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월한 사람도 열등감을 갖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서 출발한 작가는 열등감을 다루는 사람들의 모습을 탐구했다. 그리고 열등감과 우월함 사이에 있는 어긋남과 어우러짐을 물이 얼거나 얼음이 녹는 상반된 성향의 교차점인 ‘빙점’을 통해 은유했다. 지난달 18일,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에서 막을 연 <모두의 빙점> 전시에서 탐구의 결과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의 시작, 포근했던 11월에 작가를 삼청동에서 만났다.
Interview with 원성원 작가
— 이번에 선보이는 신작은 아라리오 갤러리 개인전 <들리는, 들을 수 없는>(21.10.05 ~ 11.13)에서 발표했던 사진의 후속 작업이라고요. 당시에 작가님은 소위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나무로 의인화해 인물의 특징과 특수한 사회관계망을 우거진 여름 숲의 풍경으로 묘사했어요. 이번에 선보이는 작업에는 전반적으로 ‘얼음’이 등장하네요.
저는 많은 것을 갖추고 있는 이른바 성취한 사람들은 열등감이 없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열등감이 넘치는 나머지 타인에게 드러내 피해를 주는 사례도 많잖아요. 다른 사람 앞에서 타인에게 윽박을 지른다거나 무시하는 그런 행동들이요. 겉으로 봤을 때 그 태도는 우월함의 표시 같지만 사실 근저에는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발현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열등감을 얼음에 비유한 거예요. 열등감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꽁꽁 얼려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매달리는 고드름 같은 사람도 있어요. 저는 얼음을 이겨내고 자라나는 나무를 향한 의지를 드러내 보이고자 했어요. 사람이 아무리 열악한 상황일지라도, 의지를 가지면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위해서요. ‘한계 상황에서 나무를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 작가님께서는 직접 촬영한 수천 장의 사진을 포토샵 프로그램을 통해 오리고 병치해 하나의 프레임 안에 직조하는 작업을 해왔어요. 이번 작업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 것인가요?
작업 방식은 같지만 주제가 지속적으로 달라져요. 저는 항상 실제 인물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이미지에 주목하거든요. 이미지들이 몇 년 동안 쌓여서 작업에 확신이 오면 드로잉을 먼저 해요. 그다음에는 제가 구상한 이미지를 실현할 주제들을 찾아 나서는 여행을 합니다. 대상을 직접 촬영하고, 그 결과물들을 포토샵으로 자르고 붙여 상상했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지요. 이번 작업들은 주로 강원도 인재와 철원, 경상북도 청송 등지에서 촬영한 결과물이에요. 사람들이 클라이밍하는 곳이나 자연적으로 얼음이 어는 곳을 찾아다녔어요. 특히 인공 폭포에서 만들어지는 동그란 모양의 얼음을 찾아 나섰는데 운이 좋게 작년에 너무 예쁜 형태가 포착된 거예요. 이후 풀과 나무들도 촬영해서 한 화면에 함께 직조한 거죠.
— 전시장 2층에서 3층으로 오르면서 마주하는 사진들의 형태가 조금씩 변해요. 전시 공간의 동선에 따라 일련의 서사를 부여한 것으로 보이는데, 작품 설치를 미리 구상한 것인지.
먼저 전시 기획의 초창기 단계에 공간을 둘러봐요. 어디에 몇 점을, 어떤 방식으로 설치할지 미리 논의를 하죠. 작품이 모자라거나 넘치면 안 되니까요. 이번 전시에서는 2층에 열등감을 가진 굉장히 우월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어요. 3층은 우월감으로 감추는 게 아니라 적절한 유연함을 가지고 자신을 컨트롤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 3층에 설치한 작품을 벽에 걸지 않고 지지대를 사용해 설치 작품의 형태로 제시했어요. 사진 같은 평면 매체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 시도인가요?
맞아요. 저는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했고, 독일에서 설치 미술을 공부했어요. 설치 작업을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 체력이 뒷받침되어 주지 않아 한계와 마주하게 됐죠. 그때 카메라는 저에게 훌륭한 매체였습니다. 외부 대상들이 어마어마하게 커도 사진을 찍고 컴퓨터로 가지고 들어오면 대상을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설치작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수천 장의 레이어를 배치하는 제 작업은 굉장히 깊은 공간감이 있는 설치거든요. 그런데 프린트를 하는 과정에서 밋밋해져요. 그리고 평평한 벽에 걸리니까 늘 아쉽다고 생각했죠.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을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했어요. 관람자들도 작품 뒤에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비록 작품은 평평하더라도 공간감이 있어 풍요롭게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평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간에 대한 욕심 같기도 해요.
— 조각, 설치 미술 등 현실의 물질성을 다루는 작업에서 사진 작업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독일에 유학을 가서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라는 학교에 들어갔어요. 거기서 제가 10m짜리 설치 작업을 하고 바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너무 아픈데 제 성격상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해요. 다 혼자 해야 되는데 무리였던 거죠. 어느 날 교수님께서 제게 ‘너는 작가가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신체적 조건이 너무 안 좋다고요.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저는 작가가 되지 못할 수도 있을 제 삶에 대해 생각했죠. 미래를 떠올리다 보니 당시의 순간을 기억하고 싶더라고요. 그때 마침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사진이 좋은 도구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제 모든 물건을 카메라로 찍는 과정이 작업이 됐어요. 그때 찍었던 사진 작업을 가지고 다른 교수님 밑으로 재입학을 하게 됐지요.
— 포토샵을 통해 이미지를 잘라 붙이며 구성하는 행위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언가를 잘라서 붙이는 행위는 콜라주인데요. 제가 하는 행위는 몽타주에 더 가까워요. 누군가의 얼굴을 재현하는 것처럼 저는 제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어떻게 해서든 재현하기 위해 요소들을 찾아 나서거든요. 심지어 요소들이 현실에 있는 대상이에요. 실제의 대상을 촬영해서 다시 허구적인 이야기로 만든다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실제를 담아내는 카메라와 제가 가지고 있는 판타지 그리고 포토샵이라는 기술이 만나면 너무 좋은 도구가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러한 조화들을 내부적으로 ‘설치’하면서 구현하는 것이니까 체력의 한계와 무관하게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독일 유학 시절, 사진 작업을 시작할 때 교수님께서 “이런 짜 맞추기 방식은 유치원생들이나 하는 거지 우리 학교에서 이런 작업을 하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 말을 한 직후에 바로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해봐 왜냐하면 처음은 유치하겠지만, 네가 영원히 유치하지는 않을 거잖아?” 그때의 작업을 발전시켜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래도 해보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20년 넘게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 현재의 작업에 착수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무엇보다 제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무작정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거예요. 어디서 무엇을 발견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작업 구상을 한 뒤 떠나는 거죠. 여행에서 발견되는 것들이 계획했던 것하고 달라지는 경우도 생겨요. 계획은 늘 수정되고,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두려움도 있죠. 하지만 두려움과 마주하면서, 방향을 틀어 좋은 작업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제가 또 그것을 즐기고요. 누군가는 하루에 12시간 동안 포토샵으로 사진을 오려내는 작업 과정이 힘들지 않냐고 물어봐요. 그런데 저에게 그 과정은 명상 같은 거예요. 여행을 떠나 몸을 움직이면서 촬영을 하고, 다녀와서는 머리를 비우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 손목을 움직이며 제가 구상했던 구도대로 대상을 구축해요. 그때 진짜 설치가 되는 거예요.
— 작가님은 정치 사회적인 현상이나 사건보다는 주변의 이야기들에 더 주목해요. 누군가는 모두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시대에 사진작가는 거창하고 원대한 포부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시대에 가장 가까운 일상의 이야기를 매개하는 작업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나요?
우월감과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정치 사회적으로도 들여다볼 수 있어요. 제 작업은 이 사회가 얼마나 서로를 경계하고 있고,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지에 대한 커다란 이야기로 간주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이를 경험한 일, 친구 혹은 지인과의 관계 등 사소하지만 진솔한 것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는 겁니다. 숲의 이야기보다는 숲속에 있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나무가 변해야 숲이 변하는데 사람들은 자꾸 숲 이야기만 해요. 저는 나무의 이야기가 기본이 돼야 거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나무를 다루다 보면, 중첩되는 이야기들이 많아질 것이고 길게 봤을 때 사회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 작가님이 주목한 일상의 이야기들과 열등감은 무엇이었나요?
오늘 겪은 남편과의 문제, 친구와의 힘 싸움 그리고 상사의 갑질, 겨루기 등으로 사람들이 많이 괴로워해요. 이런 작은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이 공감하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그 문제가 개인이 아닌 모두의 문제라면 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 다르게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물론 제 작업이 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누군가가 제 작품을 보고 공감을 한 뒤 해결하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봐요. 이를테면, 갑질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걸리는 부분이 있거든요. 우리 모두에게는 빙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 ‘왜 우월한 사람도 열등감을 갖는가?’라는 초창기 물음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제 작업에 샹들리에가 나와요. 그 작업이 질문에 대한 입장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 샹들리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반짝이는 것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모습의 은유예요. 우리는 소위 휘황찬란한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간주하면서 부럽다고 생각하고 선망하곤 해요. 하지만 크리스털을 온몸에 걸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있으려면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하거든요. 성공한 사람도 성공한 만큼 가지고 있는 무게가 있어요. 작품에는 폭포가 나오는데 폭포는 어떤 스포트라이트, 조명에 대한 이야기예요. 나무가 물을 먹어야 자랄 수 있는데 적절한 물이 제일 좋아요. 물이 콸콸 쏟아지면 나무가 오히려 죽거든요. 갑자기 유명해진 사람은 엄청난 지지와 주목을 받아서 기대에 합당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써요. 그러다 보면 금방 지치죠. 여기서 문제는 언젠가 그 스포트라이트가 없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모두가 행운을 받기를 원하지만,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행운이 있어요. 행운이 항상 넘치고 지나치면 오히려 사람을 해칠 수 있거든요. 행운의 과잉은 큰 불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화려한 사람들조차도 내면에는 어둠이 얼어 있고, 결국은 열등감 덩어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거예요.
—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에 대해 들려주세요.
사진 작업을 시작할 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작가를 하다 보면 내가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그런 지점들이 생겨요. 겉멋이죠. 그런 겉멋을 포기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다고요. 그게 너무 유치하고 바보 같아도 할 것이며, 진정성이 있는 작업을 꼭 해 보이겠다는 다짐은 여전해요.
원성원 작가의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얼음은 열등감의 보편성이다. 열등감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얼음은 단단한 덩어리 형태가 되기도 하고, 온기에 녹아내리고 있는 살얼음이 되기도 하며, 나뭇가지에 매달린 뾰족한 고드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열등감의 상이한 개별성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빙점이 있고, 다양한 얼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얼음 속에서 풍성한 나무를 틔울 수 있다.
작가는 현 사회에서 말랑함을 유지하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목도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얕잡아 보일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마저도 덜 친절해지고, 거리감을 둘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기에 이중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사진은 우리 모두가 겪는 사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점차 보편의 이야기에 도달하는 과정이 내재돼 있다.
그가 오리고 붙이며 직조한 몽타주는 누구의 풍경인가? 전시장을 오르며 우리는 작품을 통해 타인들과 만나고 그들의 열등감 풍경을 느껴 본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내면 풍경을 돌아본다. 온화한 날에 시작을 알린 전시는 매서운 추위와 강한 바람을 지나 겨울을 관통한다. 모두가 지닌 빙점에 대해 사유해 보기 좋은 때다. 전시는 내년 1월 29일까지.
글 하도경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뮤지엄한미 삼청, 원성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