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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1

디자인 가구의 리듬을 전파하는 워키토키 갤러리

사물의 비주얼 에세이를 기반으로 전개되는 첫걸음
지난 11월 12일, 홍은동 한 주택가에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로 재해석해 디자인 가구를 소개하는 워키토키 갤러리가 개관했다. 좁은 골목길을 오르니 'Walkie Talkie Gallery'라고 쓰인 깃발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전파의 근원지가 바로 여기라는 듯이. 갤러리 개관과 동시에 준비한 논픽션홈의 <단어의 배열> 첫 전시가 오픈되었다. 워키토키 갤러리의 임나리 대표는 월간 <디자인>에서의 오랜 기자 생활 이후 사물, 공간,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며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발한 활약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MATTER〉 매거진의 편집장까지 지내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가 새롭게 선언한 행보에 모두가 시선을 고정했다.
ⓒWalkie-Talkie Gallery

워키토키 갤러리는 홍은동 277 지대의 작은 주택에서 운영되는 홈갤러리로 1980년대에 지어져 오래되었다면 오래되었고, 아직 젊다면 젊은 삶의 숨결이 담긴 일반 가정 주택에 자리하고 있다. 평소엔 임나리 대표의 자택으로 그의 가족이 주거하는 공간이지만 전시 기간이 되면 작품이 설치되는 갤러리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공간은 가만히 머무르되 사람과 가구의 배열을 바꾸어 공간을 재배열하는 것이다. 이 주택은 몇 년 후 재건축으로 사라질 운명이지만 남은 기간 워키토키 갤러리 운영을 통해 집의 쓰임을 실험할 예정이다.

ⓒWalkie-Talkie Gallery

전파를 이용해 음성을 수신하며 통신할 수 있는 작은 기기를 모티프로 한 이름의 워키토키 갤러리는 서울에 기반을 둔 동시대 디자인 갤러리다. 디자이너, 기획자, 소비자 사이의 경쾌한 송수신을 유연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임나리 대표의 의지가 담겨있다. 더불어 갤러리의 상징이자 정체성과도 같은 마스킹테이프는 사물과 아이디어를 구축할 때 흔히 사용되는 디자이너의 도구로써 워키토키 갤러리와 함께하는 디자이너의 사고와 상상력을 상징하는 기호로 작용할 예정이다. 이러한 브랜드 스토리를 담아 아이덴티티 및 그래픽 디자인 작업은 스튜디오 CFC의 전채리 디자이너와 함께했다.

ⓒWalkie-Talkie Gallery

오랜 시간 월간 <디자인>에 몸 담으며 넓고 광활한 디자인 업계의 변천사를 직면해온 임나리 대표가 디자인 갤러리를 개관한 것은 어찌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저는 공간과 가구 업계를 20여 년 동안 가까이에서 관망해왔어요. 2000년대 중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가 폭발적으로 생겨나고 무수히 많은 디자이너 브랜드가 탄생하는 것을 목격했죠. 그들의 생존이 가능했던 건 이를 받아들이는 다양한 플랫폼과 소비자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직물이나 지류를 재료로 한 디자인 제품은 이제 새로운 시장 진입이 어렵지 않게 되었어여요” 그간 자신이 바라본 디자인 업계의 흐름을 설명하던 그. 그러나 디자인 가구 업계는 상황이 달랐다. “누구보다 가구 디자이너들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가구라는 물성 자체가 부피가 커 공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가격에 대한 허들이 있으니까요”. 최근 7, 8년 사이 공간 디자이너가 가구 디자인의 영역까지 발을 넓혀오는 모습은 자주 목격되었다. “해외 유명 디자이너 가구는 가격대도 있을뿐더러 이제는 좀 흔해졌죠. 이러한 가구 시장 속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구를 가장 잘 아는 공간 디자이너의 영역 확장은 반가울 따름이에요”.

사물의 비주얼 에세이 'Essay of Things' ⓒWalkie-Talkie Gallery
사물의 비주얼 에세이 'Essay of Things' 中 ⓒWalkie-Talkie Gallery

임나리 대표가 처음 갤러리를 구상할 때부터 중심축으로 삼았던 워키토키 갤러리만의 고유한 정체성은 ‘사물의 비주얼 에세이(Essay of Things)’였다. 디자이너가 어떤 사고와 실제 과정을 거쳐 최종 사물에 다다르게 되었는지 입체적인 시각에서 소개하고자 임 대표가 직접 디자이너를 인터뷰하고 에세이의 형태로 풀어낸다. 그 과정이 꼭 그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만 같다. 자료, 인용문, 인터뷰 등 출처가 있는 레퍼런스를 통해 사물의 이미지와 스토리는 재구축되어 관람객에게 선보여질 예정이다.

ⓒWalkie-Talkie Gallery

임나리 대표가 논픽션홈을 처음 마주한 것은 2016년 소월길 mmmg 건물 4층 옥상이었다. 논픽션홈은 17년 동안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로 활동하던 ‘플랏엠’이 시작한 가구 운동으로, 이전에도 공간 디자이너가 자신의 공간 안에 가구를 직접 디자인하기는 했지만 이를 별도의 활동으로 명칭하고 전시라는 형식으로 선보인 적은 없었다. 논픽션홈은 디자이너의 생각과 태도를 투영하는 도구로 가구를 활용하며 상업적 요구와 디자이너의 태도라는 그 경계선을 유연하게 넘나들어 왔다. 이후 논픽션홈의 의자는 서촌의 작은 카페에, 슈퍼마켓에, 갤러리에 드문드문하지만 지속성을 가지고 설치되었다. 논픽션홈에게 설치의 의미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선정현 디자이너와 조규엽 디자이너|사진: 맹민화 ⓒWalkie-Talkie Gallery

논픽션홈은 2017년 망원동에서 <서울에 집 없다> 전시를 열었다. ‘좋은 영화 보고 좋은 책 보면 삶이 좀 더 좋아질 줄 알았는데 안 좋아진다. 이제 좀 괜찮아지나 싶었는데 이게 가장 괜찮아진 거란 걸 알았다’는 조규엽 디자이너의 전시 소개글 마지막 문장을 임나리 대표는 거듭 읽었다고 한다. 이후 2020년 또한번 <리빙, 서울8평> 전시가 조규엽 디자이너의 실제 거주 공간인 8평짜리 연남동 옥탑방에서 열렸다. 3년의 시간이 흘러 그는 창문이 많아 볕이 잘 들고 바람도 잘 통하는 집을 마련하고 ‘가구’를 마련했다. 더 나은 생활을 향한 욕구는 삶에 대한 긍정으로 확장되었고 생활의 실질적인 접촉물이 품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결과물이었다. 8평의 옥탑방에 논픽션홈이 설치되었고 그 자체가 한 사람의 ‘논픽션 홈’이었다.

'Essay of Things' 일부를 인쇄해 벽면에 전시한 모습 ⓒWalkie-Talkie Gallery

미술에서 설치는 전시를 위해 작품을 걸거나 배치하는 작업 전반을 일컫는다. 나아가 설치 미술은 장소와 공간이 작업의 환경이자 일부로 작동한다. 설치라는 단어 아래 놓인 논픽션홈의 초기 가구는 사물이 가진 하나의 완결성과 독립성에 집중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공간, 가구,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탐색하는 일이 되었다. 회화 작품을 바라보는 의자, 읽던 책을 올려두는 의자, 조명과 대구를 이루는 의자. 우리는 이제 가구를 바라보는 사람과 놓여있는 가구가 연결되는 장면을 관찰하고 감상한다. 뿐만 아니라 가구가 조용히 우리에게 청하는 제스처에 응하고 가구의 고요함에 동참하거나 가구와의 대화에 가담하는 삶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된다.

나리 의자(Nari Chair) no.7 ⓒWalkie-Talkie Gallery
블랙 의자(Black Chair)|사진: 맹민화 ⓒWalkie-Talkie Gallery
세 다리 스툴(3-Leg Stool)|사진: 맹민화 ⓒWalkie-Talkie Gallery
슬라이딩 No.6(Sliding No.6)|사진: 맹민화 ⓒWalkie-Talkie Gallery

평소 임나리 대표는 논픽션홈에게 자신의 공간에 필요한 가구의 맞춤 제작을 의뢰 하곤 했다. 본래 논픽션홈은 개인 제작 주문을 받지 않고 있지만 서로의 사이가 긴밀해 가능했던 다정함이 어린 특권이었다. 임 대표는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그렇게 탄생한 의자가 바로 ‘나리의자’. 조규엽 디자이너는 나리의자를 이렇게 소개한다. “결국 디자이너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사물에 투영해서 만드는데, 아직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가까이 있는 것부터 만들기 시작했어요. 나리의자는 사실 특별한 형태는 아니에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의자의 모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일단 평범한 것부터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쉽고 간단한 한눈에 파악이 되는 의자를 만들자는 생각으로요”. 전시 기간 동안에는 전시장에서 가구를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며 구매까지 가능하다.

(왼) 홍은동 주택 거실에 놓인 슬라이딩 No.6
(오) 임나리 대표의 서재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나리의자, 블랙 의자, 세 다리 스툴
ⓒWalkie-Talkie Gallery

논픽션홈에게 설치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사물을 그 공간에 두고 오는 행위에 가깝다고 답한다. 조규엽 디자이너는 설치의 아이디어를 책 속의 문장에서 찾는데, 그가 좋아하는 문장은 쉽고 단순한 단어의 배열이었다. 그 배열만으로 구조와 의미가 여러 층위로 환기되며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경험이 된 것. 마치 작가가 단어의 배열을 고민하는 것처럼 논픽션홈은 가구의 배열을 골몰한다. 마치 시인이 시어를 고르는 것처럼, 단어가 독립하면서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논픽션홈의 배열은 리듬과 흐름을 조율한다. 그렇게 단어는 시가 되고, 선언이 되고, 이미지가 된다. 단어는 오해되고 이해됨으로써 그렇게 흥얼거림이 시작된다.

ⓒWalkie-Talkie Gallery
ⓒWalkie-Talkie Gallery

임나리 대표는 워키토키 갤러리를 사물의 도면을 설계하는 설계자로서의 디자이너에게 주목하는 갤러리로 만들어 갈 계획이다. 설계의 사고와 상상력이 고도의 기술로 응집된 ‘도면’이라는 매체는 디자이너의 커뮤니케이션 도구이자 가장 강력한 발언이라 믿는다. 디자이너의 창의적 생각을 표현한 가구를 기반으로 해 ‘디자이너 가구’라는 영역을 꾸준히 소개해나갈 예정이며, 첫 전시 <단어의 배열>을 시작으로 2023년 전시 라인업까지 모두 기획을 마쳤으니 다가오는 전시를 기대해봐도 좋겠다.

하지영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워키토키 갤러리

하지영
에디터가 정의한 아름다운 순간과 장면을 포착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세상에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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