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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1

추억의 서랍을 열다, 문구 브랜드 웬아이워즈영

1940-60년대 빈티지 서적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
누구나 학창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문구가 있을 것이다. 예쁜 디자인 공책, 잉크가 진한 볼펜,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필통, 좋아하는 가수 사진이 담긴 스티커를 친구들과 공유한 경험은 그 시절만의 소소한 행복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문구는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브랜드 ‘웬아이워즈영wheniwasyoung’은 유년 시절을 되돌아보는 문구용품을 선보인다. 특히 교과서처럼 과목명이 쓰인 노트는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의 애착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어렸을 때부터 문구 ‘덕후’였고, 독일에서 지내며 본인의 디자인 철학을 확립한 웬아이워즈영의 1인 제작자 최현정 디자이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My Own Book – Textbook. ver

Interview with 웬아이워즈영

최현정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내가 어렸을 때’라는 뜻처럼,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간결하면서도 활기찬 디자인을 선보이는 문구 브랜드예요. 교과서에서 영감을 받은 노트, 빈티지 우표 모양의 스티커, 영어 공책의 직선과 점선을 활용한 메시지 카드 등 다양한 제품을 제작했어요. 어릴 때 배우는 기초 도형과 원색을 바탕으로 문구를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My Own Book – Textbook. ver

웬아이워즈영을 시작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용품과 문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리고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디자인 문구’라는 개념이 자리 잡으면서 시장도 활발해졌죠. 이러한 제품을 쓰고 모으면서 언젠가 저만의 문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한편, 회사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재직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지만 마음 한편에서 갈증을 느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독일 베를린으로 떠났죠. 좀 더 넓은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흡수한 후에 작업으로 풀어내고 싶었거든요. 독일어도 할 줄 몰랐지만 무작정 여행길에 올랐어요. 그런데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큼 뜻깊은 시간을 보냈죠. 그곳에서 받은 자극이 디자인 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베를린의 지하철역 16개를 테마로 디자인 한 베를린 지하철 엽서 시리즈 'Berlin Bahnhof Postkarten'

베를린에서 거주하는 동안 지하철역 16개를 선정하여 주요 관광지를 일러스트로 표현한 ‘베를린 지하철 엽서Berlin Bahnhof Postkarte’를 제작한 적이 있어요. 이를 통해 마우어 파크Mauer Park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 여러 번 참여했죠. 눈이나 비가 와도 새벽부터 일어나서 엽서를 판매했던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미테Mitte 지역에 있는 편집숍 ‘아모도 베를린AMODO Berlin‘에 메일을 보내서 입점하기도 했죠. 운이 좋게도 대형 서점이자 화방인 ‘모듈러Modular’에서 독점 판매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어설픈 독일어와 영어 실력이었지만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즐거웠어요. 제 엽서를 액자에 담아 베를린 여행을 추억한다고 이메일까지 보내주신 분도 계셨고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그 당시 마음가짐과 실행력을 가지고 저만의 브랜드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했죠.

베를린 슈테글리츠 지역에 위치한 헌책방 'Antiquriat Hennawack'에서 본 오래된 수학 책

‘My Own Book’ 시리즈는 교과서를 테마로 디자인한 노트예요.

제가 살았던 동네 슈테글리츠Steglitz에는 40만 권 이상의 중고서적을 보유한 헌책방 ‘Antiquriat Hennawack’가 있었어요. 수많은 북 디자인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공부라고 생각해서 자주 갔죠. 꺼내 보지 않은 섹션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 살폈어요. 손이 닿지 않는 책장 위쪽까지 보려고 사다리를 오르기도 했죠. 방문할 때마다 몇 시간 동안 구경했어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표지와 내지를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어요. 그러던 와중에 옛날 수학 교과서를 발견했어요. 교과서답지 않은 독특한 그래픽과 강렬한 서체 및 색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죠. 멋진 그래픽이 삽입된 빈티지 페이퍼백Paperback도 흥미로웠고요. 헌책방에서 접한 옛날 서적의 디자인이 My Own Book 시리즈의 초석이 되었어요.

오래된 수학 책과 빈티지 서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My Own Book - Textbook.ver

교과서뿐만 아니라 안내서 표지의 노트도 만드셨어요.

처음부터 과목명으로 제작한 건 아니었어요. 초반에는 실용서나 지침서처럼 책과 비슷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이러한 형식으로 먼저 디자인하고, 교과서 버전까지 확대했어요.

 

교과서와 안내서의 특징을 반영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우선, 페이퍼백처럼 가방에 부담 없이 넣고 다닐 수 있는 규격으로 제작했어요. 그리고 빈티지 책을 자세히 보면 표지에 특유의 재질감이 있어요. 그런 질감을 전할 수 있는 소재를 신중히 골랐죠. 내지도 빛바랜 색감을 표현하기 위해 재생지를 사용했어요. 작고 가벼운 느낌을 위해 매수와 두께, 무게까지 꼼꼼히 고려했고요. 그리고 펼침이 자유로운 반양장 제본을 선택했습니다.

My Own Book - Original ver.

1940-60년대 북 디자인을 참고하면서 두꺼운 서체와 조형적인 그래픽을 중심으로 작업했어요. 그리고 옛날 서적의 특징 중 하나가 표지 하단에 ‘Written by’ 문구와 함께 저자의 이름을 제목만큼 크게 표시해요. 이러한 요소를 살려 노트 하단에도 ‘Written by’를 넣고, 그 옆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공백을 두었어요. ‘나만의 책’이라는 My Own Book 시리즈의 취지에 맞춰 사용자가 책을 집필하는 듯한 재미를 전하고 싶었죠.

My Own Book - New ver.

그리고 과목이나 안내서 제목을 정하기 전에 표지를 디자인했어요. 셀 수 없이 많은 그래픽을 제작하고 제목에 맞게 후보를 골랐죠. 제목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면 디자인이 밋밋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무엇보다도 헌책방, 도서관, 벼룩시장 등 빈티지 서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녔어요. 이베이나 독일 현지 중고서점 사이트처럼 인터넷에서도 많이 살펴봤고요.

새로움을 의미하는 단어 'NEW'의 독일어 표기 'NEU'로 풀어낸 다이어리

제품에 독일어를 사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성인이 돼서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게 낯설지만 흥미로웠어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단어를 익히고 문장을 말하는 과정을 거치니까요. 부족한 실력이지만 베를린에서 지냈던 날을 떠올리며 쉽고 간결한 독일어를 제품에 종종 활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국내 문구 제품이 별로 없더라고요. 웬아이워즈영의 차별성을 위해 시도해보기로 했죠.

Daily, Weekly, Monthly 단위로 기록할 수 있는 가벼운 형식의 플래너
'Creative Drawing Exercise'라는 주제로 풀어낸 드로잉북 'C.D.E Drawing book'

제품을 제작하실 때 특별히 신경 쓰시는 부분, 또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기획과 디자인, 제작 등 모든 과정이 어느 하나 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요, 이렇게 기본적인 제작 단계를 꾸준히 공부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인지, 곁에 두고 싶은 디자인인지를 특별히 신경 쓰고 있어요.

 

 

혼자서 제작하실 경우 많은 작업을 거쳐야 할 텐데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기획부터 자료 조사, 디자인, 자체 검수, 제작, 감리, 촬영, 홍보, 유통까지 3개월 정도 소요돼요. 디자인을 빠르게 끝내도 출시를 몇 주 동안 고민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소재나 두께, 매수, 제작 방식의 조합을 제본 상의 문제로 변경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한 번에 몇천 권을 인쇄하기 때문에 실수가 있으면 안 돼요. 그리고 제품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재촬영을 하는 등 다양한 변수가 발생해요. 혼자서 모든 걸 선택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확신이 없으면 멈추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까지 고려해서 작업을 일찍 시작해요. 스스로 정한 일정에 맞추려고 최선을 다하고요.

연희동 편지가게 '글월'에서 진행했던 'STAMP TO STAMP' 시즌 1

브랜드를 운영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온라인이나 입점된 상점에서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제가 직접 소비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2019년에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영 디자이너로 선정되어 참여한 적이 있어요. 방문하신 분들께서 ‘평소에도 제품을 잘 사용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문구 브랜드다’라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리고 웬아이워즈영을 태그한 SNS 게시물도 기억에 남아요. 저는 제작자이기 때문에 주로 사용하지 않은 노트를 볼 때가 많아요. 그런데 SNS 포스트에는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있거나 열심히 사용해서 너덜너덜해진 제품을 접하죠. 글과 그림이 가득 담겨있는 노트를 볼 때마다 뿌듯하답니다.

 

 

웬아이워즈영이 어떤 의미로 남았으면 하나요?

오랫동안 꾸준히 작업하는 브랜드가 되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 역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신제품을 출시해요. 대단하면서도 긍정적인 자극을 받죠. 웬아이워즈영도 제품 종류를 차근차근 늘려서 ‘웬아이워즈영에서 이런 물건도 만드나? 만약 있으면 한 번 사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쉽고 편안한 브랜드로 자리 잡고 싶어요.

장영주 객원 기자

자료 제공  웬아이워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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