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9

30년간의 소방호스에 그려진 대형 태극기

서로가 서로를 구하다! 소방관을 위한 전시
지난 4일, 봄이 성큼 다가온 기쁨도 잠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에서 대형 산불이 나 삼림이 타들어 가고 주민들이 큰 피해를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각종 구호 물품과 응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며칠간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이 있다. 모두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생명의 짐을 지는 소방관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할 수 있는 뜻깊은 전시가 때마침 열렸다.

 

홍대 KT&G 상상마당에 들어선 119REO의 ‘Rescue Each Other’는 3.1절을 기점으로 시작되어 약 한 달간 진행되는 팝업 전시다. 119REO는 소방관의 권리 보장을 위해 시작된 방화복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REO’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브랜드의 슬로건인 ‘서로가 서로를 구한다(Rescue Each Other)’의 줄임말이다. 소방관이 우리의 생명을 구하듯, 우리도 소방관의 일과 권리에 보탬이 되자는 뜻이 담겨있다.

 

 

2층과 3층에서 이루어지는 전시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3층의 소방호스 태극기다. 3.1절을 기념하기 위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실제 사용된 소방호스 위에 태극무늬와 건곤감리를 그려 넣었다. 3.1절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민족의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상기하는 동시에, 생명을 구함으로써 평화를 부르는 소방관의 업적을 재조명한다.

 

 

그 옆에는 119REO가 소방관의 권리를 위해 실천하는 ESG 활동을 소개한다. 119REO는 버려진 방화복을 재활용하여 일상에서도 소방관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 방화복은 3년간 역할을 다한 후 버려지는데, 그 개수만 해도 1년 동안 약 1만 벌, 무게로는 34톤의 양에 이른다. 불길에 여러 차례 휩싸이며 닳아 해진 소방복은 더이상 현장에서 사용할 수 없지만 여전히 튼튼한 재질을 자랑해, 그 원단을 활용해 업사이클링해 일상용품을 만드는 것이 119REO의 역할이다.

 

 

또한 119REO는 지역의 자활 근로자들과 협력해 지역 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질병에 걸린 소방관들의 복지와 처우에도 관심을 가지며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을 한다. 오랜 세월 화재 현장을 누벼 온 소방관들은 유독 물질 등으로 인한 질병을 얻기 쉽다. 이러한 문제는 119REO가 출범하게 되었던 시발점이기도 하며, 지금도 여전히 영업이익의 50%를 암 투병 소방관에게 전달하고 현재까지 13명의 소방관의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외에도 119REO는 2021년도부터 <일로봬유>라는 콘텐츠로 다양한 소방관들을 만나 뵈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재생되는 영상을 통해 실제 근무 중인 소방관의 경험담과 현장 이야기들을 시청할 수 있다.

 

 

계단 입구에 설치된 ‘방화복 액자’는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할 때 실제로 입은 방화복을 재료로 만든 아트워크다. 방화복을 작은 조각들로 분해하고 기능에 따라 분류해 짜임새 있게 엮어 낸 작품으로, 원단을 작은 크기로 조각내는 이유는 생명의 가치가 담긴 원단을 자투리까지도 잘 활용하기 위함이라고 119REO는 설명한다. 방화복에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장비를 보관하는 기능, 빛을 반사하여 안전을 확보하고 위치를 알리는 기능, 소방관을 화마로부터 보호하는 기능 등 다양한 기능이 있으며, 기능에 따라 짜깁기된 방화복 액자 아트워크는 소방관이 재난 현장에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과 희생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2층으로 내려오면 119REO의 더 많은 제품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벽에 걸린 한 편의 시가 눈에 띄는데 이는 <소방관의 기도>라는 영문 시다. 1958년 미국의 소방관 A.W. Smokey Linn이 쓴 시로, 현재까지도 많은 소방관에게 가슴을 울리는 신조가 되고 있다. 옆에는 방화복의 자투리 조각으로 엮어 만든 커튼이 걸려 있는데, 자세히 보면 ‘REO’의 삼행시로 완성한 문장이 함께 적혀 있다. 날씨가 맑은 날엔 봉제된 천 조각 사이로 햇빛이 은은하게 투과된다고 한다.

 

 

중앙에 걸린 백팩 제품은 119REO의 시그니처 ‘926’ 라인이다. 926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바로 ‘소방관 한 명이 책임지는 국민의 숫자’이다. 119REO의 출범 당시는 1181명이었다고 하니, 그 사이 소방관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더 보장되고 안전한 사회가 되어간다는 희망이 드는 수치다. 백팩은 부담 없이 직접 착용해 보아도 좋다.

 

 

백팩 뿐 아니라 119REO의 다양한 액세서리 제품도 만나볼 수 있다. 제품에는 119REO만의 시선이 담겨 있는데 예를 들어 카드지갑은 소방호스의 겉면을 제거하고 안쪽 면을 활용해 제작되었으며, 국제소방관의 날을 기념하여 만든 뱃지는 물과 불에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호신인 ‘성 플로리아노’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

 

 

3.1운동이 시작된 시각인 오후 2시에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진행해 해당 팝업을 소개한 119REO는 마지막에 전쟁 상황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언급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소방관들에 뜨거운 응원과 박수를 보냈다. 더불어 한국을 넘어 국제사회의 소방관을 지원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어둠 속에서도 불꽃을 찾으러 앞장서는 소방관을 지지하는 119REO의 팝업 전시는 3월 27일까지 계속된다.

소원 기자 

장소
KT&G 상상마당
주소
서울 마포구 어울마당로65
일자
2022.03.01 - 2022.03.27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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