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롤 히메네즈_개인전_Grass on a Busy Street_전시 전경_01
Exhibition 2022-11-07

베이롤 히메네즈가 현재에 저항하는 법

페레스 프로젝트, <분주한 거리의 들풀>전

기간 2022.10.28 - 2022.12.02
장소페레스프로젝트 서울

페레스프로젝트는 멕시코 출신 작가 베이롤 히메네즈(Bayrol Jiménez, b.1984)의 국내 첫 개인전을 오는 12월 2일까지 연다. 작가는 올해 5월에 열린 ‘아트 부산 2022’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됐으며, 지난달에 열린 ‘키아프 2022’에서 많은 관람자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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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yrol Jiménez, The Spirit of the Corn Seeds, 2022, Oil on canvas,180x140cm ©PERES PROJECTS

베이롤 히메네즈는 멕시코를 이루는 역사와 문명, 신화 등을 복합적으로 연구한다. 이러한 연구는 다양한 문명과 인종이 섞인 멕시코의 문화에서 파생됐다. 그는 자신의 기원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해, 물음을 지속해서 좇다 보니 아즈텍, 메소포타미아 등의 문명과 토착 신화, 신화 속 상징과 기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작가의 관심은 이후 국가와 인종을 넘어서 전인류에게 공통적인 주제인 희로애락, 죽음과 사후세계 등으로 연결됐다.

Bayrol Jiménez, Joyful Spirit, 2022, Oil on canvas, 180x140cm ©PERES PROJECTS
Bayrol Jiméne, Fall, 2022, Oil on canvas, 180x140cm ©PERES PROJECTS

구체적인 서사는 배제하고 우연은 환대하기 

캔버스의 사각 프레임 안에 배치된 또 다른 사각형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일종의 통로다. 프레임 내부를 둘러싼 사각 형태는 동서남북이라는 방향의 상징이자 내부에 위치한 대상에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장치에 해당한다. 내부에 위치한 대상들은 그 형상을 명확히 알아볼 수 있는 것들과 불명확한 것들로 구분된다. 겹겹이 쌓인 레이어 층들과 다양한 형태의 대상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한 화면 안에서 리듬감을 형성한다. 

 

작품에 자연스러운 리듬감이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우연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히메네즈는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캔버스를 눕히고, 오일 페인트를 쏟는다. 작가는 이 과정을 일종의 ‘사고’라고 표현한다. 뚜렷한 목적성과 방향성 없이 사고를 낸 작가는 이후 작품을 구상한다. 그 구상은 흩어진 페인트들이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귀 기울이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차츰차츰 레이어를 쌓고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모으며 배치한다. 그러다 보면 다양한 요소들이 얽히며 유기적으로 소통하게 된다.

Bayrol Jiménez, Dance in the Moonlight, 2022, Oil on canvas, 180x140cm ©PERES PROJECTS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작품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얽히기는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 즉 내러티브를 형성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지점이 흥미로운 이유는 역사나 신화를 다루는 작업의 다수가 통합된 서사를 갖추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작가가 관심이 있는 주제인 신화, 문명, 역사 등의 주제는 늘 유기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는 그러한 서사들은 참고하지만 거기에 자신만의 시각과 언어를 조합한다. 하나의 통합된 서사가 없는 베이롤 히메네즈의 작품은 ‘읽힌다’라는 표현보다는 요소요소를 ‘떼어 본다’는 표현에 더 부합한다.

Bayrol Jiménez, Mountain Spirit, 2022, Oil on canvas, 180x140cm ©PERES PROJECTS
Bayrol Jiménez, After Life Vision, 2022, Oil on canvas, 180x140cm ©PERES PROJECTS ​

작업, 이분법을 탈피하기 위한 과정

작품에 통합적인 서사는 찾아볼 수 없지만, 모든 작품을 관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들이 보인다. 파편화된 인체 일부와 식물, 동물, 곤충이다. 히메네즈는 세계적인 비교신화학자인 조지프 캠벨(Joseph Cambell)이 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1949)에서 영감을 받아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신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영웅적 면모들이 모두 남성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히메네즈는 이를 무너뜨리기 위해 성별을 추정할 수 없는 파편화된 신체를 구현했다.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과 패턴은 토착 신화와 지역 축제, 초자연적 상징 등의 이미지에 기반을 둔다. 이는 역사와 신화 등을 연구하면서 작가가 깨닫게 된 가치의 부분들과 맞닿아 있으며, 카오스적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할 이 시대의 가치와도 연결된다. 

작가가 무엇보다 가장 지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관계에서 자연스레 설정되는 이분법이다. 남자와 여자, 인간과 자연, 낮과 밤 등이 그것이다. 히메네즈의 작업은 이러한 이분법을 뛰어넘는 배움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노력의 일환으로 작품을 위로 걸어야 하는지, 아래위를 뒤집어서 걸어야 하는지의 기준도 설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Bayrol Jiménez, Living Flower Vase, 2022, Oil on canvas, 180x140cm ©PERES PROJECTS

히메데즈는 전시 제목으로 ‘발길이 끊임없는 길에는 풀이 자라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차용하려 했으나 척박한 도시의 콘크리트 틈새로 자라나는 야생 식물을 보며 모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뚜렷한 방향과 목표 그리고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함께 상상하고, 함께 들여다보기를 희망한다. 

작가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인기 있고,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울러 죽음, 불안, 공포, 행복 등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의 정서를 다뤘던 과거의 실천을 돌아보며 또 다른 양분을 얻을 수 있음을 피력한다. ‘분주한 거리의 들풀’이라는 수정한 전시 제목은 빨라지고 척박해질 앞으로의 미래에도 길은 늘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하도경 에디터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페레스 프로젝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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