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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당신은 이곳에서 편안합니다, 차별없는가게

누구나 마음놓고 머무르는 곳
세상은 모두에게 똑같이 드넓고 자유로울까? 목발을 짚었다면 계단이 가파르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공간은 피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와 함께라면 노키즈존 스티커가 붙은 공간엔 방문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자신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세상은 절로 좁아지기도 한다.
출처: 차별없는가게 인스타그램 @dianalab000

‘차별없는가게’는 이러한 경험에서 문제의식을 느낀 이들이 2018년 시작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가게들은 약속을 했다. 차별하지 않겠다는 약속, 정체성을 이유로 불안을 느끼지 않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약속, 물리적·심리적 문턱을 낮추고 끝내 없애려 노력하겠다는 약속.

스투키 스튜디오가 구축한 캠페인 아이덴티티. 입구 스티커, 포스터, 모뉴먼트 등을 디자인했다. 출처: 스투키 스튜디오 인스타그램 @stuckyistudio

프로젝트를 주도한 아티스트 콜렉티브 ‘다이애나랩’은 “차별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차별하지 않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한 셈. 누구나 마음 놓고 머무르는 ‘순간’을 늘려가고 있는 다이애나랩을 인터뷰했다.

1.

친구들과 다 같이 갈 수 있는 가게 찾기

다이애나랩은 개인 작업을 하는 여러 사람이 모여 만든 집단이라고요. 다이애나랩을 소개해 주세요.

다이애나랩을 소개할 때 흔히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 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그룹입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뭘 하는 사람들이라는 건지 참 알쏭달쏭하죠. 우리는 아티스트 콜렉티브(collective)입니다.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텍스타일, 사진, 영상, 디자인, 예술기획 등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었어요. 개인 작업이 아니라 마이너리티, 공공성과 같은 주제와 연관된 공동 작업을 할 때 ‘다이애나랩’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요.

차별없는가게 지도 일부(22.8.29 기준)

최근 몇 년 동안은 109(김지영), 신원정, 유선 이렇게 세 명이 기획해 오고 있지만, 셋이 아니라 주변의 훨씬 더 많은 친구들과 항상 함께 작업을 해요. 모두 다재다능하고, 가난하고, 섬세한 감각을 가졌다는 것이 특징이랄까요. 우린 무언가를 다이애나랩의 이름으로 만들 때 항상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같은 것을 신경 써요. 어떻게 하면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가볍게 만들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상황을 가능한 한 적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가 만드는 공간에 도저히 올 수 없고, 우리가 만드는 작품에 가 닿을 수 없는 이들은 누구일까? 왜 그럴까? 어떤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갈라놓을까? 그런 생각들을 오래오래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콜렉티브이기 때문에 누구 한 명이 모두를 대표하는 것을 가능한 한 지양합니다. 가능하면 공식적인 자리에는 반드시 두 명 이상이 나가서 이야기하고요. 함께 만든 프로젝트가 어느 한 명의 프로필이나 성과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콜렉티브라는 형식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콜렉티브보다는 개인이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요.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 모바일 화면. 출처: 스투키 스튜디오 인스타그램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어떤 계기로 이러한 프로젝트를 떠올렸나요?

우리는 ‘사회적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주변인이기도 해요. 우리 대부분은 중증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오래 예술 교육을 해왔어요. 일부는 LGBTQ+에 속하기도 하고, 일부는 비건 채식을 하기도 하고, 일부는 동물과 함께 이동하는 경우가 잦기도 하고요. 또 주변에 다양한 소수성을 가진 친구들이 많고…. 이런 우리가 다 같이 갈 수 있는 가게를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죠. 그래도 주변에 진보적인 장애인 운동을 하는 이들이 많으니까,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게를 찾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어차피 주변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가게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단골로 같은 곳에 자주 가게 되기도 하고요.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가게 지도 등을 보고 찾아가기도 하죠.

 

그런데 휠체어 이용자를 환영하기로 소문난 식당에 발달장애가 있는 친구와 함께 간 날이 있어요. 그날 친구가 일어나서 탁자를 쾅 치는 정도의 어려운 행동을 했어요. 그랬더니 휠체어 손님에게는 그토록 상냥했던 사장님이 당장 나가달라고 하더군요. 주변 손님들이 위험하다면서요. 활동 지원을 하는 사람도 곁에 있었고, 비장애인 친구들이 몇 명 동석하고 있었는데도 밥을 먹지 못하고 쫓겨났어요. 발달장애인이 가게에서 쫓겨나는 사례는 이례적일 수 있지만, 크로스드레서이거나 아이와 동반한 사람이거나, 뭔가 조금 특이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게에서 눈총을 받거나 예약이 다 찼다며 입장을 거절당하는 경우는 꽤 많아요. 가게에 들어가더라도 주변의 시선을 견디며 빠르게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고 자리를 떠나야 하는 경우도 많고요.

 

2018년에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바랐던 것은 소박했어요. 최소한 쫓겨나지는 않을 수 있는, 최소한 물리적으로 함께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지역 가게의 리스트가 필요하다!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지도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없더라고요. 국내에도 없고 해외에도 없고…. 그래서 우리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었을 듯합니다.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발전해나간 과정을 들려주세요.

‘접근성이 확보된 가게’라고 했을 때, ‘접근성’을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 가 중요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게 흔히 ‘배리어프리’라고 불리는 물리적인 접근성만은 아니었거든요. 누군가에게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문턱이 어디에나 있는 상태, 그런 ‘보이지 않는 문턱’을 어떻게 인지할 것인지가 중요했죠. 예를 들어 우리에게 ‘물리적인 접근성’이라는 말은 휠체어나 유아차가 출입할 수 없도록 하는 문턱만을 의미하지는 않거든요.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점자나 음성이 없다는 사실이 문턱이 되죠. 농인에게는 수어로 소통할 수 없다는 것, 문자 통역이 없다는 것이 문턱이 되고요. 노키즈존처럼 아예 물리적인 접근성 자체를 막아버리는 경우도 있죠.

이 모든 물리적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것이 보장된다고 다른 차별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죠. 물리적인 접근성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조건 같은 것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 편안한 분위기나 공기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차별이 덜 일어날 조건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오래 했어요. 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우리가 생각하는 ‘차별없는가게’의 조건들을 연구하고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야 가게들을 섭외하고 접근성별로 분류해서 맵핑할 수 있으니까요.

공간학교WWA 홈페이지에서는 한눈에 접근성 요소를 확인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제공한다. 출처: wwa.school/checklist

2.

차별없는가게가 정의하는 차별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에서는 ‘차별’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어요?

차별의 순간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를 수 있고, 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서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그런 차별의 경험 말예요. ‘내가 저 사람들을 차별하고 말 것이다!’ ‘저런 사람들은 차별받아 마땅하다!’라는 신념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저지르는 차별도 있지만, 정말로 미세하게 주변을 떠다니다 어느 순간에 확 누군가에게는 가 꽂히는 그런 차별도 있죠. 우리는 두 차별 모두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계속 생각했어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상화예요. 저 사람들은 OO이기 때문에 이러이러할 것이다, 라는 생각. 아주 위험하죠.

출처: 차별없는가게 홈페이지

예를 들어 가게에 나이가 어린 사람이 성인과 함께 방문했을 때, 아니면 장애(특히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 비장애인과 함께 방문했을 때, 주문을 받는 가게 스태프들은 보통 성인/비장애인에게 말을 걸어요. 당사자에게 직접 “어떤 메뉴로 드릴까요?”라고 묻지 않고요. 저 사람은 장애가 있으니까, 어린이니까, 여성이니까, 이상한 옷을 입었으니까, 등의 이유로 말이 통하지 않거나 의사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할 정도로 미성숙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동행한 비장애인/성인/남성이 그들의 의사를 대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일이 차별없는가게에서는 가능하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어요. 생물학적 여성인 우리가 남성으로 보이는 일행과 함께 식당에 갔을 때 직원이 “옆에 분은 뭐가 드시고 싶으시대요?”라고 남성에게만 말을 걸면 얼마나 기분이 좋지 않겠어요. 불과 백여 년 전엔 그런 일이 실제로 흔하게 일어났어요. 또 그 대상이 ‘불쌍하니까 잘해주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요. 손님이 장애인이니까 밥값을 받지 않겠다는 경우, 우리는 그런 상황도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스투키 스튜디오가 구축한 캠페인 아이덴티티 일부. 출처: 스투키 스튜디오 인스타그램

차별없는가게의 기준을 어떻게 나눴나요? 이 기준을 정하기 위해 많은 논의가 오갔을 텐데요.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는 정말 많은 사람이 함께 만들어 왔어요.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었고, 그것이 ‘차별없는가게의 기준’에 계속해서 반영되는 형태였어요. 이를테면 디자인을 맡은 스투키 스튜디오가 “이건 아닌 것 같다” “이게 더 좋다”라고 기준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을 바로 적용하는 형식으로요.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담당한 건 절대로 아니었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두 신뢰할 만한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관련 활동을 오래 해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무엇보다 모두 페미니즘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든 기준이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계속 추가되고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스투키 스튜디오가 구축한 캠페인 아이덴티티 일부. 출처: 스투키 스튜디오 인스타그램

현재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가게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어떤 업종에 있는 가게들이 함께하는지, 어떤 가게들이 더 함께했으면 하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업종은 운동센터, 병원, 약국, 카페, 식당, 식료품점 등 다양해요. 그렇지만 아직 많이 모자라죠. 핸드폰 가게와 미용실을 꼭 넣고 싶었는데 아직 성공하지 못했어요. 코로나19 이후 폐업하게 된 가게도 많아서 참여 가게 개수가 조금 줄어들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언젠가 개업한다면 꼭 차별없는가게로 하고 싶어요”라든지, “다음번에 가게를 옮기게 된다면 꼭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옮길게요”라고 말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미래에 생길 차별없는가게들을 상상하면 언젠가 좀 더 다양한 가게들이 지도에 그려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출처: 공간학교WWA 홈페이지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어떤 기준이나 검토 과정을 충족하고 거쳐야 해요?

우리가 차별없는가게를 검증하거나 인증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차별’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는 굉장히 첨예한 문제이니까요. ‘차별 없음’을 비건/논비건 식품처럼 딱 떨어지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차별을 저지르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늘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 역시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차별 발언을 할 때가 있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가게라면, 어느 정도 ‘차별없는가게’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나 리프트가 없으면서 계단이 가파른 이 층 이상의 건물일 경우, 물리적으로 휠체어 이용자가 가게 공간에 입장하지 못하는데 그곳을 ‘차별없는가게’라 부를 수는 없겠죠. 간혹 “다른 조건은 다 되는데 휠체어만 못 들어간다, 차별없는가게 지도에 올려 달라”라고 말씀하시는 가게 점주분들도 계세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지도에는 올려드리지 못하고 있어요.

차별없는가게 지도에서 가게 이름을 누르면 관련 정보가 구체적으로 나온다. 출처: 차별없는가게 홈페이지

물리적인 부분 이외에는 차별하지 않겠다고 가게가 약속하는 내용이 있는데요. 간혹 어떤 약속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하는 가게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휠체어 이용자는 괜찮지만 발달장애인은 좀 그렇다, 장애인은 괜찮은데 LGBTQ+는 절대로 안 된다, 다 괜찮은데 노키즈존이어야만 한다 같은…. 그런 가게들을 ‘차별없는가게’라고 부를 수는 없었어요. 그 밖에도 차별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장애인권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드리거나, 점주분들과 오래 이야기를 나누며 이러이러한 것은 차별일 수 있다고 말씀드리기도 합니다.

 

 

차별없는가게에 참여하는 가게는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사실 차별없는가게 지도에 들어간다고 가게 영업에 엄청나게 큰 영향이 생기지는 않아요. 갑자기 휠체어 수십 대가 몰려온다든지, 유아차 열 대가 한꺼번에 들어오거나 하는 일은 드물어요. 차별없는가게를 의미하는 포스터나, 입구 스티커, 조형물, 약속문을 비치한다고 해서 그걸 모든 손님이 유심히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요. 가게는 정말로 가게예요. 손님들이 와서 일상적으로 무언가를 구매하는 곳이죠. 가게가 손님에게 무언가를 강제하거나 큰 영향을 끼치기란 어려운 일이죠.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 무언가를 달라지게 한다는 것, 더군다나 인식을 바꾼다는 것은 가게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주에서 아주 먼 것처럼 보이죠.

스투키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차별없는가게 모뉴먼트. 출처: 차별없는가게 인스타그램 @dianalab000

그래서 때로 차별없는가게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어느 순간에 이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까요. 여기라면 괜찮다고, 조금 편하게 수다를 떨거나 커피를 마셔도 괜찮다고…. 그런 순간들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무언가 조금 바뀌어 있지 않을까요. 차별없는가게라는 공간은 그런 미약한 순간들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3.

우리가 나누는 불가능한 약속

웹사이트 제작은 스투키 스튜디오와 함께했습니다. 스투키 스튜디오와 협업하게 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스투키 스튜디오는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발달장애인 창작자와 오래 함께 작업을 해온 예술가들이자 활동가들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친구였어요. 그간 스투키 스튜디오가 해왔던 활동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차별없는가게 디자인을 진행해 주었기 때문에, 정말로 섬세한 작업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스투키 스튜디오는 디자인만 맡은 것이 아니라, 다른 참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기획이나 진행 전반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겸손한 분들이라 외부에는 디자인만 맡은 것처럼 말씀하시지만요.

스투키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차별없는가게’ 가이드북. 출처: 스투키 스튜디오 인스타그램 @stuckyistudio

차별없는가게 후보 가게를 방문해 보고, 섭외하는 서포터즈의 역할을 하면서 전체 기획을 다듬기도 하고, 소수자가 접근 가능한 웹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가게별 정보를 어떻게 수합할 것인지 틀을 짜기도 했죠. 문제점이 보이면 바로 지적하기도 하면서요.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관계 이상이었어요. 프로젝트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을 같이 바꾸어 나가고, 그것이 디자인에 반영되는 식이었죠. 우리는 이 모든 협업이 너무 즐겁고 감사했어요. 주변의 훌륭한 친구들과 모두 힘을 합쳐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든다는 건 놀라운 경험이에요. 그리고 2019년부터 지금까지 그런 활동이 같은 방식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도요.

스투키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차별없는가게’ 가이드북. 출처: 스투키 스튜디오 인스타그램

프로젝트 소개 글에서 “낯선 상대방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최소한의 노력, 그 가능성과 과정에 대한 불가능한 약속을 한번 해보려는 것”이라 밝혔습니다. ‘불가능한 약속’이라는 말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려는 마음을 느꼈어요. 불가능하다고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차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차별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우리는 이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마음만 있다고 해서 차별이라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외부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단 한마디도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하나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하고 정말로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져요. 어쩌면 누군가도 우리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요.

차별없는가게 약속문. 출처: 차별없는가게 홈페이지

세상을 한 번에 완전하게 바꾸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아주 잠깐의 순간, 그 정도는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계속해서 지속되는 무언가를 만들기보다, 잠깐 열렸다 닫히는 흔적이나 순간 같은 것. 우리가 공공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전시 공간을 열거나, 작품을 만들 때 순간이나 공기 같은 것을 늘 생각하는데요. 차별없는가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차별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진공 상태 같은 공간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에요. 단지 어떤 좋은 순간, 차별이 없었던 순간을 짧게나마 자주 만들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 순간들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공간이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경사가 완만한 경사로, 휠체어 이용자 출입이 편한 자동문을 설치한 차별없는가게 ‘무대륙’. 출처: 차별없는가게 인스타그램

그렇다면 그 불가능한 것을 하게 하는 의지와 힘은 어디에서 오죠?

글쎄요. 할 수 있는 걸 미약하게나마 계속해 본다는 마음이 아닐까요. 우린 무리가 되는 일은 웬만하면 하지 않아요. 크게 빵빵 터지는 일을 하려는 생각이 없죠. 단체나 조직보다는 개인이 훨씬 소중하고요. 주변 친구들 한 명 한 명이 가장 중요하죠. 그런데 문제는 우리를 포함한 주변 친구들이 모두 차별을 경험하기 쉬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일이 항상 힘들지 않고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는 게 차별없는가게 프로젝트예요.

4.

차별 없는 ‘순간들’이 늘어나길 바라며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지속 혹은 확장하려 해요? 여기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크게 크게 지도를 넓히자는 제안이 많아요. 그렇지만 차별없는가게는 프로젝트 특성상 그게 불가능해요. 포털 사이트 맵에 넣기에는 너무도 불명확한 ‘약속’들이 많죠. 정확하지 않고, 어겨지기 쉬운 정보로 큰 지도를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에요. 하나의 가게를 지도에 올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요. 가게를 계속 지켜보고, 이용하고, 가게 점주나 스텝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해요. 지도에 올린다고 끝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교류를 유지해야 하는 측면도 있죠.

차별없는가게 보틀팩토리. 출처: 차별없는가게 인스타그램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차별없는가게가 수천 개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의 조건들로는 그러기가 좀 어려워요. 우리가 #차별없는가게 라는 브랜드를 처음 만든 2019년 이후로, 이 단어가 조금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슬프게도 우리가 만든 ‘차별없는가게의 조건’과는 동떨어진 것이 많았죠. 이 층 이상 가파른 계단 위에 있는 가게에 우리 포스터를 붙여놓고 차별없는가게라고 부르는 가게도 있어요. 반려견 동반 카페를 차별없는가게라고 그냥 부르기도 하고요.

 

아직은 사람마다 스스로 생각하는 ‘차별’의 범주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껴요. #차별없는가게 로 검색하다 보면 ‘이 정도면 차별이 없다!’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우리는 최소한 우리의 기준 정도는 충족해야 그나마 ‘차별 없는’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것도 한참 모자라지만요.

차별없는가게 카페여름. 출처: 차별없는가게 인스타그램

그래서 프로젝트를 지속은 하되, 함부로 확장하지는 않아요. 할 수도 없고요. 확장하자는 제안도 대부분 거절하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가 사업화하기 좋아 보였는지 몇몇 조건들을 뺀 후 간소화한 조건들로 함께 하자는 제안도 많았어요. 우리의 기준을 몇 개만 베껴서 대충 차별없는가게로 부르는 경우도 있었고요. 차별없는가게가 수천 개가 되면 정말로 좋겠지만, 우리의 개념과 기준에 한참 미달한 가게가 ‘차별 없는’이라는 이름이 붙인 채 수천 개로 늘어나는 건 바라지 않아요.

 

대신 바라는 건, 누군가 우리가 연구한 ‘차별없는가게 가이드북’ 책이나 웹페이지 wewelcomeall.net 을 보고, 자신의 주변 가게나 공간에 이것을 하나씩 적용해 보는 거예요. 우리 지도나 프로젝트가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그냥 차별이 없는 순간들이 주변에 늘어나면 좋은 일이죠! 그러기 위해 누군가 이 기준들을 잘 들여다봐 주고, 조언해 주고, 자신의 주변 가게에서 무언가 하나라도 바뀔 수 있도록 응원해 준다면 좋겠죠.

지금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나요?

2022년과 2023년에는 제주에 차별없는가게를 설명하고 만드는 일을 할 계획입니다. 2021년 서귀포 지역에 차별없는가게 두 군데를 지도에 올리고 나서, 지역 친구들과 더 재미있는 걸 해보고 싶어졌거든요. ‘배리어 컨셔스를 위한 조각들’이라는 이름의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제주와 서울에서 열 예정이에요. 제주의 차별없는가게나 그 기준에 맞는 공간에서 전시나 퍼포먼스 등을 작은 아트 페스티벌의 형태로 열려고 해요. 지금은 제주를 돌며 차별없는가게 설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겨울에는 사회 참여를 주제로 열리는 전시에 참여해요. 차별없는가게를 주제로 한 영상과 설치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올해와 내년의 큰 계획은 이렇고, 중간중간 산발적으로 작고 재미있는 일들을 계속하려 합니다. 물론 그 후에도 차별없는가게는 느슨하지만 쭉 이어 나갈 생각이고요!

김유영 기자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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