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8

작가 고요손이 접시 위 올린, ‘끝내 사라져버리는’ 조각

부수고 잘라서 맛보는 조각?
전시된 조각을 만질 수 있다면? 나아가 그걸 부수고, 자르고 입에 넣는다면? 10월 31일까지 열리는 작가 고요손의 <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은 그런 경험을 안기는 전시다. 이 기획은 작가가 어릴 적 막연히 품었던 상상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미술관에 놓인 조각을 보면서 그걸 만지고 부수는 상상을 한다. 그 부스러기를 입에 넣으면 어떤 맛이 날지도 그려봤다. 그 기억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먹는 조각’으로 이어졌다. 조각이라는 매체로 다양하게 시도해온 작가의 또 다른 시도다.
포스터

‘먹는’ 조각이므로 협업할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평소 디저트를 즐기던 작가는 문득, 디저트란 조형적인 원리를 따라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라 느낀다. 그리고 무너미, 원형들, 섬광, 수르기, 심드렁, 토오베라는 서울의 디저트 가게 여섯 곳과 함께 작업을 시작한다. 고요손이 조각을 구상하면, 파티시에는 먹을 수 있는 물질로 구현한 것.

그렇게 탄생한 ‘먹는 조각’들은 기이하게 아름답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포크와 나이프로 부수어 먹어 치우는 경험은 색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서울 수유동의 디저트숍 무너미에서 먹는 조각 한 점을 사이에 두고 고요손과 마주앉았다.

전시에 참여하는 디저트 가게 6곳이 표시되어 있다.

Interview with 고요손

이번 전시는 정말 독특한 방식으로 이뤄져요. 디저트를 ‘먹는 조각’으로 해석하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떠올렸나요?

제가 디저트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어요. 어릴 적부터 해온 생각도 영향을 미쳤고요. 미술관에 가면 조각 주위로 보호 선이 쳐져 있잖아요. 그 선을 넘어 조각을 파괴하는 상상을 하곤 했어요. 만약 조각의 일부를 집어서 먹는다면 어떤 맛일까? 그 잘린 단면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했어요. 조각은 여러 방향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매체예요. 만질 수도 있죠. 만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아예 몸 안으로 흡수하는 조각을 떠올렸어요.

수르기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 조각 형태는 고요손이 빚었으나, 맛은 오로지 파티시에들이 구현해냈다. 조각을 베어 물면 퍼지는 맛이 아주 근사하다.

흡수하는 조각이라면, 조각을 접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어요.

‘먹는 조각’을 접한 후 어떤 조각을 본다면 ‘어, 저건 내가 저번에 먹은 조각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비슷한 맛이 나려나?’ 하는 상상을 할 수도 있겠죠. 그게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예 쓰레기가 남지 않는 작업이기도 하잖아요. 온전히 조각을 소비하는 방식에 관해 얘기해볼 기회라고 느꼈어요.

 

무너미, 원형들, 섬광, 수르기, 심드렁, 토오베. 디저트 가게 여섯 곳과 협업해요. 이 여섯 곳과 함께한 이유가 있어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하루에 한 번은 꼭 디저트를 먹을 만큼 디저트를 좋아해요. 새로운 디저트를 찾고 구경하는 일도 즐기고요. 많이 보다 보니, 디저트를 조형적인 원리로 만드는 가게들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함께한 가게들이 이 프로젝트에 흥미를 느껴 주셔서 다행이었어요. 서울에서 시작했지만, 부산이나 제주 등 다른 지역의 디저트 가게들과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어요.

무너미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 접시에 놓인 조각을 보는 일부터 전시 경험이 시작된다.

협업 과정은 어땠어요? 각 가게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을 빚어내기까지 과정이 궁금한데요.

조각의 스케치와 스케치를 구현한 작은 모형을 들고 가게를 찾아가면서 시작했어요. 저에게는 조각의 모양이 중요했기에 기본적인 틀은 말씀드렸어요. 이를테면 이 형태는 꼭 살리고 싶다, 이러한 색감이면 좋을 것 같다- 같은. 그걸 구현하기 위한 재료 등은 가게에서 추천해 주셨어요. 제가 말하면 그쪽에서 아이디어를 덧붙이고, 거기에다가 또 제 의견을 덧붙이고…. 왔다 갔다 하면서 만들어갔습니다.

 

조각을 처음 스케치할 때, 특정 조각과 특정 가게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을 미리 했나요?

가게에 대한 정보를 꼼꼼하게 수집했어요. 가게마다 쓰는 재료들이 비슷한 느낌으로 묶이더군요. 이를테면 원형들은 뿌리나 줄기, 잎 같은 재료를 많이 쓰고, 섬광은 열매를 많이 쓰세요. 그 재료들을 떠올리면서 조각에 대한 상상을 발전해 나갔어요. 원형들을 위한 조각에는 ‘무인도’라는 키워드가 떠올랐고, 그 키워드가 무인도에 갇힌 사람으로 이어졌다가, 그런데 그 사람이 원형들에서 자주 쓰는 어떤 식물을 들고 있으면 어떨까? 뻗어나갔죠.

원형들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

섬광은 그 식물에서 열리는 열매를 생각하다가 좀 더 시야를 넓혀서 사람이 갇혀 있는 무인도, 섬 자체를 표현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가게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제가 해왔던 일을 함께 훑어봤어요. 나는 어떤 조각을, 어떤 형태를 만들어 왔지? 이런 형태라면 어떤 가게와 어울리지? 하면서 혼자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섬광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

디저트이자 조각입니다. 그런데 또 겉으로만 보자면 익숙한 디저트 형태가 아니에요. 모양이 낯설어 선뜻 입에 넣기 어려워 보이기도 해요. 형태를 디자인할 때 그 점을 고려했어요?

평소 조각을 스케치하던 대로 스케치했어요. 먹는 것, 디저트라는 키워드를 염두에 두게 되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입에 넣을 수 있는, 익숙한 이미지를 따라갈 것 같았어요. 조각이 딱 나왔는데, ‘이게 조각이라고? 케이크잖아!’ 하면 실패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최대한 평소대로 작업했습니다.

 

여섯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은 다 다른데요. 이들을 하나로 엮는,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뭘까요?

고요손의 조각이라는 점이겠죠. 고요손이라는 작가가 조각으로써 제안하는 ‘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

심드렁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

조각을 소개하는 글이 인상 깊더군요. 명사뿐 아니라 ‘툭!’ ‘졸졸졸’ ‘후드득’처럼 소리를 묘사하는 말이나 ‘어려운 진실’ ‘감독의 고민’ 등 무언가를 설명하는 듯한 말이 들어 있죠.

전시를 공동 기획한 조정민 화이트 노이즈 서울(White Noise Seoul) 대표와 함께 쓴 소개예요. 완성한 조각을 맛보면서, 그 맛과 모양, 잘린 단면 등을 두루 보고 소개 글을 만들었어요. 세부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키워드를 나열하려 했어요. 보통 디저트 가게에서는 맛이나 재료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잖아요. 이번 전시에서는 그 전달 방식이 보다 추상적이길 바랐어요.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만들고 싶었거든요.

이번 전시의 조각을 소개하는 핸드아웃

한 인터뷰*에서 스포츠 선수와 협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한다고 했죠. 그들이 조각을 가지고 놀면, 조각이 어떻게 파괴되고 놀아나는지 궁금하다면서요. 이번 전시는 일면 그 생각과 이어지는 것 같아요. 접시 위에 놓인 디저트란 결국 해체되고 부서지니까요. 부서지는 것, 해체되는 것, 그리고 결국 사라지는 것에 꾸준히 관심을 두나요?

부서짐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제가 연출한 영역 안에서는 조각을 부수어 보는 경험을 만들고 싶었어요. 통상적으로 이건 이래야 해, 저건 저래야 해, 하는 생각에서 조금 더 여유로워지는 순간을 나누고 싶었다고 할까요? 이렇게 말씀드리려니 조심스러워져요. 기존의 감상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 작업 안에서는, 작가가 설정한 선 안에서 이렇게도 해볼 수 있음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 아트렉처, 이지언, 고요손: 그가 아닌 그들 그리고 <미셸>

토오베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 뚜껑이 닫힌 채 제공된다.

이번 전시로 목격하고 싶은 어떤 순간이 있을까요?

전시장이 아닌 곳에서 전시를 하는 게 작가로서 다소 부담스럽기는 해요. 다만 저는 예측 불가능성을 즐기는 사람이어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 나 때문에 이곳을 찾은 것이 아닌 사람들이 제 조각을 체험하기를 바랐어요. 이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큰 소망이었죠. 각기 다른 가게들이 하나의 주제를 갖고 뭔가 탄생시키는 현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현상을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궁금했습니다. 특정한 반응을 얻고 싶었다기보다는, 단지 그런 작업에 호기심이 일었어요. 자유롭게 해석하고 부담 없이 즐기세요.

수르기에서 만날 수 있는 조각

저 역시 이렇게 비주얼이 특별한 케이크를 앞에 두면 포크를 대기가 망설여져요.

아까워서 제대로 손대지 못했던 것들에 손을 대고, 그게 부서져 내리는 흔적을 보는 일도 꽤나 근사해요.

김유영 기자

자료 제공 고요손

프로젝트
<섬세하게 쌓고 정성스레 부수는 6가지 방법>
장소
무너미, 섬광, 수르기, 심드렁(심두), 원형들, 토오베
일자
2022.10.14 - 2022.10.31
기획자/디렉터
고요손, 조정민
크리에이터
그래픽 디자인 | 이건정, 협력 | 나이트프루티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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