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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7

제주 로컬 의류 브랜드의 귀환!

지역 콘텐츠의 재생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
1909년 설립된 샤넬, 1946년 시작된 디올. 우리나라에도 그에 못지 않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품 의류 브랜드가 있다. 이름하여 한림수직. 한림수직은 한국 최고의 양모 니트를 만들던 의류 브랜드다. 1959년 3월, 제주 한림읍의 성 이시돌 목장에서 탄생한 이 브랜드는 목장에서 직접 기른 양들의 털을 재래식 배틀로 짜는 수공예적 방식으로 만들어져 품질과 디자인이 훌륭해 고가에 팔려 나갔다. 그 당시 제주 여성들 사이에 스웨터 한 벌을 갖기 위해 계를 드는 부녀 모임이 있었는가 하면 한 미국인의 제보로 <타임>지에 기사가 실렸단다. 1977년에는 명동 조선호텔과 제주 칼호텔에 직영 매장을 열었을 만큼 명품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값싼 중국산 양모의 수입과 달라진 시대 변화를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2005년 문을 닫는다.
한국에 없는 수직사 기계를 수입하기 위해 일본에 건너간 맥그린치(임피제) 신부
한림수직이 생산했던 니트와 머플러. 아일랜드 지방의 아란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고급 호텔에 직영 매장을 낼 정도로 명품으로 인정 받았다.

 

한림수직이 특별한 이유는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림수직은 1954년 아일랜드에서 부임해온 맥그린치(Mcglinchey, 한국 이름 임피제) 신부가 제주 4·3과 6·25 전쟁을 연달아 겪으며 빈곤에 시달리던 제주민, 특히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었다. 맥그린치 신부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부탁해 받은 돈으로 양 35마리를 사고, 아일랜드 수녀 세 명을 초청해 제주 여성들에게 뜨개질 기술을 전수하도록 했다. 제주 재료로 제주에서 생산된 로컬 브랜드, 가난한 여성들을 돕기 위한 윤리적 브랜드, 천연 양모와 오래된 수공예 베틀을 사용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인 친환경 브랜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하고 특별한 이야기가 한림수직에 있었다.

 
2021년 새롭게 생산된 한림수직 니트
한림수직 전시장 풍경

 

새롭게 돌아온 한림수직!

사라진 오리지널 제주 로컬 브랜드, 한림수직이 십여 년 만에 돌아왔다. 2021년 제주 기반의 콘텐츠 큐레이션 기업 재주상회, 제조·유통 전문 사회적 기업 아트임팩트, 제주 농촌 지역의 발전과 지역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세 회사가 손을 잡고 한림수직을 되살리는 작업을 진행한 것.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네 개의 시제품을 선보이며 큰 관심을 모은 이 작업은 서울과 제주에서 팝업 전시를 진행하면서 더욱 이름을 알렸고, 현재 본격적인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에서 버려지는 자원을 활용한 제품

지금 제주 성 이시돌 목장에는 한림수직의 후손인 양 50여 마리가 남아 있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양모를 채취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양의 생존을 위해서 털은 주기적으로 깎아줘야 하는 상황. 털이 너무 많이 자라면 양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털 사이에 세균이 생기는 등 건강 상의 위험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에는 이렇게 버려지는 양들의 털을 100% 활용했다. 현재 50여 마리는 사실 양모 제품을 만들기에는 크게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만든 리사이클 울, 일반 울을 섞어 원사를 만들어 제품을 생산한다.

 

 

Interview with 재주상회

 

과거 한림수직에서 제작한 카디건들. 특히 V넥 가디건은 한림수직의 시그니처였다.
옛 한림수직 머플러. '아일랜드 수녀의 지도 아래 손으로 짠 100% 순모 고급 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림수직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아 놀랐어요. 중고시장에서 한림수직 스웨터가 고가로 거래되고, 한림수직 스타일의 스웨터를 만들어 보는 니터들도 있더군요. 이렇게 멋진 브랜드가 사라졌다니 안타까웠어요. 제주도민들은 한림수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아직도 많은 제주도민 분들이 한림수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주뿐 아니라 육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인기 많고 로망으로 여겨진 브랜드였답니다. 서울 조선 호텔 아케이드와 칼호텔에서 한림수직 직영 매장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전성기 때는 이 양들이 천여 마리까지 불어났다. 현재는 제주 성 이시돌 목장에 한림수직의 후손인 양 50여 마리가 남아 있다.
과거 한림수직 가디건

 

이번 프로젝트는 2020년 <인(iiin)>을 통해 한림수직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소개하며 시작되었습니다. 글에서 멈추지 않고 한림수직을 되살려야 겠다고 결심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콘텐츠그룹 재주상회는 2014년 매거진 <(인iiin)>을 창간한 이후 로컬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일을 계속 해왔어요. 로컬의 정체성은 그 지역의 시간과 자연, 문화, 사회, 사람들 속에 담겨 있죠. 한림수직도 마찬가지입니다. 2005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나, 50여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제주의 정체성이 차곡차곡 쌓인 브랜드입니다. 더군다나 밀도 높은 디자인과 품질의 제품을 수직으로 생산하며 전성기에 1,300여 명의 제주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큰 기업이기도 하죠. 지금 같이 확실하고 개성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는 데 행복을 느끼는 취향의 시대에 한림수직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실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가 만든 시그니처 아란 스웨터

 

지금 한림수직에 쏟아지는 관심을 보면 단순히 오래된 로컬 브랜드를 추억하는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느껴져요.

2021년 우리가 만든 건 단순한 니트 상품이 아닙니다. 제주의 한림수직을 이야기 한 거죠. 제주를 그저 보석빛 바다로 아름다운 관광지로만 생각하는 많은 분들에게 한림수직이라는 근사한 로컬 브랜드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한림수직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즉, 이번 프로젝트는 지역의 콘텐츠를 재생하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예전처럼 손으로 한 땀 한 땀 스웨터를 뜰 수 없어 기계의 힘을 빌렸지만 이번 한림수직 재생에는 성이시돌목장에서 직접 깎은 양털도 일부 사용했고 오리지널 한림수직의 아란 무늬를 최대한 재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2021 한림수직은 과거 한림수직의 가치와 디자인을 이어간다. 제주 양모, 리사이클 울 등을 섞어 스웨터, 머플러, 니트백을 만들었다.

 

아트임팩트,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와 협업해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저희는 제주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신한스퀘어브릿지 제주’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 협업) 구조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해 보완점을 찾아 나가며 만족스러운 브랜딩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스웨터, 머플러, 버킷백, 토드백 총 네 종류의 상품을 출시했어요. 상품 구성은 어떤 판단으로 이뤄졌나요?

상품 라인 구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양 50여 마리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양모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상품을 만들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죠. 우선 한림수직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아란무늬 스웨터를 최대한 양모의 색상을 살려 총 2가지 색상과 사이즈로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이즈의 구애 없이 남녀노소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한 결과 머플러가 나오게 되었고요. 마지막으로 과거 한림수직 상품으로는 없었지만, 한림수직의 디자인과 가치를 담은 현시대에 어울리는 아이템을 찾다 활용도 높으면서도 유니크한 디자인의 니트백을 제작하게 되었어요.

 

ⓒ 재주상회

 

팝업스토어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한림수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확인했어요. 앞으로의 방향이 궁금합니다.

일단 한림수직의 브랜딩을 잘해 나가는 것, 그리고 제주도 내에서 생산이 가능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도내에 생산 시설이 없어 결국 육지로 나가야 했던 부분이었어요. 앞으로는 제주에서 직접 한림수직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더불어 한림수직에서 일했던 분들과 함께 ‘장인니팅’ 라인을 만들어 수직 제품을 생산하는 것, 장인들과 청년을 이어주는 니팅 스쿨을 운영하는 것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시돌목장의 양들이 더욱 좋은 환경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힘쓸 예정이며 양들의 개체 수를 늘려 점점 천연 양모의 함유량을 늘려 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재주 상회가 쏘아 올린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성원을 받고 있다. 이어지는 방문 덕분에 제주 성이시돌센터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2월 20일까지로 연장 되었고, 제주 MBC에서는 <수직 기억을 잇다>는 주제로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했다.

 

 

유제이 기자

자료 제공 재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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