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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7

해와 흙이 빚은 술, 레돔

다정한 방식으로 계절의 맛을 만드는 브랜드
삶을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비장한 결심? 단호한 의지? 이렇게 결연한 자세가 필요할 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가끔은 그저 마음 가는 길을 인생이 따라가기도 한다. 프랑스 파리에 살던 신이현과 도미니크가 충북 충주에서 작은 밭을 일구게 되기까지도 거창한 각오는 없었다. 알자스(Alsace)의 포도밭을 보며 자란 도미니크는 농부가 되겠다는 꿈을 더 이상 미루기 싫었고, 신이현은 ‘그래? 그럼 해보지 뭐’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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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와 신이현 두 사람은 수안보의 조용한 마을에 양조장 ‘작은 알자스’를 세우고 사과와 포도를 길러 술을 만든다. 자연에 다정한 방식으로 농사지어 빚는 그들의 술에는, 도미니크를 부르는 애칭 ‘레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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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쏟아지는 별을 바위가 받아들이니,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도 바위가 간직한 열이 나무뿌리를 데워줄 테고요.

충주라는 도시 자체도 매력적이었어요. 우리나라 중앙에 자리 잡아서 어디든 편히 갈 수 있으면서도 번잡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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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작은 알자스 레돔

신이현 대표

— 충주 수안보에서 술을 빚습니다. 이 땅의 테루아(terroir)가 마음에 들었나요.

어디든 농산물이 자라는 곳에서라면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충주를 고려하진 않고 전국을 두루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우연히 이 땅을 만났는데 자꾸 생각이 나더군요. 우선 땅이 남쪽을 바라보며 언덕져 있어 과일이 잘 자랄 것 같았어요. 땅 밑에는 편암이라는 돌이 있어서 나무와 열매가 바위 속 미네랄을 흡수할 수 있죠. 낮에 쏟아지는 볕을 바위가 받아들이니,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도 바위가 간직한 열이 나무뿌리를 데워줄 테고요. 충주라는 도시 자체도 매력적이었어요. 우리나라 중앙에 자리 잡아서 어디든 편히 갈 수 있으면서도 번잡하지 않아요. 온천이 유명할 만큼 물도 좋고 산도 좋고요. 그러니 과일이 잘될 수밖에 없지요.

 

—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사는 곳과 직업을 바꿨습니다. 삶에 큰 변화를 불러오는 결정인데, 두렵지는 않았어요?

모든 게 꽤 자연스러웠어요.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도미니크가 오랜 세월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으니, 이제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었죠. 도미니크의 가족 중 포도밭을 일구는 분들이 있어요. 그에게도 이미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셈이에요. 밭에서 농사일을 할 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는데 어쩌겠어요. 한국으로 온 것도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제가 더는 타국에서 살고 싶지 않았거든요. 미래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면 인생을 바꾸긴 어렵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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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역동(bio dynamic)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고요. 국내에선 아직 이 농법이 생소해요.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는지 들려주세요.

요약하자면 우주의 기운과 더불어 농사를 짓는 거예요. 땅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하늘까지 보면서요. 우리나라의 음력처럼, 행성과 별의 움직임까지 담은 ‘생명역동농법 달력’이 있어요. 이 달력을 항상 곁에 두고 활용합니다. 이를테면 달력을 보고 ‘열매에게 좋은 날’을 확인한 후, 그날 과실을 수확하는 식으로요. 이 농법에서 농부는 작물만 키우는 사람이 아니에요. 땅과 땅속 미물까지 함께 돌보는 사람이죠.

 

그래서인지 두 분의 밭에는 사과와 포도뿐 아니라 루바브, 나무딸기 등 수많은 식물이 자라요. 닭과 거위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요. 땅을 더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인가요?

사람 사는 세상이랑 똑같아요. 똑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없잖아요. 저마다 가진 개성을 존중하면 모두가 자기 색을 활짝 펼치면서 살 수 있겠지요. 땅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생물이 어우러지면 부족한 것, 더 가진 것을 주고받으면서 더 건강해져요. 우린 절대 제초제나 농약, 퇴비를 쓰지 않아요. 땅이 스스로 숨 쉬게 해야 하니까요. 땅의 힘이 좋아지면 절로 좋은 과실이 날 테죠. 그 과실로 빚은 술에는 땅과 계절의 맛이 가득할 거고요. 우리가 추구하는 맛은 그런 맛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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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의 맛, 계절의 맛. 어떤 맛일까요?

땅의 맛이란 과일이 자란 땅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맛이지요. 우리 밭 밑에는 돌이 있으니까 미네랄 뉘앙스가 강하겠죠. 진흙밭에서 자란 과일로 빚은 술에선 완전히 다른 맛이 날 테고요. 계절의 맛도 비슷해요. 어느 해엔 가뭄이 들고 또 어느 해엔 비가 너무 많이 내리기도 하잖아요. 그 조건에 따라서 같은 밭에서도 다른 맛의 과일이 나와요. 어떤 땅에서, 어떤 날씨를 견디며 자란 열매로 빚었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술이 좋아요.

 

— 사과로 빚은 시드르와 포도로 빚은 와인을 모두 만들고 있죠. 양조 과정은 어떻게 다른가요?

시드르는 정말이지 손이 많이 가는 술이에요. 늦가을에 사과를 딴 후 12월 초에 착즙해요. 착즙한 사과를 발효 탱크에 넣고 겨우내 천천히 발효해요. 발효하는 동안 효모 찌꺼기가 많이 쌓이기 때문에 그걸 계속 빼줘야 하지요. 그런데 발효 과정에서 만지면 만질수록 산소에 자주 노출되고, 그러면 술이 엉망이 될 수 있어요. 더군다나 사과로 빚은 술은 포도 술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서 변질할 위험이 더 큰데, 우리는 방부제도 쓰지 않으니 무척 조심스럽지요. 온 겨울을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 채 보냅니다. 와인은 시드르에 비해서는 수월해요. 찌꺼기를 한 번 정도만 빼주면 되거든요. 포도로 빚은 와인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있어요. 포도는 정말 술을 위한 과실이에요. 완성도가 높으니 좋아해주는 이들이 여럿이고, 거기서 오는 기쁨이 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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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을 오크통이 아니라 옹기 항아리에 숙성하더군요. 보기 드문 방식인데, 옹기를 택한 이유가 있나요?

언젠가 오크통에 술을 숙성하기도 할 거예요. 다만 지금은 과일이 품은 원래의 맛을 표현하고 싶어요. 오크는 향이 강해서 술에 짙은 풍미를 더해주지만, 우리는 포도의 순수한 맛을 술로 구현하려 했어요. 레드 와인은 MBA 적포도, 야생 머루 포도로 만들어요. 와인으로 쉽게 만날 수 없는 한국 품종인 만큼, 이 품종의 맛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일에 도전하고 싶었지요. 그러기 위해선 오크보다는 개성이 희미한 숙성 용기가 필요했어요. 그러다가 도예가가 빚은 숙성 옹기 항아리를 찾게 되었고요. 우리가 만드는 와인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됐지요.

 

— 와인이 맛있을 거라는 자신이요?

아뇨, 맛과는 다른 문제예요. 맛이 있든 없든, 내가 키운 원물의 맛을 오롯이 표현해내면 된다는 믿음에 가까워요. 저에게도 ‘맛있는 와인’ 하면 떠오르는 기준이 있는데요, 그러한 기준에 자꾸 맞추려 들지 않고 열매의 맛을 충분히 표현하겠다는 거예요. 사실 포도 자체의 강렬함은 유럽 포도를 아직 따라갈 수 없어요. 유럽은 양조용 포도를 재배한 역사가 수백 년에 이르는 걸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여기서 한국 포도로 만드는 와인이 의미 없는 건 아니죠. 싱그럽고 풋풋한 한국 포도의 특징이 가득한 와인을 빚는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 농사와 양조를 하다 보면 일 년이 금세 가겠습니다. 농부의 사계절은 어떻게 흐르나요?

농부에게 쉬는 날은 없지요. 겨울을 농한기라고들 하지만, 우리는 겨울에 양조해야 하니 쭉 바쁩니다. 나무가 덜 춥도록 볏짚과 낙엽을 모아 덮어주기도 하고요. 봄에는 밭 상태를 유심히 살피고 잎이 제대로 나는지 확인하면서 한 해 농사를 시작해요. 여름은 더운 데다 벌레도 병충해도 많아 농부에겐 고된 계절이에요. 나무가 병들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틈틈이 가지와 잎을 정리합니다. 가을엔 시드르용 사과를 따고…. 그렇지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밤에는 일 안 해요. 성실히 일하고 저녁엔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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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돔의 술이 눈에 띄는 데는 깔끔하고 시원스러운 라벨 디자인이 한몫합니다. 지금은 제주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김채수 디자이너가 맡아주었다고요.

김채수 디자이너와는 오랜 친구예요. 라벨 디자인은 친구의 선물이죠. 충주에서 농사와 양조를 시작한다고 하니, 그가 상표의 중요성을 알려주더군요. 미처 거기까지 생각할 자금도 여유도 없는 우리를 보곤 직접 디자인해주었습니다. 농산물로 만든 술의 라벨이 다소 예스럽고 복잡한 경우가 많잖아요. 김채수 디자이너가 시드르와 와인이라는 술에서 느껴지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살려주었어요. 이 로고와 라벨을 바탕으로 차차 발전시켜보려고 합니다. 술이란 마침내 감성을 건드리는 액체이니 생김새도 중요하겠지요. 레드와인은 플라스틱 마개가 아니라 붉은 밀랍으로 봉했는데요, 밀랍이 훨씬 자연 친화적인 소재인 데다 예쁘기까지 해서 골랐습니다.

 

— 지난 6월에는 양조장에서 레스토랑 ‘프란로칼’ 셰프 엄현정, 작가 안상진, 뮤지션 타임플라워 등과 협업한 행사를 열었죠. 와인과 요리, 미술과 음악이 한데 어우러진다니 듣기만 해도 낭만적이에요. 하지만 여는 사람 입장에서는 신경 쓸 일이 많았을 텐데요.

농사는 힘들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잖아요. 예술은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니까, 예술로 풀면 농촌에서의 삶이 얼마나 가치로운지 보여줄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농산물의 가치를 정확히 바라봐주는 사람이 늘어나기도 할 테고요. 이런 행사는 젊은 사람들을 농촌으로 모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죠. 예술이 도심의 갤러리에서만 존재해야 하나요? 여러 예술가가 농촌에 와서 뜻을 펼치면 좋겠어요. 제가 꾸준히 글을 쓰며 이곳에서의 삶 이야기를 담은 책을 출간하는 이유도 거기 있고요. 앞으로도 예술 축제와 전시를 꾸준히 기획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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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사와 양조, 집필과 행사 기획까지 두루 살피려면 정말 바쁘겠어요. 그 와중에 생산한 술을 알리고 팔기도 해야 하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주문과 판매 채널을 최소화했어요. 채널이 여러 개면 관리할 것도, 놓치는 것도 늘어나기 마련이니까요. 지금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만 운영해요. 하나만 남기려면 신중해야 했어요. 스마트스토어는 수수료가 낮아요. 그것만으로도 선택할 이유가 충분한데 사용하기도 간편합니다. 신경 쓸 일이 쌓여 있으니 복잡한 기능은 피하게 되는데, 스마트스토어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정산과 세금 처리도 정확하고 빨라서 골치 아픈 일을 줄여주고요. 집중해야 할 일에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이에요. 우리가 충주 깊은 곳에서 농사를 지어 술을 빚고 있음을 세상에 알려주는 곳이기도 하지요. 스마트스토어는 아주 소중한 ‘우리 가게’예요.

 

— 도미니크 님은 농사와 양조에 온 정성을 다하고, 이현 님은 그 일을 알리는 한편 농촌에 새 문화를 불러오려고 노력해요. 무엇이 두 분을 이토록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나요?

도미니크는 타고나기를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에요. 우직하고 꾸준하게, 한눈팔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일에만 집중하지요. 솔직히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되게 피곤해요. 답답하기도 하고요. 그런데요, 저는 결국 도미니크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알고, 그가 하려는 일의 가치를 믿어요. 자연스럽게 그 가치를 알리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일죠. 이 일 저 일 벌인다고 해서 내가 크게 누리게 되는 건 없어요. 다만 농촌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청년 농부와 양조자를 만나 무언가 함께 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농산물도 술도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요? 대한민국 곳곳의 테루아가 담긴 술이 여기저기서 익어가게 된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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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현 대표
장편 소설 <숨어 있기 좋은 방>으로 등단한 소설가. 파리와 프놈펜 등의 도시에 살다가 충주에 정착했다. 글과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든다. 최근 농사와 와인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인생이 내추럴해지는 방법>을 출간했다.
도미니크 대표
프랑스 알자스에서 태어났다. 오랜 세월 엔지니어로 일하다 불현듯 농업대학에 들어갔다. 포도 재배와 양조학을 전공했고 알자스의 와이너리에서 경험을 쌓았다. 충주에 양조장 ‘작은 알자스’를 꾸린 후 농사와 양조에 몰두하고 있다.
기사 전문은 〈find〉 가을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제목 find / 화인드 2022년 가을호

지은이 디자인프레스㈜

발행일 2022년 9월 22일

판형 205mm x 265mm

ISSN 2799-9963

김유영 기자

사진 표기식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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