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7

어떻게 볼 것인가? 시대와 매체, 감각의 연결

팔복예술공장 입주작가 7인의 시선
1979년부터 90년대 초까지 운영되다 이후 방치됐던 카세트테이프 공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지역 명소로 떠오른 곳이 있다. 바로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팔복예술공장이다. 공장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전주문화재단이 2018년부터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로 운영하며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공에 선보여왔다. 현재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4기 입주 작가들의 입주보고전 <시선의 번역>이 개최되고 있으니, 전주에 들러 예술가 7인의 가지각색 시선을 감상해 볼 만하다.
포스터 © 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홀 전시 전경(여인영, 김수나), 사진: 오정은

 

팔복예술공장은 A동과 B동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번 전시 <시선의 번역>을 보기 위해서는 카페가 있는 A동 2층 전시장과 써니부엌, 이팝나무 광장 등이 있는 B동 1층의 이팝나무홀에 걸음 하면 된다. 매해 개최되는 공모를 통해 선발된 입주작가 고영찬, 박수지, 서수인, 정철규, 서완호, 여인영, 김수나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고영찬-DORORI, 2022 © 팔복예술공장

 

고영찬은 낯선 장소와 사람들에 관심을 갖고 주로 사진과 영상 매체로 이미지와 사건 기록, 진술을 담아낸다. 이번 전시에서 7채널 영상 설치 < DORORI >를 선보인 그는, 2003년 부안군 동중리 마을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과 그 후 과정을 마을 주민의 증언, 문화재 애호가의 블로그 글, 박물관 학예사의 사견 등을 모아 묘연하고 환상적인 영상 서사로 연출했다.

 

박수지-깨진언어들사이로, 2022 © 팔복예술공장

 

뉴질랜드와 국내를 오가며 입체, 설치, 텍스트 매체를 혼용한 작업 활동을 해온 박수지는 파편처럼 흩어진 텍스트, 그리고 도자나 클레이, led 전구처럼 실제 물성을 가졌으나 그 역시 완전하지 않은 형태로 접합되고 제작돼 부분적이며 불완전한 조형성을 나타내는 사물로 공간을 설치했다.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감각을 드러내는 장면과 재료를 통해 정서를 새롭게 환기시킨다.

 

서수인, 당겨지는 쉼표, 2022 © 팔복예술공장

 

회화작가 서수인은 이번에 15점의 유화를 공개한다. 붓과 나이프를 사용해 캔버스에 물감이 두텁게 칠해지고 속도감 있게 흐트러진, 또 흘러내리는 표면상의 효과를 극적으로 드러낸 것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용도를 잃거나 소멸하는 풍경,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한한 존재의 의미가 상기되는 일상의 것들을 포착해 화면상의 구체적 대상이자 안료의 재료적 느낌으로 담아 그렸다.

 

정철규_이름을 지우고 모이는 자리, 2021 © 팔복예술공장

 

정철규 작가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낼 수 없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수집해 시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해왔다. 2019년부터 시작된 그의 자수 작업은 인터뷰를 통해 청취한 타인의 내밀한 경험이 작가의 바느질이라는 수공예적 수행에 겹쳐지는 일이다. 전시 기간 중 관람객과의 대화 프로그램이 가미된 공간 설치작 <브라더 양복점-3호점>은 수집된 이야기가 일방향으로만 전달될 것을 꺼린 작가가 의도한 작업이다. <이름을 지우고 모이는 자리>, <다르게 해석되는 것들>, <기준 없는 기준들>등 형형색색의 실이 원단 위에 수놓아진 작품 여럿과 그에 내재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경기도 단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2021생생화화 <현시적 전경>에서는 정철규 작가의 <브라더 양복점 2호점>이 공개되고 있으니 함께 보아도 좋겠다.

 

서완호-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2021 © 팔복예술공장

 

서완호의 회화에서는 동적인 풍경에서 느껴지는 정적인 순간의 환영감, 미시감 같은 눈앞의 현실임에도 이질적인 특수한 감각이 감지된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도시 공간들과 안개 낀 듯 뿌연 사람들, 우리가 처한 환경을 재현한 작품 속 알 수 없는 인물들 사이의 사람들을 생각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림 속 이미지는 주변에 관한 시선을 모처럼 정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여인영-소금은 짜다 여인영, 2022 © 팔복예술공장

 

여인영은 도시, 젠더, 인공지능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점의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 구성된 <소금은 짜다(Salt to tasty)>를 공개한다. 작가는 소금과 구멍을 기표 삼아 언어, 음성과 무빙 이미지로 두 요소를 대립, 조우해가며 성적이고 순환적인 관계를 만든다.

김수나-풍경의 층, 2021 © 팔복예술공장

 

김수나는 여섯 점의 사진 작업을 전시했다. 이미지를 평면적으로 기록하면서도 종이 질감의 물질성을 가진 사진의 특성에 대해 생각한 작가는 사진의 표면에 의도적인 층과 균열을 냄으로써 매체를 교란했다. 작가는 타자와의 접촉과 마찬가지로 물리적인 장으로서의 표면성에 대해 생각하고, 작가노트를 통해 ‘겹겹이 쌓인 사진의 층들이 서로 뒤섞이면서 표층과 심층이 하나의 몸으로 연결된다’라고 쓰고 있다.

전시 <시선의 번역>의 관람료는 무료로 사전 예약 없이 현장 방문으로 전시 관람이 가능하다. 2월 중 큐레이터, 비평가의 입주작가 공개 비평 프로그램과 오픈 스튜디오 행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일정 등 자세한 사항은 팔복예술공장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확인하기 바란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입주작가의 인터뷰도 볼 수 있다.

 

 

오정은 기자

자료 제공 팔복예술공장

장소
팔복예술공장
주소
전북 전주시 덕진구 구렛들1길 46
일자
2022.01.28 - 2022.02.27
헤이팝
공간 큐레이션 플랫폼, 헤이팝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과 그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와 브랜드에 주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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