만 아니라 텍스타일 및 그래픽 디자이너인 카미유 왈랄라(Camille Walala)도 있다. 그녀는 런던의 화이트 시티 지구(White City district)의 횡단보도를 그녀만의 방식으로 디자인했다. 일로리와 같이 기하학 패턴과 다소 강렬한 분위기의 컬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개성이 느껴지는 것이 흥미롭다. 일로리가 아프리카 감성으로 이를 조합한다면, 그녀는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 – 직선, 정형화된 도형, 레트로 감성-을 조합해 디자인을 완성했다는 점이 다르다. 경쾌함이 가득한 횡단보도는 도시의 분위기를 한결 다채롭게 만들었다.
횡단보도만큼이나 그녀가 주목받은 프로젝트는 바로 ‘왈랄라 퍼레이드(Walala Parade)‘다. 이는 런던 동남부에 있는 레이튼(Leyton) 지역의 8개 건물을 개성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어낸 프로젝트다. 이는 런던 동부 거리 예술 집단 ‘우드 스트리트 월즈(Wood Street Walls)’, 시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스페이스하이브(Spacehive)’, 런던 시가 모두 힘을 모아 이뤄낸 결과로 도시의 재생사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데 일조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점은 이 디자인이 그녀의 의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역 커뮤니티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는 것이다. 동네 커뮤니티가 지역의 정체성을 오래도록 이어나갈 수 있는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고, 최종 디자인 결정 또한 시민들의 온라인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단순히 도시의 모습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유명한 디자인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한 디자인이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디자인이 아닌가 싶다.
왈랄라의 디자인을 보며,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컬러와 디자인은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느끼게 한다. 왈랄라의 디자인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그녀의 개성 넘치는 강렬한 디자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주변 환경을 고려하고 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재치 있는 디자인을 선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글 박민정 객원 필자
자료 출처 archdaily, avantiarchitects, moragmyerscough, dezeen, yinkailori, camillewala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