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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1

성북예술창작터 <이상한 고리: 마르셀을 위하여> 展

디지털 미디어 시대 속에서 중심 잡기
디지털 미디어가 매개하는 가상현실이 현실과 실존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환경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앞서 기술과 협응하고 위기에 대항할 생존법을 상상하고 모색하는 중에 있다. 이러한 시대가 자아내는 서사와 감각을 시각예술의 매체 방법론을 경유해 말하고 있는 전시가 지금 열리고 있다. 성북예술창작터가 2022년 첫 기획전으로 공개한 <이상한 고리: 마르셀을 위하여(Strange loop: for Marcel)>가 그것이다. 신지원 학예연구사가 기획하고 김경태, 오종, 조호영, 박동준 작가가 참여했다. 최근 공간 리모델링을 마친 성북예술창작터의 1, 2층과 옥상 전관에서 이들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상한 고리_전시 전경(2층)
“<이상한 고리: 마르셀을 위하여>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중심을 잃지 않고 거대한 디지털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는 마치 우리의 신체 일부가 되어 손과 발, 그리고 뇌의 자리를 떠맡게 되었고, 소셜미디어 피드가 실생활을 뒤덮어, 오늘의 ‘나’는 가상 자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동하고 소비하며 사진으로 그것을 남깁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문화는 사람들 간의 관계는 물론, 우리가 미술 콘텐츠를 접하는 다양한 방식을 온라인화시켰습니다. 이번 전시는 현실과 가상세계가 서로를 반영하고 왜곡하고 다시 창조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여, 가속화된 순환과 분열 속에서 속도를 늦추고 우리 몸의 위치 감각을 다시 인식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제안합니다.” – 성북예술창작터 학예연구사 신지원 
이상한 고리: 무한 참조 과정을 통한 주체의 인식

 

이상한 고리_전시 전경(1층)
이상한 고리_전시 전경(김경태_오종)

 

소셜네트워크 등 인터넷 가상 공간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디지털 자아는 실제 세계의 현실 자아를 참조하고 분리하는 과정을 계속하며 통합과 통찰적 인식을 촉구한다. 전시는 시대가 갖고 있는 이 같은 현상의 불안과 책무를 환기하고, 다중화된 자아가 어떻게 균형 있는 공존법을 찾아갈 수 있을지를 질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 제목 ‘이상한 고리’는 인지과학자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의 개념에서 착안된 것인데, 처음으로 돌아오는 끝, 거짓을 담고 있는 참, 뒤엉킨 계층 질서라는 의미를 비유한다고 한다. 이는 무한한 자기참조(self-reference) 루프를 통해 진정한 자기 인식에 이르는 과정을 뜻하면서 이번 전시 전반의 주제를 표상하는 어휘로 쓰이고 있다.

 
이상한 고리_전시 포스터

 

한편, 전시 제목 ‘마르셀’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무화과를 먹고 정체성이 변화되는 사람 ‘마르셀’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동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크리스 반 알스버그 저)에서 차용했다. 현실과 가상을 오가면서 자아의 위치 감각을 찾는 전시의 주제와 환상적인 분위기에 어울린다. 뒤집힌 거울과 같은 두 자아와 세계는 그래픽 디자이너 김성구가 디자인한 전시 포스터에도 반영되어 있다.

 
낯설게 보기: 사물, 공간, 관계, 가상현실

 

김경태, 표면으로 공전하기 - 원기둥 1, 2022,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50 × 225 cm
김경태, Reference Point 2, 2019,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0 × 120 cm

 

<이상한 고리: 마르셀을 위하여>에 참여한 네 명의 작가들은 각각 사물(김경태), 공간(오종), 관계(조호영), 가상현실(박동준)에 집중한 작업을 공개했다. 사물 또는 공간의 구조를 관찰하고 인지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며, 사진을 통해 재현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경험과 형식을 탐구해온 김경태(b. 1983)는 광학적 원근감을 극복하고 소실점 없는 평행 투시를 실현한 〈Scale Cube〉시리즈, 광물에 점진적으로 접근하며 생긴 미세한 굴절과 빛의 변화를 하나의 이미지로 담은 〈Qtz-Tur-Ep-1608〉등을 이번 전시에 선보였다. 그는 사물의 모든 부분에 초점을 부여하는 ‘포커스 스태킹’기법으로 대상의 실체를 끈질기게 좇는다. 신작 <표면으로 공전하기-원기둥1>은 물체에 중심을 두고 표면을 따라 회전하면서 촬영한 후 평면으로 펼친 파노라마 이미지로 생경한 느낌을 더한다.

 
오종, Folding Drawing(double) #1, 2022, 나무판, 페인트, 철사, 38.4 × 24.4 × 10.4 cm
오종, Room Drawing (afterimage) #1, 2022, 돌, 실, 낚싯줄, 체인, 페인트, 쇠막대, 가변크기

 

오종(b. 1981)은 공간의 건축적 환경과 상황에 반응한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을 해온 작가다. 실과 낚싯줄, 나무막대와 같은 선적인 매체와 아크릴판과 추 등의 면과 점을 이루는 재료들은 기존 공간에 존재하는 모서리, 창문, 벽과 같은 건축 요소들에 반응하며 주어진 공간에 섬세하게 개입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실, 낚싯줄, 체인, 쇠막대와 같은 최소한의 재료만으로 세심하게 공간에 개입하여 생생한 긴장감과 균형, 떨림을 조성했다. ‘접힘’이라는 키워드로 그림자, 각도, 움직임, 시퀀스 등의 요소를 통해 공간을 열고 닫는 〈Folding Drawing〉시리즈는 작지만 깊은 차원의 공간을 계속해서 들여다보게 한다.

 

전시가 열리는 성북동 인근에서 수집한 돌을 활용한 〈Room Drawing (afterimage) #1〉에서는 전시실 내부의 건축 구조나 동일한 공간에 설치된 김경태 작가의 작품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면서 전시에서 다루는 두 차원 사이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나타낸다. 관객은 작가가 새롭게 구현한 공간에서 예기치 않게 대상과 마주하고, 공간의 형태와 거리, 깊이, 그리고 균형 감각을 섬세하게 감지하며 자신의 위치와 방향을 재확인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장 마지막까지 가상화되지 않고 실재의 여분으로 남을 우리의 신체 감각에 집중할 수 있는 계기를 의도했습니다. 내가 보는 사물과 내가 속해있는 공간, 그리고 나와 관계 맺는 대상이나 사람들 사이에서의 위치감각을 재인식하도록 유도하는 작품들을 관람객이 충분히 응시하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디지털 자아와 균형을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저마다의 방식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성북예술창작터 학예연구사 신지원

 

조호영, Stand Still (Oda), 2022, 컨베이어장치, 35cm공, 50 × 200 × 100 cm (기술협력 ARSIO)
10 조호영, 행-온!, 2022, 실리콘, 35 × 90cm

 

조호영(b.1988)은 본래 단단한 물성을 유연한 소재로 만들어 일상적인 행위를 낯설게 경험하도록 제안한 <행-온!>, 위로 되감기는 컨베이어 벨트와 경사면을 따라 아래로 굴러가는 공의 운동량이 정확히 같아지는 지점에서 서로의 운동에너지를 상쇄하면서 제자리를 유지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Stand Still (Oda)〉, 그리고 자신의 무게 혹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으로 시시각각 변형되는 바닥의 움직임을 통해 역으로 물체에 내재된 긴장과 평형 상태를 드러내는 〈A Patch of Ground〉등 설치와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는 물리적 힘의 균형과 에너지 변화를 포착해 의식화했고, 관람객의 신체와 동작을 작품 안에 직접 참여시키면서 일상을 낯설게 볼 수 있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상한 고리_전시 견경(박동준)
박동준, 성북예술창작터 노멀맵, 2022, 3D 스캔, 웹 V.R., 가변크기

 

사진과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을 응용한 작업을 꾸준히 선보인 작가이자, VR전시 공간이자 아카이브 프로젝트인 ‘Archiving Babel(아카이빙 바벨)의 운영자이기도 한 박동준(b.1988)은 전시공간의 3D 렌더링 이미지와 설치, VR 작업을 통해 가상의 화이트 큐브 공간과 실제 전시장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다. 공간의 XYZ 좌표 값을 RGB 색으로 치환하여 텍스처 이미지을 추출하는 ‘노멀맵’을 활용해 제작한 <성북예술창작터노멀맵>은 실제 전시실의 시각 정보를 다양한 데이터로 옮긴 변환의 과정을 보여준다.

〈Sp(here)#1, #2#3〉는 3D 프린터를 이용한 오브제 설치 작업인데,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원구형의 디지털 이미지 정보를 다시 실물의 원구 형태 물성으로 변환한 것이다. 관객은 전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제 전시와 이를 반영한 VR 전시, 그리고 그것을 재응용한 작품을 번갈아 감상하면서 각각의 관람 방식에 대한 감각의 차이를 느껴볼 수 있다.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은 사진의 기록성과 재현성의 확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진은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매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으로 낮추며 프레임 안으로 잘라내는 제한적인 매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록과 재현의 영역이 좀 더 확장될 수 있는 매체로써 가상현실을 다루기 시작하였고, 더 나아가 가상현실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는 매체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VR의 경우 분명 이전과는 다르게 많은 곳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고, 또 예전에 비해 거부감도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1인 매체에 시간이 제한된 타임라인과 함께 멀미와 같은 여러 안전 문제들도 안고 있어 다른 매체만큼 손쉽게 관람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미술관에서 적합한 형태로 VR을 전시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이와 함께 미술관을 벗어나 VR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형태가 만들어진다면 VR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매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박동준 작가
 

3월 22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오는 6월 25일 까지 계속된다. 3차원 촬영을 통해 전시장을 가상 공간으로 옮겨놓은 온라인 관람 사이트는 성북예술창작터 홈페이지에 게시된 링크를 통해 입장할 수 있다.

한편, 전시를 개최하는 성북예술창작터는 성북구립미술관의 첫 번째 분관으로, 2013년 개관 이래 시각예술 분야의 창작자를 지원·양성하며 지역 기반의 열린 미술 문화 활성화를 목표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다. 공간과 전시 정보 등 자세한 내용은 성북구립미술관성북예술창작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정은 기자

자료 제공 성북예술창작터, 김경태

프로젝트
<이상한 고리: 마르셀을 위하여>
장소
성북예술창작터 전관
주소
서울 성북구 성북로 23
일자
2022.03.22 - 2022.06.25
시간
화요일 - 토요일 10:00 – 18:00,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연장 운영 10:00 – 20:00 (월요일, 일요일, 법정 공휴일 휴관)
참여작가
김경태, 박동준, 오종, 조호영
링크
홈페이지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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