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 건축의 5가지 원칙’을 세우고 메종 라 로슈에도 적용했다. 철근 콘크리트 같은 새로운 건축 자재의 사용뿐만 아니라 오픈 파사드와 오픈 플랜(자유로운 입면과 평면), 수평창, 옥상 정원 및 필로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외에도 2~3층을 잇는 가파른 경사도의 램프, 응접실의 수평창을 따라 긴 면이 부각된 조명과 위아래층을 연결해 물건을 나를 수 있도록 한 도르래 같은 요소들도 인상적이다. 그림을 즐겨 그렸던 르 코르뷔지에의 회화도 갤러리 공간에 잘 전시되어 있다. 이토록 새롭고 진보적인 건물은 20세기 모더니즘의 좋은 예시가 되며, 당시 이 실험적인 공간을 보기 위해 수많은 창작가들이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1996년 국가의 역사적인 기념물로 선정되었고, 1970년 이후로 여러 차례 복원 작업을 거쳤다.
현재 르 코르뷔지에 재단(Foundation Le Corbusier)이 운영하는 이 특별한 장소에서 재단 설립 후 최초의 디자인 전시가 열렸다. 파리 디자인 위크 기간에 맞춰 지난 9월 27일까지 진행된 전시 <프래그먼트(Fragments)>는 안토니 게레(Anthony Guerrée)와 엠 에디션(M éditions)의 협업으로 가구와 오브제 컬렉션을 소개했다.
엠 에디션은 3대째 대리석 제작자의 길을 걷고 있는 장-파스칼 모르비도니(Jean-Pascal Morvidoni)가 대리석 브랜드 레 마브레리 드 라 센(Les Marbreries de la Seine)을 운영하며 가업을 이어가던 중,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려는 취지로 2019년 설립했다. 그간의 노하우(savoir-faire)는 물론이고, 현대적인 디자인에 대한 안목,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열정, 석재에 대한 전위적인 비전을 갖고, 오직 미네랄 스톤과 대리석을 소재로 한 가구를 선보인다.
안토니 게레는 파리 국립응용미술학교(École Boulle)에서 학업을 마치고, 저명한 스튜디오에 소속되어 주요 공예 하우스와 함께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글로벌 경력을 쌓았다.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재작년 스튜디오를 열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올해 프렌치 디자인 100 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으며, 그의 베르뒤랑(Verdurin) 의자는 프랑스 문하부 산하 기관인 모빌리에 나쇼날(Mobilier National)의 컬렉션으로 수록됐다.
안토니 게레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그리스 건축과 르 코르뷔지에’라는 두 가지 신화적 존재에 대해 집중적으로 리서치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우주와 미적 신념을 바탕으로 대리석 소재를 활용한 역사를 조사 및 탐구했다. “나는 도리아 양식(Doric order)과 그가 지닌 고귀한 금욕,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의 부드러운 소형돌이형 장식, 코린트 양식(Corinthian order)의 질서와 풍부한 표현까지, 이 세 가지 고대 건축 양식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고, 장인 정신과 창의적인 디자인 사이의 열정적인 대화에 스스로 빠져들었다.”라고 전했다. 르 코르뷔지에가 파르테논 신전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번 작업은 천 년의 역사와 현대성에 기반을 두고, 자유로운 창작 활동 속 비활성 형태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대리석 고유의 순수미를 드러낸다.”라고.
이처럼 서양 고전 건축의 양식을 기반으로 탄생한 프래그먼트 컬렉션은 ‘도릭(Dorik)’, ‘이오닉(Ionik)’, ‘코린트(Corinthe)’ 이렇게 세 가지 라인으로 구성된다. 도릭과 이오닉 라인은 서양식 조명 기구의 일종인 스콘스를 비롯해 화병, 액세서리용 접시, 스툴, 사이드 테이블로, 코린트 라인은 플로어 램프, 벤치, 라운지 체어, 콘솔, 커피 테이블과 사이드 테이블 등으로 구성된다. 총 19개의 작품은 1층 로비를 시작으로 2층의 갤러리, 통로, 다이닝 룸, 3층의 서재와 침실 곳곳에 배치되었고, 각 제품들은 상호 연관성을 지니며 자연스레 공존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놓여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디자이너의 창작물은 공간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컬렉션을 자세히 살펴보면, 깔끔한 마감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프랑스 북부 지역과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대리석은 건축 용도로 활용하기에는 크기가 너무 작았고, 이러한 대리석 조각들은 안토니 게레를 만나 가구로 설계된다. 이는 레 마브레리 드 라 센의 대리석 전문가의 숙련된 손길을 거쳐 디테일을 갖춘 완벽한 가구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대리석이 지닌 내추럴한 컬러와 패턴, 물성과 볼륨감은 아름답게 유지한 채로.
한편, 르 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자네레의 역사적인 공간 속 프래그먼트 전시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최초의 디자인 전시라는 타이틀 외에도, 안토니 게레의 가구로 탄생하기 전 쓸모를 잃어버린 작은 대리석 조각은 지난 1955년 르 코르뷔지에가 보주(Vosges)에 건설한 예배당인 노트르담 뒤 오 채플(Notre-Dame du Haut Chapel)의 콘크리트 골조를 채우기 위해 재활용했던 돌을 떠올리게 한다. 자원의 합리적인 사용을 조명한다는 의미에서 그때의 르 코르뷔지에와 지금의 안토니 게레는 시공을 초월해 연결되어 있었다.
글 유승주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Fondation Le Corbusier, M éditions, Anthony Guerré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