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생명체(anima-machine)’. 최우람(b.1970)의 작업에 고유명사처럼 따라붙는 이 말은 그가 작가로서 30여 년간 보여준 연작의 특징-생명체에 준하는 기계 매커니즘과 키네틱 미학의 아성-을 보여준다.
(좌) 검은 새, 2022, 폐종이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 가변설치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우) 원탁, 2022, 알루미늄, 인조 밀짚, 기계 장치, 동작 인식 카메라, 전자 장치, 110 x 450 x 450 cm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지푸라기로 된 인간 군중 형상이 잃어버린 자기 머리를 찾아 몸을 움직인다. 둥근 원탁을 받치고 있는 몸체와 원탁 위에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머리. 허리를 들었다 숙이며 규칙적이고 숨 가쁘게 움직이는 그들 움직임은 사실 매우 기계적이다. 끝내 머리를 차지할 수 없는 무한 노동과 관성마저 붙은 실패가 순환하는 <원탁>의 상공 위로 검은 날개를 펴고 유유히 회전하는 <검은 새>가 보인다. <검은 새>는 모션 캡처 카메라를, <원탁>은 로봇축구의 정교한 기술이 구현됐다는 장치의 비밀을 알면 지푸라기 같은 그들 외피의 남루함은 이 상황을 이끄는 거대 주체에 대조되어 현실의 속내를 더욱 비극적으로 극화하는 것만 같다. 관람객은 이 밀짚맨(strawman)이 발을 딛고 있는 지면에서 그들의 처절한 제스쳐와 그들 위로 구르는 머리, 그리고 그것을 감시하듯 비행하는 검은 새의 역설적인 상황 장면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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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진 채 지푸라기 몸체의 움직임만을 보여 주는 <원탁>은 알베르 까뮈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굴러 떨어질 것을 알고도 바위를 밀어 올리는 벌을 반복하는 시지프스의 상황을 두고 부조리라고 평한 것을 상기시킨다.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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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전시실을 채운 거대 설치작 <작은 방주>를 보자. 흑백의 프레임으로 구성된 거대한 배가 장대한 군무를 추듯 몸체를 펴 낱개의 기계장치를 움직이고, 선체 중앙에는 한쪽 팔을 들어 방향을 지시하는 두 선장이 등을 마주하며 정 반대 방향을 보고 있다. 선박의 항로를 표시해야 할 등대는 배의 원형 철제 프레임 상부에 속해있다. 세로축 12미터, 궤의 움직임 최대 폭이 7.2미터, 등대 끝까지의 높이는 5.5미터에 달하는 대형 크기의 기계 선박이 ‘웅-‘ 묘한 기계음을 내며 약 20분 간 노를 펼치고 접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뱃머리 장식이어야 할 <천사>는 제 위치에서 떨어져 날개를 축 늘어뜨린 채로 벽면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매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벽에 박힌 <닻>과 닫힌 문의 형태만 끊임없이 연속되는 영상 <출구>가 장엄하지만 모순적인 퍼포먼스에 동참한다. 인간 신체의 한계를 자각하고 점멸하듯 위태로운 인류 생존의 문제를 각성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방주, 그 방주에 오르거나 오르지 못하는 선택과 차별, 권력과 위계의 문제를 직시한 작가가 기계 생명체에 투영한 동시대의 면면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좌) 닻, 2022, 레진, 아크릴릭, 스테인리스 스틸, 73 x 60 x 54 cm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우) 천사, 2022, 레진, 24K 금박, 스테인리스 스틸, 162 x 133 x 56 cm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문명사회와 인간 욕망의 도착지로 맞이한 팬데믹의 암은 기계 생명체를 만드는 예술가의 숙고를 경유하여 트랜스휴머니즘의 담론으로 나아가고 있다. 코로나 검사와 진료 의료진이 착용한 방호복의 섬유와 같은 소재 타이벡(Tyvek)으로 만들어진 <하나>는 천천히 피고 지는 꽃의 순환을 따르며 생사의 존재감을 발한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대립되는 감각을 이끄는 이들의 동력은 때로 야심차고 때로 절망적인 것으로, 그러나 예민하고 숭고한 삶의 항해로부터 치환된 서사로 계속 열리고 닫힌다. 방향감각을 잃고 표류하는 난파선은 노아의 방주가 될 새로운 통찰이 필요하다. 지금, 그것을 최우람의 기계생명체를 통해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간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간 매년 국내 중진 작가 한 명(팀)을 지원하는 연례전이다. 2014년 이불, 2015년 안규철, 2016년 김수자, 2017년 임흥순, 2018년 최정화, 2019년 박찬경, 2020년 양혜규, 2021년 문경원&전준호에 이어 2022년에는 최우람이 선정됐다.
글 오정은 객원 필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국립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