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19

기후 위기를 체험하다!

지금을 성찰하는 전시 <그 후, 그 뒤,>
다음 세대에게 다음이란 있는가. 현재의 양상이 계속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 '그날'로 설정된 근 미래를 발굴하는 일종의 우화이자 대화, 전시 <그 후, 그 뒤,>가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그 후, 그 뒤,>의 전시 서문은 사뭇 엄숙하고도 비장한 어조로 시작하고 있다. 그 언어가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전시 <그 후, 그 뒤,>는 기후 위기의 암을 냉철히 지시하며 그것을 초래한 우리의 지난 삶을 반성하고 근 미래의 위험을 뚜렷하게 감지한다. 허구와 상상, 통찰과 직관의 요소에 착안해 만들어진 몇몇 예술 작품이 이를 위해 신중하게 수집된 증거이자 변화를 향한 발판으로 제시된다. 때문에 전시를 ‘본다’라는 표현보다는 전시를 ‘경험한다’라는 말이 좀 더 맞는 표현일지도. 현상의 수동적 목격을 넘어 보다 직접적인 참여와 수행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장한나, 기묘한 낯선 곳, 2021

 

이 말은 실제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아트(interactive art)가 본 전시에 포함됐다는 사실에서 나아가, 전시가 말하는 의제가 우리 자신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호소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작품 내지 전시의 기능으로서 참여되는 관객이 아니라 전시의 주제와 미술의 실천을 함께하는 관객, 그리고 그것의 구심점이 되는 미술관의 운영 방식 – 뮤지올로지(Museology)에 대해 높아지는 최근 사회의 관심을 염두에 두며 해당 전시를 살펴보도록 하자.

 

 

낯설고 기묘한 새로운 돌

장한나

 

(좌) 뉴락, 2019 / (우) 뉴락, 2017

 

장한나는 버려진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가 세월을 거쳐 새로운 암석이 되거나 지층의 일부가 되는 현상에 주목하고 그를 기록하며 수집해 왔다. 마치 기존의, 또는 조금 새로운 자연물처럼 보이는 장한나의 <뉴 락(New Rock)>은 바로 그렇게 모아진 합성 인공물이다. <그 후, 그 뒤,>에서는 이 낯설고 기묘한 <뉴 락 표본 2017-2021>(2021)이 전시장 벽면 가득 전시되어 있다.

 

뉴락, 2019
뉴락, 2018

 

그런가 하면 물이 채워진 작은 인공 수조 안에 들어가거나 모래 더미에 섞여 마치 해양식물이나 광물처럼 자리한 ‘뉴 락’을 제시한 가변크기 설치 <신 생태계>(2021)도 있다. 가치 판단을 배제한 사실 정보를 전달하고 그것이 점차 관심과 실천으로 이어지기 바란다는 주관을 여러 차례 밝혀 온 장한나 작가의 작업은 심각한 위기의식, 새로운 가능성과 호기심의 측면, 그 사이를 오가는 이상 감각 모두를 열고 시대 혼종의 지표를 미술의 형식 언어를 통해 계속 더해가는 것이다.

 

 

우세종이 된 해파리

리미니 프로토콜

 

리미니 프로토콜, 승 승, 2017 © Agnese Sanvito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Win><Win>(<승><승>)은 바르셀로나의 아트센터 CCCB의 커미션으로 2017년 <세계의 종말(After the End of the World)> 전시에 공개됐던 작품이다. 이 작업이 부산현대미술관에 의해 다시 제작돼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는 뇌도 없을 정도로 매우 단순한 신체 구조로 이루어진 해파리가 기후 온난화와 함께 우세종이 되면서 해양 생태계는 물론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 의식을 ‘연극형 설치 작품’이라는 매체 장르로 관람객에게 체감시킨다. 우리의 현재를 거울처럼 반추하고 시간 여행처럼 미래를 오가는 내러티브를 구사하는 작업으로 전시가 이끄는 사유의 감각을 고조시킨다.

 

 

VR로 체험하는 기후 위기

김아영

 

김아영, 수리솔: POVCR, 2021
김아영, 수리솔: POVCR, 2021

 

김아영의 <수리솔: POVCR>(2021)은 아르코미술관 커미션이자 부산현대미술관이 공동 제작한 VR 체험 작업으로 얼마 전 막을 내린 <횡단하는 물질의 세계>(2021.9.17-12.12, 아르코미술관)에서도 만나본 작업이다. (관련 기사) 가상현실의 기술로 기후 위기를 체험하는 한편, 부산이라는 지역성을 서사의 배경으로 겹쳐볼 수 있도록 설정되어 몰입감을 더한다.

 

 

지구 공동체를 비추는 영상 교향곡

존 아캄프라

 

존 아캄프라, 보라, 2017 © Smoking Dogs Films; Courtesy Smoking Dogs Films and Lisson Gallery

 

영국에서 활동하는 가나 출신 작가 존 아캄프라(john akomfrah)의 6채널 비디오 영상 <보라(purple)>(2017)는 상호 유기적으로 연관된 지구 공동체의 다큐멘터리적 이미지를 편집해 보여주며 교향곡의 형식을 따라 현실을 위기를 선명하게 자각시킨다. 김아영의 작업이 1인 시각 미디어로 개별적인 감각과 사변 서사를 통해 SF적 미래와 현실의 시공을 연결한 것과 대비된다.

 

<그 후, 그 뒤,>는 바로 지금뿐 아니라 우리의 내일이자 다음 세대가 실존할 삶을 위한 실천 의제를 상기시키며 인류세 시대의 미술의 방향을 탐구한다. 환경에 대한 불안과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적 질문을 더하면서.

 

 

오정은 기자

자료 제공 부산현대미술관

장소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실1
주소
부산 사하구 낙동남로 1191
일자
2021.10.29 - 2022.03.01
헤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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