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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2-11-09

나는 신처럼 창조한다, 100년의 조각가 문신

우주를 향하는 문신의 조각 세계

탄생 100주년을 맞은 조각가 문신(文信)은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이례적인 인물이다. 그는 태생부터 남달랐다. 1922년 일본 규슈의 탄광지대에서 한국인 노동자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다섯 살 무렵에 다시 아버지의 고향인 마산으로 돌아왔다. 유년 시절을 마산에서 보내던 그는 1938년 16살의 나이에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도쿄 일본미술학교 양화과에서 수학한 그는 해방을 맞이한 1945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이 유년기를 보낸 도시 마산을 기반으로 서울을 오가며 회화 작가로 활동했으나, 1961년 불현듯 그는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이후 문신은 프랑스에서 회화 작가가 아닌 조각가로 활동하며 기반을 다졌다. 조각가로서 전시 활동과 홍익대학교 출강으로 국내에서 잠시 머무른 적도 있었지만, 도불한 지 20년이 지난 1980년이 되어서야 그는 영구적으로 귀국했다.

문신의 삶은 ‘이방인의 삶’이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그는 어느 한 곳에 좀처럼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광복 이후 국내 미술계는 홍익대학교와 서울대학교 출신의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는데, 작가로 막 활동하기 시작한 청년 문신은 그들과 학교의 연도, 고향의 연도 닿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선배와 후배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그가 작가로서 활동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되진 않았다. 문신은 이미 스스로 자신이 이례적이며, 또 독자적인 작가임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신(文信)의 회화

자화상, 1943, 캔버스에 유채, 94×80cm, 개인 소장

문신은 오늘날 조각가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의 출발점은 회화였다. 도쿄 유학 시절, 그는 당시 도쿄에서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이케부쿠로 시나마치의 예술촌에 살았는데 주변에 거주하는 동료들과 어울리며 작업 교류에 적극적이었다. 비록 그때로 돌아가서 그의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1943년에 그가 그린 ‘자화상'(1943)을 통해서 청년 화가 문신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20대 초 혈기왕성한 문신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과감한 시선 처리와 자신감이 드러나는 자세가 인상적이다. 날카로운 턱 선과 날렵한 눈매로 화면 밖을 응시하는 그의 표정은 흡사 ‘세상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사람은 바로 나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은 인물임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 그림 속 그의 자세도 매혹적이다. 한 쪽 무릎을 꿇고, 반대쪽 무릎 위에 물감 나이프를 쥔 손을 무심하게 올려 뒀다.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세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이런 멋진 자세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라고 말하는 듯 회화 작가로서 자신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소, 1957, 캔버스에 유채, 76×10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문신의 회화는 그가 프랑스로 떠나기 전까지 구상 회화에 집중되어 있었다. 광복 이후 마산으로 돌아온 그는 주로 마산 앞 바다 풍경과 주변에서 목격한 소박하고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당시 화가들은 토속적인 소재로서 닭과 소를 그림에 자주 등장시켰다. 문신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가 1957년에 제작한 작품 ‘소’(1957)는 우리가 예상하는 소의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강렬한 원색을 사용했고, 땅과 하늘이 화면을 양분하는 구도를 지닌다. 더욱이 파블로 피카소의 큐비즘이 떠오르는 독특한 형상의 소와 화면 가득 자리한 그 존재감이 인상적이다.

고기잡이, 1948, 캔버스에 유채, 53.5×131.5cm(액자 포함),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 가지 더 주목할 작업이 있다. 바로 1948년 작 ‘고기잡이’가 그것이다. 제목 그대로 문신은 마산 앞 바다에서 직접 본 고기 잡이 풍경을 그렸다. 장정들이 고기 잡이 그물을 물에서 끌어올리는 순간을 포착했는데,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역동감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그림을 에워싸고 있는 액자이다. 작가는 작품과 어울리는 액자를 직접 조각하여 제작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장정들의 근육을 형상한 듯한 모양이다. 얼핏 보면 넘실대는 파도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은 사람의 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회화와 조각을 아우르는 작가 문신의 뛰어난 조형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우주를 조각하다

(왼쪽) 우주를 향하여 3, 1989, 브론즈, 67.8×38.5×22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오른쪽) 무제, 1990, 브론즈, 69×45×23.4cm,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 소장

1961년 문신은 프랑스로 향한다. 프랑스에서 그가 마주한 회화는 지금까지의 구상 회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특히,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앵포르멜과 누보 레알리즘 작품을 통해 형태로부터의 해방과 현실에서 사용하는 오브제를 작품으로 활용한 전위 미술을 접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가 단순히 회화만을 고집하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에 대한 열망이 새롭게 이글거렸다. 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현실은 암울했다. 당장에 먹을 것과 잘 곳을 찾기 위한 돈이 없었다. 다행히 파리에 먼저 정착한 화가 김흥수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파리 북쪽 라브넬(Ravenel)에 있는 고성(古城)을 보수하고 개조하는 일이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뜻밖에도 그는 자신이 회화가 아닌 조각에 더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됐다.

태양의 인간 | 사진 출처: https://www.lebarcares.fr/

이후 문신은 프랑스에서 회화 작가가 아닌 조각가로서 활동한다. 그는 기본적인 조형 단위에 관심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구(球) 또는 반구(半球)를 활용한 추상 조각을 주로 제작했다. 1970년 문신은 프랑스 남부 바르카레스항(Port-Barcares)에서 열린 <국제조각심포지엄>에서 나무로 만든 13m 높이의 조각 작업 ‘태양의 인간’을 소개했다. 최소한의 조형 단위가 반복되는 형태의 그의 조각 작업은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의 야외 조각 작업과 비교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살롱 드 메(Salone de Mai)>, <살롱 콩파레종(Salon Comparaisons)>, <살롱 데 레알리테 누벨(Salon des Realite Nouvelle)> 등 프랑스의 유명 전시회에 매해 초청되며 조각가로서 입지를 다지게 된다. 이 시기에 조각가 문신은 그가 남긴 말처럼 노예처럼 작업하고, 신처럼 자신의 작품 세계를 끊임없이 창조했다.

우주를 향하여, 1985, 스테인리스 스틸, 280×120×120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문신의 조각 세계에는 대칭이라는 뜻의 ‘시메트리(Symmetry)’ 개념이 자리한다. 그는 인간과 식물 그리고 동물 등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대칭이라는 구조를 기본적인 조형 형태로 지닌다고 생각했다. 또한, 작가는 대칭이 빚어낸 조화로움은 곧 우주의 근간과도 같다고 여겼다. 생명의 근원,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우주를 그는 동경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작한 조각 작품에 ‘우주를 향하여’라는 제목을 종종 붙이곤 했다. 대칭의 세계, 조화와 평화, 생명의 근원에 대한 탐구가 이르는 지점은 결국 우주였다. 조각가 문신은 ‘우주를 향하여’ 시리즈를 통해 예술가로서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에 대한 탐구 정신을 그치지 않았다.

(왼쪽) 개미(라 후루미), 1985, 브론즈, 119.5×30×2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른쪽) 무제, 1978, 흑단, 113.2×35×20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인간은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우주)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

문신

 

문신은 1980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프랑스로 떠날 때만 해도 그의 그림과 이름은 미술계에서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지만 80년 그의 귀국은 달랐다. 프랑스에서 조각가로서 입지와 명성을 다져온 그의 이름과 작품을 먼저 사람들이 알아봤다. 말 그대로 금의환향인 셈. 당시 한국과 서울은 88년도 올림픽을 앞두고 도심 미화 사업을 시작했고, 대망의 올림픽 해를 기념한 <국제 야외조각전>에서 문신은 ‘올림픽 1988’(1988)이라는 제목의 야외 조각 작업을 선보였다. 22m 높이의 기념비적인 작품은 반구체를 엇갈리게 대칭의 구조로 쌓아 올렸다. 엇갈린 구체의 반복에서 율동감과 운동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대칭이라는 구조 체계 덕분에 안정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는 88 올림픽을 맞이한 한국인의 기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국내외 미술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무제, 1995, 종이에 펜, 29.5×84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한국으로 돌아온 문신은 자신의 고향과도 다를 바 없는 마산에 미술관을 건립했다. 15년간 작가 본인이 직접 땅을 일구고, 돌을 깎아내리면서 터를 마련했고, 건축 설계 디자인에도 직접 참여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지녔는데 바로 이를 실행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대다수를 미술관에 기증했다. 오늘날에는 행정구역 통합으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문신의 지난 화업은 물론 그가 남긴 드로잉, 조각, 야외 조각 등을 만날 수 있다.

100년의 조각가, 문신을 향하여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문신: 우주를 향하여>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지난 9월 1일부터 2023년 1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회화, 드로잉, 판화, 도자, 조각 등 총 2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무엇보다 사후 처음으로 공개하는 개인 소장 회화 작품과 드로잉 그리고 흑단 조각과 아카이브 100여 점을 통해서 문신의 다채로운 예술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총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문신: 우주를 향하여> 전시 전경

1부 <파노라마 속으로>에서는 조각가 이전에 회화 작가로 활동한 문신의 초창기 활동을 살펴본다. 구상 회화에서 점차 추상회화로 넘어가는 그의 회화 세계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2부 <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은 1960년대 말부터 프랑스에서 제작한 나무 조각을 조명한다. 개미, 나비, 곤충, 새, 식물 등을 연상시키는 형태의 조각들은 그가 작품 안에 담고자 하는 대칭의 개념과 맞닿아 생명의 근원에 작가의 고민과 이야기로 전개된다.

<문신: 우주를 향하여> 전시 전경

3부 <생각하는 손: 장인정신>에서는 작품의 형태보다는 조각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재료를 살펴본다. 특히 작가가 남긴 브론즈 조각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뛰어난 기술력과 묵묵히 수행하듯 견뎌야 하는 작업 과정을 통해서 작가의 작업적 태도를 읽어볼 수 있다. 마지막 4부 <도시와 조각>은 조각에서 건축과 공예, 도시와 환경으로 확대된 작가의 관점을 살펴본다. 그의 대표적인 야외 조각과 함께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설계 도면을 만나볼 수 있다. 100년의 조각가 문신의 작업 세계는 그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국내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특별전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우주를 향하는 문신의 조각 세계를 만나 볼 좋은 기회이다.

이정훈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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