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의 시작은 매거진이었다. 1991년, 영국의 현대 예술가를 소개하는 아트 매거진으로 출발한 프리즈는 2003년, 런던에서 처음 아트페어를 열었다. 고전이나 근대 미술이 아니라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춘 아트페어는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예술가들에게 크나큰 부와 명예를 안겨 주었다. 매년 10월 중순, 런던 리젠트파크에서 진행되는 프리즈 아트페어는 영국 정부의 지원뿐 아니라 소더비, 크리스티 등 세계적인 옥션과도 함께 움직이며 세를 확산하고 있다. 런던 이후, 프리즈 뉴욕과 프리즈 마스터스로 확대했고 2019년 2월에는 프리즈 로스앤젤레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프리즈 서울은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프리즈 페어다.
한국화랑협회를 중심으로 열리는 키아프가 올해 20주년을 맞은 가운데, 프리즈라는 국제 아트페어와 손잡았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프리즈의 대항마는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된 ‘아트 바젤’이다. 아트 바젤 역시 바젤 이후 아트바젤 마이애미, 아트바젤 홍콩으로 세를 확산한 바 있다. 아트바젤이 아시아의 첫 도시로, 서울 아닌 홍콩을 낙점했을 때 한국 미술 시장은 찬바람이 불다 못해 꽁꽁 얼어붙었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미술 작품은 모두 홍콩으로 향했고, 미술품 면세 도시라는 이점과 함께 날개를 달았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조금 다르다. K 팝, K 드라마의 흥행과 함께 K 아트 역시 세계 컬렉터의 이목이 서울로 집중되고 있다. K 아트에는 작가들의 작품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갤러리와 옥션, 컬렉터와 평론가 등 한국 미술계를 형성하는 이들의 다채로운 목소리가 모두 포함된다.
그렇다면,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프리즈 서울의 감독, 패트릭 리(Patrick Lee)의 주도하에 나흘간 열리는 이번 행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메인(main)’ 섹션에서는 프리즈 아트페어 사무국의 심사를 통과한 20여 개국 110여 개 갤러리가 엄선한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에서는 국제갤러리, 아라리오 갤러리, 갤러리 바톤, 조현 갤러리, 원앤제이, PKM 갤러리, 리안 갤러리가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세계 정상급 갤러리, 가고시안, 글래드스톤 갤러리, 마리앤굿맨 갤러리, 하우저앤워스, 레만 머핀, 타데우스 로팍, 화이트 큐브, 데이비드 즈워너 등이 총출동한다.
국제갤러리는 국내외 근현대 미술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을 폭넓게 선보이는 가운데, 이 중에서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후기작인 〈고요〉 연작 〈Tranquility 5-IV-73 #310〉(1973)이 큰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밤하늘의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푸른 점과 직사각형 흰색 띠가 특징인 이 작품은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뉴욕에서 제작된 회화 작업이다. 김환기의 대표적인 파란색으로 그려진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주요 회고전에 수차례 소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기에도 등장한 적이 있는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물, 안개, 나무 등 자연적 요소들을 캔버스 위에 폴리에스테르 섬유를 통해 몽환적으로 표현한 이기봉의 신작 〈검은거울 — 비어있음〉(2022)을 포함한 다채로운 한국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도 전시된다. 한국 전통 돗자리인 화문석 위에서 추는 조선시대 궁중 독무 춘앵무를 현대적으로 번안하여 섬세한 기하학적 패턴으로 장식된 촘촘하게 짜인 갈대 매트로 특징지어지는 강서경의 〈자리(Mat)〉 연작 〈Mat 120 x 165 #22-31〉(2021-2022)도 선보인다. 이어 문성식의 대형 장미꽃 회화 시리즈의 신작인 〈그냥 삶〉(2022)은 채 마르지 않은 유화 물감 표면을 직접 긁어내고 그리는 작가의 대표 기법을 보여준다.
아시아 미술시장에서 처음으로 출범하는 프리즈 서울인 만큼 아라리오갤러리는 아시아 정체성을 탐구하고, 그에 적합한 작가를 통해 아시아성을 구체적으로 접근할 예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2년 프리즈 서울 부스는 날리니 말라니, 수보드 굽타, 케이지 우에마츠, 코헤이 나와, 레슬리 드 차베즈, 엄태정, 김순기, 권오상, 이진주 등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인도, 필리핀, 일본, 한국, 4개국의 원로작가와 중견작가들을 조명한다.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알루미늄 식기로 이루어진 오두막 내에서 요리 퍼포먼스를 진행했던 수보드 굽타의 대표 작업 재료인 스테인리스 식기를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 기법으로 그린 대형 페인팅 작업을 소개한다. 특별히 이번 페어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뉴욕 P.S.1 개인전으로 국제적 인지도를 얻은 케이지 우에마츠의 퍼포먼스를 시각적 매체로 기록하여 형상화한 사진 작업, 2018년 루브르 박물관 전시되었던 10.4m 높이의 작품을 축소비율로 제작한 코헤이 나와의 〈쓰론〉 조각도 만날 수 있다.
고전 작품과 20세기 거장의 기념비적 작품을 선보이는 ‘프리즈 마스터스(Frieze Masters)’는 프리즈 아트페어만의 시그니처 섹션으로 이번에는 감독 네이선 클레멘츠-길레스피(Nathan Clements-Gillespie)가 디렉팅을 맡았다. 프리즈 마스터스에 참가하는 로빌란트 보에나(R+V)는 17세기부터 이탈리아 귀족들의 미술품 컬렉션을 선보여온 갤러리. 올해는 <600년에 걸친 미술사: 고딕부터 현재까지> 전을 통해 공간과 물성의 관계를 연구해 캔버스를 칼로 찢고 구멍을 뚫은 작품으로 유명한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죽음과 삶 그리고 예술의 불확실성이라는 주제로 혁신적인 작품을 해온 데미안 허스트, 사물의 본질을 시적으로 표현한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 20세기 조각의 거장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아시아에서 떠오르는 작가 10인이 단독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포커스 아시아(Focus Asia)’ 도 주목할 것. 호라이즌 미술 재단(Horizon Art Foundation)의 수석 예술감독인 크리스토퍼 Y. 류(Christopher Y. Lew)와 두산아트센터의 큐레이터이자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장혜정의 기획으로 진행된다. 서울, 뭄바이, 홍콩, 자카르타, 교토, 싱가포르 등 아시아 10개 도시 신생 갤러리에서 작가 10인의 단독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전시로 서울의 P21은 류성실(2022 에르메스상 수상)을 소개하고, 도쿄 파셀(Parcel)은 오사무 모리(Osamu Mori)의 단독 전시를 진행한다. 현재 미술 시장에서 떠오르는 신진 작가를 파악하기에 좋은 기회로 초보 컬렉터들에게 추천한다.
프리즈와 키아프 아트페어 현장에 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행사 전후로 온라인 뷰잉룸을 운영한다. 페어장에 가기 전 미리 갤러리와 작품, 작품 가격까지 확인할 수 있다. -> 프리즈 뷰잉 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