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구 작가에게 ‘몸’은 재현의 대상이자, 소재이며, 또한 하나의 작품 매체이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몸에 대한 탐구의 시작은 초기작인 〈The Objectuals〉시리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유학 시절,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자신의 손이 타인종과 비교해 유독 작게 느껴진 순간에서 출발한 작품 ‘Altering Features with H-WR’(2007)은 인종에 따른 신체적 차이를 넘어 자신이 원하는 크기와 형태로 변형하고자 하는 일종의 장치를 고안했다. 광학필름, 렌즈, 헬멧 등을 부착해 눈과 입 등 얼굴의 특정 부위를 비정상적으로 키워 기괴한 모습을 연출한 작가는 서구화된 미의 기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변형과 왜곡 그리고 과장을 통해 새로운 몸의 구조를 인식하기를 시도한다. 나아가 그는 포스트 휴먼이라는 담론을 독자적 조형 언어로 표현한다.


친숙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ANIMATUS〉 시리즈는 애니메이션의 라틴어 어원으로 ‘생명, 움직임을 불어넣다’라는 뜻을 지닌다. 과장과 왜곡을 통해 인체의 변형을 시도한 작가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지닌 신체적 특징을 발견. 해부학적 연구와 상상력을 더해 동적인 신체 구조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마치 화석이 된 캐릭터가 전시장 곳곳을 활보할 것 같은 느낌. 세밀하고 정교한 신체 표현력을 통해 사실적이며 역동성 넘치는 환영을 생산한다.


작가의 신체, 즉 몸에 대한 관심은 〈Eye Trace〉시리즈에서 감각의 영역으로 보다 구체화된다. ‘Fish Eye Gear'(2010), ‘Mirror Canopy'(2010), ‘Creeper'(2010)에서 그는 몸을 구성하는 감각 기관 중 ‘보는 것’을 담당하는 ‘눈’과 그 감각을 조명한다. 물고기, 사슴, 곤충 등 인간이 아닌 생물이 지닌 신체적 특징과 조건을 탐구해 그들의 시각 체계를 탐구한 작업으로 달라진 몸의 구조와 조건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고 지각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Face Trace〉 시리즈에서 작가는 자신의 얼굴을 변형해 12개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12개의 선별된 두상중에서도 그는 눈, 코, 턱, 눈썹, 입 등 관상학적 해석에 따라 부위를 선별해 자신의 얼굴과 새로이 결합했다. 의도적인 재조합 과정을 거쳐 탄생한 새로운 얼굴들은 주어진 관상과 그 해석을 거부한다. 이는 주어진 운명에 대한 거부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작업 이면에 감춰진 작가의 주체적 태도와 실험 정신이 돋보인다.

‘걷기’에서 출발한 〈MEASURE〉시리즈는 말이 바라보는 시각적 구조와 말의 신체적 구조를 재현한다. 특히 작가는 마장 마술을 재연하여 말이 지닌 물리적 구조와 움직임을 표현한다. 말의 감각을 자신의 몸에 조율하고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관객은 경쾌한 긴장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와 동시에 몸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탐구 태도도 경험할 수 있다.

그간 신체의 외부 기관을 조명한 작가는 시리즈 〈X〉에서 신체의 내부로 그 시선을 돌린다. 신체 내부에 존재하는 내장 기관이 떠오르기도 하고, 호르몬 등 화학 작용의 순간을 포착한 듯한 작업은 기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작가는 폴리우레탄 폼, 페이퍼 마쉐, 금속 재료 등을 사용해 살과 뼈 등 내부 요소의 질감을 표현했다. 사실적 재현보다는 추상적 표현 방식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해석을 요구하는 점도 인상적이다.
작가의 작업실인 ‘아니마투스 실험실(ANIMATUS LAB)’을 전시장으로 옮겨 온 이번 전시는 초기부터 신작까지 이르는 작품 뿐만 아니라 해부학, 생물학, 고고학 등 작품을 위해 수집한 작가의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와 인체 모형과 오브제까지 소개한다. 신체에 대한 작가의 오랜 탐구와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형구 작가
이형구(1969~)는 홍익대학교,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귀국 후 2004년 성곡미술관 개인전 〈The Objectuals〉를 시작으로,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전, 2006년 삼성리움미술관 <아트스펙트럼>전 등을 거치며 국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06년 이탈리아 산드레토 르 레바우뎅고 파운데이션, 2007년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인전, 2008년 스위스 바젤 자연사박물관 전시 등에 참여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국내외 다양한 미술 기관의 전시에 참여한 이형구는 한국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발행 heyPOP 편집부
자료 제공 부산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