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코드는 패션 업계에서 환경이나 업사이클링 개념이 자리 잡기 전인 2012년부터 꾸준하고 뚝심 있게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개해온 브랜드다. 10주년을 맞은 지금, ‘가치 있는 같이’를 모토로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다. 이번 전시는 래코드가 전개해 온 콜렉션과 무브먼트를 모아 선보이는 ‘래코드 존’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서 래코드와 뜻을 같이하는 디자이너, 아티스트, 브랜드의 전시로 구성된 ‘프렌즈 존’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되었다. 래코드 존에는 14개의 방, 프렌즈 존에는 11개의 방(총 25개의 방)이 각각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 전반 디자인은 2019년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그레타 툰베리가 환경 문제의 긴박함을 “우리들의 집에 불이 났어요”라고 한 연설에서 영감을 받았다. 우리가 일찌감치 변화한다면 바람대로 불대신 풀이 나는 집과 지구의 모습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코오롱FnC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 한경애 전무는 “환경, 지속가능성은 어느 한 사람, 한 브랜드만의 고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래코드가 지난 10년간 재고 업사이클링 솔루션에 집중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프렌즈’와 함께 패션이 더 이상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 전시에 온 여러분은 또 한 명의 ‘래콜렉티브’다. 끝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가치있는 같이’를 함께 해주길 바란다”며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 타이틀인 ‘Re;collective(래콜렉티브)’는 래코드가 제안하는 지속 가능 연대의 타이틀이자 키워드가 될 예정이다. 일회성이 아닌 하나의 이니셔티브로 래코드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래코드의 세계관
패션 산업은 환경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새로운 옷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버려진 옷들이 망치는 환경 문제 사이에서 해결책을 찾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래코드가 태어난 2012년은 역설적이게도 글로벌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세계를 장악하던 시점이다. 이번 시즌만 ‘입고 버린다’는 개념은 고스란히 지구에서 감당해야 할 쓰레기를 가중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 생산 공장을 돌리면서 해당 노동 문제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래코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 FnC 부문 30여 개 브랜드에서 3년 이상 재고로 쌓인 의류를 활용해 업사이클 의류를 만든다. 고용 또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주어질 수 있게 운영했다. 래코드존에는 십 년간 래코드가 걸어온 지속 가능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아카이브가 펼쳐졌다.
그동안 만든 10년간의 컬렉션 아카이브, 2016년 아름지기 재단과 진행한 <저고리, 그리고 소재를 이야기하다>에서 기증받은 한옥으로 인생주기의 옷을 표현한 의상들, 2018년 발달장애 아티스트 픽셀킴의 그림들, 라코스테, 진태옥 디자이너, 지용킴과 함께한 협업 컬렉션은 물론 방탄소년단이 착용했던 의류를 활용한 하이브 인사이트, 실제 사용하는 재활용 에어백을 설치미술 형태로 전시했다. 관람객 참여 프로그램으로 래코드의 부품과 원단을 활용해 키링을 만들어 보는 세션, 매주 목요일 래코드의 옷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시연하는 sns 라이브도 열린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은 배우 류준열과 뮤지션 요조의 내레이션은 전시장에 묵직한 메시지를 울린다.
회개의 공간부터 옥탑방 작은 자연까지
크리에이터가 만든 11개의 공간들
프렌즈존에서는 환경과 지속 가능 이슈에 대해 평소 많은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11개(팀)의 크리에이터와 브랜드의 전시가 진행된다. 요즘 가장 떠오르는 창작 그룹인 아워레이보는 ‘우리의 죄(Our Sin)’을 통해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행동들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우한나 작가는 래코드에서 사용하는 자투리 천을 활용해 메고 다닐 수 있는 유기적 형태의 가방 ‘Bag with you’ 시리즈를 만들었다. 재고로 남은 패딩, 산업용 앵글, 덕트, 파이프 등의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연진영 작가는 구스 다운 재킷을 활용해 거대한 랍스터를 전시장에 들여놓았다. 홍영인 작가는 아트선재센터와 함께 영국 체스터 동물원에서 관찰한 코끼리의 짚풀 신발을, 문승지 디자이너는 한 장의 합판에서 네 개의 의자를 만들 수 있는 디자인을 소개한다. 가구의 제작과정에서 생겨나는 산업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프로젝트, 이코노 체어로 그는 지난 2014년 래코드 명동성당점의 제로웨이스트 체어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연이 있다.
쓰레기를 키워드로 제품 디자인, 전시, 기업과 협업을 전개하는 져스트 프로젝트는 래코드에서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원단으로 어떤 형태도 안정감 있게 감쌀 수 있는 보자기를 만들었다. 일본의 유명 건축가 계보를 잇는 조 나가사카는 인류의 문명사에 중요한 발견인 회전운동에 대한 진지한 오브제를 선보였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옥탑방에 마련된 데이비드 드 로스 차일드 X 현대자동차의 공간으로 연결된다. 영국의 유명 탐험가이자 생태학자, 환경운동가인 데이비드 드 로스 차일드는 이번 전시에 뜻을 같이하며 작은 자연을 구상했다. 공간에 들어서면 잠시나마 진한 흙과 풀내음이 훅 느껴진다. “최근 언제 자연을 경험해 봤나요?” 자연의 냄새와 소리를 듣는 것.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소중한 존재는 우리가 지구에 잠시 머무는 손님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글 이소진 수석 기자·콘텐츠 리드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래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