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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1

미술과 여성, 그 빛나는 이름들

롯데갤러리 대규모 전시 <리조이스>
롯데갤러리는 올해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리조이스(Rejoice)>를 공동 테마로 기획한 대규모 여성작가 전시를 열었다. 리조이스는 여성의 자존감, 꿈과 도전을 응원한다는 의미를 담은 롯데백화점의 사회공헌 캠페인에서 따왔다. 이번 <리조이스> 전은 전국 5개 롯데백화점 지점(본점, 잠실점, 동탄점, 인천터미널점, 광주점)의 갤러리와 아트월을 포함해 총 8개의 연계 테마 전시로 진행된다. 각각의 전시는 여성의 꿈, 지성, 감성, 감각, 즐거움, 도전, 인내, 행복 등 ‘리조이스’에 대한 8가지 해석을 보여주도록 기획되었다.

 

1908년 3월 8일 뉴욕 루트커스 광장에 모인 미국의 1만 5천여 명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빵은 남성 대비 저임금이었던 여성들의 근로 환경 개선을 뜻하며, 장미는 참정권 보장에 대한 요구였다. 남성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정치에 참여하려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이후 3월 8일을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하게 하였다.

 

 

〈REJOICE: 추상의 표정

롯데백화점 잠실점 에비뉴엘 6F 아트홀, 4월 24일까지

 

박정혜 〈Still There〉, 117 x 91cm, Acrylic on linen(mounted on wood panel), 2019

 

추상화의 시작이라 부르는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에서부터,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로 대표되는 추상 표현주의를 거쳐, 지금 한국에서 화제가 끊이지 않는 단색화에 이르기까지 추상은 마치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처럼 생각되어 온 측면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형이상학의 세계는 지성적이고 논리적인 남성적 영역이라고 여겨졌기 때문. 그러나 잭슨 폴록의 아내였던 리 크레이스너를 비롯하여, 조안 미첼, 에바 헤세, 아그네스 마틴, 줄리 머레튜에 이르기까지 여성 작가들 중에도 꾸준히 추상의 세계를 추구해 온 작가들이 점차 세계 미술계의 조명을 받으며 재평가 받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윤종주 〈Cherish the time-line〉, 56 x 72cm(x4), ink,acrylic, medium on canvas, 2022
제여란 〈Usquam Nusquam〉, 145.5 x 112.1cm, Oil on canvas, 2020

 

롯데갤러리는 이러한 세계적인 미술계의 흐름과 발을 맞춰, 추상을 추구하며 고유의 존재감을 구축해 온 여성 작가 5인(박정혜, 안정숙, 윤종주, 제여란, 홍승혜)을 선별해 전시하고 있다. <추상의 표정>전은 오랫동안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추상의 세계를 탐구하는 여성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조명하는 자리이다.

 

 

REJOICE: Bulletproof!

롯데백화점 본점 본관 4F 아트월, 4월 25일까지

 

니키 드 생팔 〈나나 파워〉, 75 x 56cm, 1970
니키 드 생팔 〈나나 파워〉, 75 x 56cm, 1970

 

니키 드 생팔(1939-2002)은 프랑스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작가로, 우울과 무력을 예술로 이겨낸 용기와 도전의 예술가이다. 작가는 겉으로는 화목한 가정이었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적 학대로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힘들던 시기, 그녀를 구원한 것은 예술이었다. 

 

<나나 파워>는 17점의 판화로 이루어진 한 세트의 작품이다. 작품 속 임신한 거대한 여성은 친구의 임신을 축하하며 그린 그림으로, 나나 시리즈의 출발점이다. 총으로 물감 주머니를 쏘아 터트리며 분노를 표출하던 작업으로부터 밝고 화사한 작품으로 스타일을 확장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나나(nana)’는 프랑스어로 ‘여자’, ‘계집’ 등을 뜻하는 말로 여성 본연의 원초적인 속성을 주목하는 작가의 메인 모티프가 된다. ‘나나 파워’는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모든 총알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막아내는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REJOICE: Still Life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B2-4F 아트월, 4월 25일까지

 

정희승 〈Orb〉, 242 x 180cm, digital C type print, 2020 ©작가 및 갤러리바톤 제공(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lery Baton)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2020) 최종 후보로 선정되어 사진과 글, 음악이 긴밀하게 혼합된 설치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던 정희승 작가. 그의 작품 속 대상들은 익숙하고 평범하지만 구성 배열과 배치를 다양하게 변주하거나 모호한 배경 속에 놓여 있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을 통해 시각과 인식의 관계를 연구하는 정희승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을 만난다. 주요 작품 23점은 롯데백화점 본점 애비뉴엘 지하에서부터 4층까지 고루 배치된다. 작가의 전시 경력 중 최초로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화이트큐브형 전시실을 벗어난 셈. 특히 작가는 사춘기를 겪는 딸의 성장통을 지켜보며 결정되지 않은 채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상태에 대해, 딸만이 아니라 여성, 나아가 모든 사람이 고통을 통해 다른 세계로 변화해 나아가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한다.

 

 

REJOICE: Rising Names

롯데백화점 본점 본관 5-6F 아트월, 4월 25일까지

 

김찬송 , 91 x 91cm, oil on canvas, 2021
장수지 , 110 x 130cm, 장지에 혼합재료, 2021

〈Rising Names〉전은 미술 시장에서 핫한 러브콜을 받으며 주목받고 있는 동시대 여성 작가 5인(김찬송, 정희기, 유재연, 장수지, 정지윤)의 세계를 탐구하며 이들 작품이 머나먼 과거가 아닌 유년의 기억이나 정서적 불안을 담겨 있다는 점, 정착하지 못한 삶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작은 사이즈로 그려져 있다는 공통점을 짚어내고 있다.

 

정희기 〈Don_t be afraid_Sewing Machine〉, 2020

 

현실과 환상, 평안과 불안의 틈에서 만난 감정과 풍경을 담는 유재연, 미성숙하면서도 이상적인 모습을 한 소녀의 위화감을 그린 장수지, 삶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낯선 불안감을 표현한 김찬송은 공통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불안의 사유를 조심스레 매만진다. 한편 텍스타일과 자수 기법을 기반으로 회화, 설치, 조각,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삶의 멜랑꼴리를 천진하게 바라보는 정희기, 그리고 비정형적이고 리드미컬한 붓질을 통해 조형성의 실체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정지윤은 동시대 작가들이 지닌 표현 방식의 다채로움을 증명한다.

 

 

REJOICE: Be You!

동탄점 2F 롯데갤러리, 4월 24일까지

 

신모래 , 21 x 29.7cm, 피그먼트 프린트, 2020
이슬로, Portrait Series(Tasha Tudor), 72.7 x 60.6cm, Acrylic on canvas, 2022

 

〈Be You!〉전은 오늘날 가장 주체적이고 독창적인 삶과 예술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여성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보내는 응원이자 메시지다. 이들은 공간 디렉팅, 전시, 브랜드 컬래버레이션 등 예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활발하게 영역을 확장 중인 아티스트로서 ‘아닐 비(比), 무리 유(類)’를 쓴 한글 제목처럼 ‘남들과 유사하지 않은 나’이자 ‘무리 속에 동화되지 않는 나’의 고유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섹션으로 구분되어 작가 8인(신모래, 갑빠오, 수와, 이슬로, 정재인, 아방, 김미영, 유시영)의 독특한 시각을 담아낸다.

 

 

REJOICE: 꿈을 그리다

동탄점 2F 아트월, 4월 20일까지

 

홍인숙 , 130 x 96cm, 한지 위에 먹지로 드로잉, 채색, 종이판화, 2021
이해나 〈Summer evening〉, 91 x 72.9cm, 장지 위에 채색, 2021

 

<꿈을 그리다>는 현대미술로서의 민화를 각자의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5인의 작가가 펼치는 다채로운 꿈의 풍경이다. 한국의 전통 회화 장르인 민화가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광경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행복과 기쁨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로 기획되었다.

 

전통적이고 강렬한 색감 속에 선명한 길상을 담은 서공임의 민화, 민화나 불화 신화에 쓰이는 상징적인 모티프와 함께 일상 속 한글이 간직한 순수한 힘을 그려낸 홍인숙의 작품은 새 계절을 맞이하는 마음을 다잡아준다. 한편 섬세하고 여유로운 손유영의 고양이 모질도는 과거와 현대의 낭만을 보여주고, 꽃의 화가로 불리는 노숙자의 고혹적인 작품, 아르누보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해나의 풀빛 정원은 지친 현대인이 잠시라도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도록 자연이 주는 위안과 휴식을 전한다.

 

 

<REJOICE: 푸릇푸릇, 반짝반짝, 보송보송>

인천터미널점 5F 롯데갤러리, 4월 24일까지

 

그레이트 마이너 〈Circle to Circle〉, 가변설치, 2022
박형진 , 31.5 x 31.5cm, 축광안료 acrylic on canvas, 2022
윤진초, 〈He Bear〉 , 〈Welcome〉, 2020

 

<푸릇푸릇, 반짝반짝, 보송보송>은 작가 3인의 작품에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환희(Rejoice)’의 형용사다. 인공의 파라다이스를 만들며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레이트 마이너의 작품은 ‘푸릇푸릇’하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느껴지는 따뜻하고 밝은 그림 속에 단단한 치유의 힘을 부여한 박형진은 이번 전시에서 측광 안료를 활용하여 불이 꺼지면 보이는 이중 효과 작품으로 ‘반짝반짝’한 세계를 보여준다.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인간의 조상으로 기록되기도 하는 ‘곰’을 모티프로 한 윤진초의 ‘보송보송’한 작품에는 마치 원시미술의 흔적인 것처럼 주술적인 천진난만함이 깃들어있다. 이 세 작가의 작품은 기쁨의 체험장이 되어 푸릇, 반짝, 보송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REJOICE: 자수일상>

광주점 11F 롯데갤러리, 4월 24일까지

 

곽복희 , 70d cm, 양단에 견사, 2021
한정혜 〈Temptation 시리즈〉, 56 x 56cm, 린넨에 자수_2021

 

<자수일상>은 우리나라 자수 문화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로, 작품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기법을 널리 소개하는 것은 물론, 자수 문화의 오늘과 내일을 만들어나가는 여성 예술가 11인(곽복희, 김민혜, 노현민, 박연신, 신승혜, 이민지, 이주희, 정순옥, 최향정, 한정혜, 한승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장이다.

 

대부분의 공예 예술이 그러하듯 자수의 무수한 역사에 비해 자수를 만든 작가의 이름은 뚜렷이 각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자수가 미술과 디자인의 소재가 되고, 가정생활용품이 아닌 예술작품으로써 숨겨온 가치를 조명 받게 되면서 오늘날 현대미술로도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본 전시는 누군가의 소망을 위해 오랜 시간 정성을 깃들인 수많은 예술가들의 열정을 되돌아보고 인내와 끈기를 배울 수 있는 자리이다.

 

 

Interview with 김영애 롯데백화점 아트콘텐츠실 실장

문화 예술 관련 콘텐츠에 기반한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 아트페어 등을 진행한 김영애 실장은 <리조이스> 전시의 총괄 기획을 맡았다.
 
안정숙 〈Tension 2020 A-1〉, oil on canvas, 2020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롯데에서 진행하고 있는 ‘리조이스’ 캠페인에서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9월 롯데백화점 아트콘텐츠실로 처음 합류할 당시, 명함에 표기된 ‘리조이스’를 보고 이를 궁금하게 여겼어요. 이후 사내 곳곳에서 ‘리조이스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이에 영감을 받았고, 마침 전시 일정도 ‘세계 여성의 날’과 맞아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의미를 담아 기획하였습니다.

* 롯데쇼핑의 대표적인 사회 공헌 활동으로 여성의 자존감, 꿈과 도전을 응원하는 캠페인

 

 

이번 전시는 여성을 주제로 여성작가의 작품을 대거 선보인 전시입니다. 기획에 있어서 유념한 점이 있다면요?

‘여성’을 테마로 하는 전시에 있어서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가에 대한 질문은 준비 과정에서 내내 풀기 어려운 숙제와도 같았는데요. 단순히 여성 작가의 작품을 모아두는 것이 여성 전시는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죠. 이에 여성을 응원하는 방식이 1차원적이거나 진부하지 않도록 전시별 주제를 다각적으로 기획해 접근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유재연 〈Nightscape 1〉, 65 x 49cm, 자작나무 판넬 위 유화, 2021

 

각 지점의 롯데갤러리 전체가 함께 전시를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전시가 갤러리뿐 아니라 쇼핑공간 내 아트월에서도 진행되는 점도 특색있게 느껴집니다.

오늘날은 미술관, 백화점, 갤러리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어요. 백화점은 앞으로 점점 더 미술 시장과 컬렉터들에게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처음으로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전시를 진행하신 정희승 작가님은 사물의 숨겨진 면을 드러내는 당신의 작품처럼 지나가다 마주치는 아트월 전시의 느낌이 색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이처럼 작가분들께서 이번 전시의 취지를 함께 공감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정지윤 〈The people who occupy this place〉, 60.6 x 60.6cm, oil on canvas, 2022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 고조와 함께 개설한 ‘아트비즈실’을, 아트를 통한 브랜딩으로 영역을 확장하고자 ‘아트콘텐츠실’로 개편하였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앞으로의 아트콘텐츠실의 행보도 기대가 됩니다.

롯데백화점 롯데갤러리는 ‘아트’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며, 높게만 느껴졌던 미술 시장의 문턱을 재정의하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특히 올해엔 ‘롯데 아트페어’를 개최하며 아트콘텐츠실의 전문성과 파급력을 증명할 예정이에요. 작품의 판매도 좋지만, 전시와 아트페어를 포함한 다양한 기회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MZ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컬렉터를 위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주리아 기자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롯데백화점 롯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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