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3

하시시박의 시선으로 채운 따스한 집

작가의 집에 걸려있던 15점의 사진에 담긴 일상
당신에게 말을 거는 프레임 속 장면이 있다. 셔터를 누른 순간의 온도부터 향, 감정까지 오롯이 담긴 일상의 조각은 아무도 직접 걷지 않은,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삶이라 느낄 이야기를 들려준다. ‘집’이라는 프레임 속 하시시박 작가가 수집해 두었던 그의 일상은 각자의 프레임을 입고 우리를 만난다. 이곳에 방문해 그 안, 반짝이는 조각들과 이야기 나누며 오래도록 함께 하기를.
사진 제공: TPZ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은 매일 다른 모양새다. 토요일 낮 해가 만든 그림자가 소파 앞까지 다다라 눈을 뜨기도 하고, 수요일 저녁 막 뚜껑을 딴 맥주 캔이 내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특별할 것 없다 생각했던 일상도 지나고 보면 나를 이루는 특별한 조각이었음을 깨닫는 계기는 사소한 무엇. 하시시박 작가가 만들어낸 상 앞에 서있는 시간이 또 그렇다.

 

전시 전경 | 사진 제공: TPZ
왼쪽부터 'No.09', 'No.10' | 사진 제공: TPZ

 

하시시박 작가와 팀포지티브제로(TPZ)가 협업한 전시 〈HASISI PARK — FRAMES IN THE HOUSE〉는 작가의 집을 그대로 구현했다. 작가가 지금까지 담아온 수많은 찰나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아껴 실제로 집 곳곳에 걸어두었던 작품 15점을 공개하는 자리다. 문을 열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전시장과 작가의 집이 교차되며 우리는 어느새 그의 집에 들어서 있다. 이제 온기를 느끼며 그가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눈에 담을 차례다.

 

왼쪽부터 'No.14', 'No.13', 'No.12', 'No.02' | 사진 제공: TPZ
왼쪽부터 'No.04', 'No.06' | 사진 제공: TPZ

 

꺾어지는 긴 벽을 따라 걸려있는 15점의 작품들은 촬영한 연도도, 배경도 모두 달라 좀처럼 따라잡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겪은 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구태여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우리의 일상. 이렇게 집은, 사람과 공간이 상호작용하는 유일한 곳이다. 

 

© heyPOP

 

연도와 배경뿐만이 아니다. 작품의 이름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 이름 대신 번호가 붙은 작품들은 우리가 사진을 향유하는 주체가 되게끔 한다. 필자도 긴 시간 머무르며 사진 속 어딘가와 어느 때를 마음껏 유영하다 스스로 작품의 이름을 붙여봤다. 이는 굉장히 흥미로운 경험이어서 많은 이들이 도전해봤으면 싶다. 그렇게 명명한 이름*을 되뇌던 중, 곧 다가올 봄처럼 화사한 옷을 입고 나타난 작가와 마주쳤다.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몇 작품들에 대해 물음을 던졌더니 글쎄!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가 들려준 에피소드가 매우 유쾌했다.

* 필자가 작품에 붙인 이름은 각 작품의 번호 옆 괄호로 표기한다.

 

 

No.11 (Behind the scene)

“11번은 최근작이에요. 가족끼리 제주도에 갔었는데, 오름에서 갑자기 첫째 아들 시하가 소변이 급하다는 거예요. 남편이랑 어떻게 할까 발을 동동 구르다가 너무 급한 나머지 임시방편으로 남편이 시하를 가려주고 있는, 그런 긴박한 장면이랍니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마냥 단란한 부자의 뒷모습이라 여겼던 장면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었을 줄이야. 뒷이야기를 모르고 보았던 장면도 아름다웠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차오르는 감정도 있더라. 11번의 이름은 ‘Behind the scene’이라 붙일 수밖에 없었다.

 

왼쪽부터 차례로 'No.01', 'No.15', 'No.07' | 사진 제공: TPZ

 

No.01 (Bacon)

“1번이네요.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국립공원에서 담은 장면입니다. 공원을 걷다 보면, 사진에서 보이는 바위 산들이 여러 개 우뚝 서있는 스폿이 있거든요. 정확히 어떤 바위 산이었는지 말로 표현하기엔 어렵지만 그 산들 중 하나예요.”

 

가끔은 보이는 그대로를 반영한 이름도 좋지 않나. ‘이름’이라고 하면 거창한 의미를 담아야할 것 같지만, 듣는 순간 실소가 터지는 이름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바위 산 단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이 베이컨의 결과 닮아서 그만…

 

 

No.07 (Red Bubble)

“저희 친정집 앞에는 산딸기 밭이 있어요.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덤불과 눈이 시리도록 붉은 산딸기 열매가 눈에 띄더라고요.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저 장면을 꼭 담고 싶어 덤불을 열심히 헤치고 나갔죠.”

 

무성한 덤불을 헤치고 만난 산딸기 앞에서 눈을 반짝이는 작가가 떠올랐다. 누군가 숨이 차도록 불어 세상에 나온, 곧 사라질 듯 이리저리 떠다니는 비눗방울에 홀린 어린아이처럼 빛나는 두 눈. 작가의 눈에 비친 비눗방울은 산딸기일 거라 생각했다.

 

사진 제공: TPZ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15점 외에도 티셔츠 2종을 함께 판매한다. 보다 쉽게 기부에 동참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마련한 굿즈로, 화이트와 블랙 두 가지 컬러 중 선택할 수 있다.

 

전시 종료 후 작품과 굿즈 판매 수익금 전액은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저소득층 예술계열 전공 대학생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현재 작품 대부분이 판매되었지만, 가볍게 들러 흘러가는 삶 속에서 각자의 집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김가인 기자

자료 제공 TPZ

장소
카페 포제
주소
서울 성동구 연무장9길 7
일자
2022.02.21 - 2022.03.14
김가인
사소한 일에서 얻는 평온을 위안 삼아 오늘도 감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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