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것은 역시나 ‘크리스마스 트리’다. 소나무, 전나무와 같은 상록 침엽수에 다양한 장식을 더하는 이 풍습은 독일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영국과 미국의 영향으로 전 세계로 대중화되었다. 어떤 장식을 더하느냐에 따라서 분위기를 달리할 수 있지만, 전 세계 공통으로 사용되는 장식들이 있다. 꼭대기에 놓이는 별, 트리를 한껏 화사하게 만드는 전구는 아마도 대부분의 트리 장식에서 선택되는 아이템이며, 트리 아래에 다양한 선물들이 놓여 풍성한 명절 분위기를 낸다.
요즘은 개개인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시대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획일화된 트리 장식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트리의 모습도 좀 더 색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답이라도 하듯,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주제로 한 전시, ‘크리스마스 트리여 영원하라(Long Live the Christmas Tree)’가 열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국 웨스트 요크셔의 헤어우드 하우스(Harewood House)에서 열린 이 크리스마스 이벤트에서는 11명의 예술가, 디자이너 및 제작자의 역량을 느낄 수 있는 트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를 주최한 헤어우드 하우스 측에서는 작가들에게 이곳의 역사와 전통 등을 고려하여 전통적이지만 전통적이지 않은 트리를 제작해 주기를 요청했다. 18세기 후반 영국 건축과 장식 예술의 절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수준 높은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저택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기 충분했고, 그 덕분에 다채로운 디자인의 트리들이 탄생했다. 이곳에서 전시된 트리들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디자인도 있는 동시에 상식의 틀을 파괴하는 디자인도 함께 있어 유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트리들은 유서 깊은 인테리어의 호화로운 장식과 조화를 이루며 크리스마스를 기리고 있다.
전시장에 있는 작품들을 보면, ‘이런 재료로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국에서 세트 디자이너로, 국제적으로는 아트 디렉터와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사이먼 커스틴(Simon Costin)의 트리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금색으로 칠해진 사슴뿔과 흰색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모습은 일반적인 트리 모습과 유사하지만, 그 소재로 인해 신선한 충격을 얻게 된다. 트리 위에 장식되는 별은 근엄한 표정을 지은 태양 형태의 장식품으로 대체되었다. 다소 산만할 수 있는 트리의 모습이 이 장식품으로 인해 무게감을 얻은 모습이다.
앤디 싱글톤(Andy Singleton)의 트리는 독특하게 종이로 만들어져 눈길을 끈다. 종이로 다채로운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성향이 반영된 작품이다. 종이로 만들어진 트리는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한 깃털 형태로 만들어져 소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두드러지게 했다.
스파이스 걸스, 윌 아이 앰, 케이티 페리 등 유명 가수들의 액세서리 소품을 만든 이로 유명한 아티스트 야스민 후세인(Yasemen Hussein)은 구리 소재로 나뭇가지로 만들고, 그 가지에 반짝이는 크리스털을 달아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트리를 완성했다. 가지에 달린 크리스털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내게 한다.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활발하게 국제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던 스왈로스 앤 댐슨스(Swallows & Damsons)의 작품 또한 독특하기 그지없다. 트리와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아이템인 리스(wreath)를 트리 크기만큼이나 거대하게 키워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리스 중앙에는 헤어우드 하우스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각품이 놓여 있어 묘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다양한 꽃과 쑥 줄기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리스는 수수하면서도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여운을 남기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왈로스 앤 댐슨스의 설립자인 안나 포터(Anna Potter)는 한때 과시용으로 접대하기 위해 비용을 아끼지 않았던 헤어우드의 부유함과 부의 역사와 반대되는 야생의 식물을 선택했고, 이를 통해 역사를 되새기는 동시에 보는 사람들을 사색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시장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트리는 수십 년 경력의 카니발 의상 디자이너이자 국제 카니발 행사에 여러 번 참여한 경력을 가진 휴본 콘도르(Hughbon Condor)가 만든 작품이었다. 그는 크리스마스가 더 이상 종교적인 행사가 아닌,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행사로 여겨지는 만큼 트리도 전 세계 사람들의 문화를 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작가는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는 축제에서 사용되는 소품들을 결합하여 트리를 완성했다. 처음 트리를 볼 때는 기존의 트리와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모습이라 당황하게 되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문화의 다양성을 하나씩 뜯어보면 꽤 흥미로운 아이디어였음을 알게 된다.
유리와 다양한 오브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줄리 볼라뇨스 더만(Juli Bolaños-Durman)의 작품을 보면 굳이 트리를 만들기 위해 상록 침엽수, 또는 인공 나무를 활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트리 형태로 여러 가지 물건들이 놓여있는 모습은 신선함 그 자체이다. 이 트리의 장점은 각 오브제들을 상황에 따라 바꿔도 된다는 것이다. 유연한 생각이 만든 독특한 트리를 통해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조각과 디자인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피비 맥엘해튼(Phoebe McElhatton)의 트리는 독특하게 석고로 만들어졌다. 주로 점토, 석고, 왁스를 포함한 다양한 혼합 매체 재료를 사용해온 작가의 성향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작품이다. 교회 첨탑, 또는 케이크의 일부분을 연상케하는 트리를 자세히 보면 음식과 신체의 일부분을 본뜬 석고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얼핏 보면 저택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것 같지만, 이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엉뚱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재밌다.
전시에 참여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천연 또는 재활용 재료로 작업을 했다. 이는 현재 전 사회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트 디자이너이자 아트 디렉터인 마리엘 헌트(Meriel Hunt)는 참나무, 헤이즐, 짚을 조합해 벌들을 위한 트리 모양의 집을 만들었다. 이 집은 전시 이후 정원으로 옮겨져 계속해서 벌집으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인간이 초래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한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다.
이 밖에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동일한 주제로 진행되었지만 각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 탄생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독특하고 다채로운 트리 디자인을 만날 수 있는 이 전시는 2022년 11월 12일부터 2023년 1월 5일까지 진행되며, 축제 시즌의 정신을 담아내기 위한 영화와 사운드스케이프 작품으로 마무리된다고 한다.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이들에게 환영받는 전시로 인기를 얻고 있다.
글 박민정 객원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