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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5

청동에서 흰색으로 색이 변하는 돌

알리시아 크바데의 첫 서울 개인전
알리시아 크바데(Alicja Kwade)라는 이름을 눈 여겨 보게 된 건 2018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개관했을 무렵이었다. 전시장으로 가기 위해 사옥 로비에 들어서자 높은 천장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금속 체인이 보였다. 체인의 양쪽 끝에는 각각 아날로그 시계와 돌이 매달려 있었다. 알리시아 크바데의 < The void of the momnet in motion(움직이는 순간들의 공허) >. 시간의 무게와 가치에 질문하는 작품이었다. 2022년 지금은 철수되어 볼 수 없지만 당시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이라면 한번쯤 이 작품을 올려다보며 감탄하곤 했었다.
청담동 쾨닉 서울에서 열리는 알리시아 크바데의 첫 개인전 풍경

 

작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한국 관객들의 부름에 응답하듯, 최근 알리시아 크바데의 첫 서울 개인전이 열렸다. 소속 갤러리인 서울 청담동 쾨닉 서울과 한남동 페이스 서울에서 진행된 < Sometimes I Prefer to Sit on a Chair on the Earth Surrounded by Universes(때로 나는 우주에 둘러싸인 지구 의자에 앉는 좋아해) >다. 한 작가의 개인전이 두 갤러리에서 동시에 개최된 건 이례적인 일. 이번 전시에서는 알리시아 크바데의 근작 30 여 점이 공개됐다.

 

촉망 받는 현대 예술가 알리시아 크바데. 201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지원을 받아 옥상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올해로 42세. 폴란드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하는 알리시아 크바데는 지금 현대 미술계가 주목하는 파워 있는 작가다. 최근 베를린 국립현대미술관, 노이스 랑겐파운데이션, 헬싱키 에스포 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파리 퐁피두센터, 워싱턴 DC 허쉬혼 미술관,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등에도 작품이 소장돼 있다. 2015년 뉴욕의 공공미술품 설치작업 기관의 지원을 받아 뉴욕 센트럴 파크에 작품을 선보인 데 이어 201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의 옥상 전시 작가로 선정돼 더욱 유명해졌다.

 

 

이번 서울에서의 전시 작품들은 순환적 움직임이라는 공통의 모티브를 반복하여 공유하고 있다. 이는 크바데가 선보여온 조각적 작업의 중심에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3개의 돌로 구성된 작품 ‘Little Triple Be-hide’가 대표적이다. 가운데 진짜 돌을 두고, 양 옆에는 청동으로 만든 복제본 돌을 놓았다. 관객의 시점에 따라 흰색 돌이 세 개 놓인 것 같기도, 금색 돌이 세 개 놓인 것 같기도, 청색 돌이 세 개 놓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장 가운데 놓인 ‘Duodecouple Be-Hide(듀오커플비하이드)’는 앞 작품의 사이즈를 키웠다. 화강암, 대리석 등 다양한 소재의 돌 12개가 시계의 시를 가리키듯 둥그렇게 배열돼 있다. 각각의 돌 사이에는 투명한 유리처럼 보이는 양면 거울이 끼어 있다.

작품을 제대로 느끼려면 작품을 따라 한바퀴 돌아야 한다. 마치 돌이 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물을 보는 관점에 따라 본질이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표현한 작품이다.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또 그 다음 물체로 끊임없이 뒤집히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죠. 당신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돌이 녹색에서 흰색으로, 또 다른 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작가의 설명이다.

 

 

또 다른 돌 소재 작품 ‘Hemmungsloser Widerstand(구속되지 않은 저항)’는 아예 돌을 두 개로 쪼갰다. 돌이 유리판을 통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단된 돌을 유리 양쪽에 접착한 것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묻는다. ‘과연 당신이 보고 있는 게 진짜 본질일까?’

 

 

수많은 시곗바늘이 큰 그림을 이루는 ‘Entropie(엔트로피)’ 시리즈도 재미있는 신작이다. 엔트로피란 무질서의 물리적 측정, 정확하게는 질서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작가는 액자와 같은 크기의 대야에 두 개의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파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찰한 후 그 흔적을 시계바늘로 나타냈다. 그 결과 시곗바늘은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진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물리학이 미학적 선택을 결정하도록 만든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가는 물방울을 만드는 데 관여했지만, 파동과 분자의 배열까지 조절할 순없다. 인간은 무질서에 질서를 만들기 위해 시, 분, 초라는 개념을 부여했지만, 사실 연속된 시간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하다.

 

 

‘Selbstporträt(자화상)’은 얼핏 시계판처럼 보이는데, 24개 요소로 이뤄진 자화상이다. 산소, 탄소, 구리 등 인간을 구성하는 24개 요소를 담아 배치했다. 자화상이라고 하지만 모든 사람의 초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옥상에 있는 청동조각 ‘Principium: Portrait einer Koreanerin mit Absatz(시작: 높은 굽 신발을 신은 한국 여성들 초상)’은 이중 나선의 DNA 구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은 청동으로 주조한 아이폰을 한국 여성 평균 신장(163.2㎝)만큼 쌓아 올린 것이다. 휴대전화에 끊임없이 정보를 담고, 이로서 현실을 만들고 우리 장소를 창조하고 있다는 작가의 아이디어가 담겼다.

 

ⓒ 쾨닉 서울

 

전시장 입구에 있는 ‘Siege du Monde(세계의 의자)’는 전시장 안내원이 휴게를 위해 앉는 의자처럼 보이지만 작품이다. 등받이가 달린 의자 아래 행성처럼 보이는 붉은색 구체가 고정돼 있다. 의자 위에 앉으면 행성 위에 앉아 생각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의자를 청동으로, 구체를 청동으로 만들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매우 무겁게 만든 것도 작가의 의도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나타낸다. 우리가 세상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무거운 무게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갇혀버린 모습과 같지요.” 작가는 엘리자베스 1세의 초상화도 떠오른다고 했다. 세계를 정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정지 상태에 있고, 본인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유제이 기자

자료 제공 쾨닉 서울

장소
쾨닉 서울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412 MCM HAUS 5층
일자
2021.12.10 - 202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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