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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31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루이 비통 쇼

초현실적인 파란 집 <루이 드림하우스>
지난 11월 28일, 루이 비통 남성복의 아티스틱 디렉터이자 스트리트 브랜드 오프 화이트의 설립자인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2년간 비밀리에 투병해 온 희귀성 심장암. 며칠 후 루이 비통은 마이애미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2022 봄-여름 프레젠테이션을 차분한 추모 분위기 속에 진행했다. 많은 이들이 이 행사가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패션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사망하기 전 루이 비통을 위한 2022 가을-겨울 컬렉션까지 상당수 디자인해 둔 상태였다. 루이 비통은 유족의 허락을 받아 지난주 파리의 카로 뒤 텅플(Le Carreau du Temple)에서 버질 아블로가 남긴 남성복 최종 컬렉션을 공개했다.
루이 비통이 파리에서 버질 아블로가 디자인한 마지막 남성 컬렉션을 선보였다. 반쯤 가라앉은 집, 침대, 계단 등 공간적 요소들이 초현실적으로 배치된 공간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루이 비통 2022 봄-여름 컬렉션 초대장

 

딱따구리 초대장

참석자들에게 보낸 초대장 속 딱따구리 장난감이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버질 아블로는 루이 비통에서 일할 당시 종이비행기, 오락실 게임, 장난감 집을 사무실에 둘만큼 유머, 고정관념 비틀기, 호기심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딱따구리 놀잇감은 버질 아블로의 장난기를 보여주는 한편 단단한 나무줄기를 끊임없이 두드리며 결국 구멍을 내는 버질 아블로의 성실함과 인내심을 은유하는 게 아닐까?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드림하우스

지붕만 간신히 보이는 가라앉은 집, 둥둥 떠다니는 침실과 계단, 킹 사이즈 침대… 이번 프레젠테이션은 하늘색 색조의 초현실적인 꿈의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버질 아블로가 기획한 이번 프레젠테이션의 모티프 중 하나는 ‘오즈의 마법사’. 루이 비통의 CEO 마이클 버크(Michel Burke)는 워먼스 웨어 데일리(Women’s Wear Daily)와의 인터뷰에서 “버질 아블로가 항상 사용하던 은유가 있다”며 바로 “집, 소년”라고 설명했다. 이번 쇼에서도 버질 아블로가 좋아하는 꿈, 젊음, 집에 대한 은유가 추상적으로 반영됐다. 예컨대 꿈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반쯤 가라앉은 지붕의 굴뚝이 연기를 뿜어내며 쇼의 시작을 알렸고, 모델들이 캣워크를 걷는 동안 스트릿웨어를 입은 안무가들이 곳곳에 등장해 스트리트 댄스를 선보였다.

 

 

꿈의 어딘가를 탐험하는 듯한 분위기를 극대화한 건 라이브 음악이었다. 이번 사운드 트랙은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 아래 흑인 연주자들이 모여 창단한 유럽의 치네케 오케스트라(chineke! Orchestra)가 연주했다.

 

 

이브 카마라와 그의 크리에이티브 팀

버질 아블로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며 현장을 진두지휘한 건 이브 카마라(Ib Kamara). 시에라리온 태생의 스타일리스트이자 영국 매거진 데이즈드의 편집장인 이브 카마라는 루이비통 2021 봄-여름 컬렉션에서 버질 아블로와 협업했으며, 버질 아블로가 떠난 이번 프레젠테이션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컬렉션

캣워크에서는 테일러링과 스포츠웨어, 스트릿웨어와 브라이덜웨어가 충돌하는 장르를 넘나드는 의상을 선보였다. 모델들은 오버사이즈 캡, 버클이 달린 트렌치 코트, 스타디움 재킷, 색이 바랜 데님 진, 날씬하고 스팽글이 달린 수트 등을 입고 등장했다. 그들이 손에 든 클래식 트렁크부터 미니 더플과 백팩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해석된 루이 비통 가방들이었다. 그리고 모델 오마리 핍스(Omari Phipps)와 알렉 폴랑티에(Alec Pollentier)가 천사처럼 화이트 수트에 레이스 날개를 입고 걸으며 대미를 장식했다.

 

 

“유머는 인류를 위한 시작점”

전체적으로 이번 쇼는 예전보다 차분했고, 초반에는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하늘색 색조의 세트장 덕분에 우울한 분위기까지 풍겼다. 하지만 미소 짓게 만드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수트를 입고 색색의 종이 꽃다발을 듣고 걷는 모델, 강아지처럼 귀가 쫑긋 솟은 바라클라바라를 쓴 모델, 나비처럼 겹겹의 레이스 날개를 매단 모델… 평소 유머를 강조한 버질 아블로라면 분명히 그의 쇼에 웃음이 있기를 바랐을 터. 버질 아블로는 한 때 같이 건축을 공부하고 현재 건축학과 교수로 있는 친구의 부탁으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강연을 한 적 있다. 당시 “유머는 인류애를 위한 시작점(Humor is an entry point for humanity)”이라며 유머와 위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테마는 ‘천국’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섬세한 레이스로 만든 날개를 입은 모델, 저승사자 배지를 의복에 부착하고 위협적인 역병 가면을 쓴 모델이 등장하면서 테마는 확실해졌다. 하늘을 연상시키는 푸른 색조, 꿈 같은 초현실적인 공간, 그리고 영적인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모델들. 루이비통이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고인이 된 버질 아블로에게 헌정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끝까지 본 관객들은 천국을 상상하며 세상을 뜬 버질 아블로의 안식을 기원했다.

 

 

“인생은 너무 짧아서 하루도 기다릴 수 없다(Life is so short you can’t wait even a day)“. 이번 쇼노트에 포함된 버질 아블로의 인용문 중 하나다. 낙관적이고 진취적이었던 버질 아블로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루이 비통 최초의 흑인 수석 디자이너로 지명돼 디자인과 예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은 버질 아블로가 2018년 루이 비통에 합류한 이후 준비한 여덟 번째 쇼이자 마지막 쇼다.

 

 

유제이 기자

사진 출처 루이 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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