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신유가 부산 아티컬에서 새해를 맞아 안온한 미래를 기원하는 전시 <기원전>을 오는 3월 31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전시는 스튜디오 신유가 2022년 올해를 위해 준비한 새로운 프로젝트의 첫 번째 퍼즐이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를 통해오늘의 내가 과거에게 미래를 부탁하는 의식 공간이다. 전시장에서 제공되는 돌에 과거를 담아 차곡차곡 쌓인 각자의 기억 위에 얹어보자.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오늘의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정의된 것이다. 과거 없이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없다. 과거를 올바르게 자아화(自我化)하는 일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각자의 과거에게 멋진 미래를 부탁해 보자.
아래 내용은 스튜디오 신유가 이곳에 묻고 간 과거에 대한 것이다.
세계적 문화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문화적 특수성 속의 보편성을 발견하여 세계 보편적 공감대를 얻을 것. 두 번째,끊어진 근대 역사의 맥락을 다시 이을 것. 유럽의 디자인 페어를 갈 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온 디자이너들의 각국이 지닌 전통과 그 특수성에 대해 전시한 작품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외적인 형태에 대한 감탄과 별개로 작품의 내면에 공감하기는 어려웠는데, 그 부분이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전통을 재해석할 때 자주 겪는 실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 전제를 위해 디자인한 LIN Collection은 한국 전통 목조 건축과 유럽 전통 석조 건축이라는 특수성 속에 겹쳐지는 공통점인 기둥-보 구조를 활용하여 만든 작품이다. 전통적인 재료인 나무와 철을 쌓아 만든 이 작품은 동서양 건축의 특징을 은은한 잔상처럼 겹쳐 보이게 만들며 세계 보편적인 공감대를 다소 획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에서 돌아와 한국에서 첫 전시를 열었던 2019년 12월 이후, 2년간 한국과 유럽의 전통적인 특수성 사이에 겹쳐지는 보편적인 디자인적 모티브를 바탕으로 작품 및 전시 활동을 해왔다. 세계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어냄으로써, 진정으로 한국 전통의 우수한 가치를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국내에 머물고 주된 활동 또한 국내에서 진행하며 한국 전통문화의 역사적 맥락에 관한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다. 스튜디오 신유는 2022년 올해, 두 번째 전제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세계 문화 강국의 이면에는 현대에 그들이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게 된 자주적인 근대화라는 맥락이 숨어있다.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한국의 문화는 그 도중에 맥이 끊겨있다. 2년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작품 활동과 전시활동을 하며 역사적 맥락의 결핍에 대한 극복을 끊임없이 갈구하게 되었다.
최근 한국의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났다는 걸 실감하는데, 단순히 전통 문양을 현대의 물건에 덮어씌우는 등 어딘가 겉표면만을 적당히 흉내 낸 것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근대 문화 역사의 맥락이 도중에 끊어졌음에 그 원인이 있다. 정상적인 근대화의 길을 지나왔을 때 우리에게 어떤 문화가 남아있을지 알지 못한다면,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과제는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상적 근대화가 이루어졌을 것을 가정하여 세계 보편적 요소들이 근대 한국의 역사에 편입되었을 때 역사의 맥락은 어떻게 이어졌을지 가정해 보는 것이다. 역사의 빈 페이지를 올바르게 되짚어 본 뒤에,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자주적인 근대화의 역사를 되짚어보지 않는다면, 한국의 고유한 디자인 정체성은 우리 자신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추상이 될 것이다. 과거 없이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없다. 현대의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잃어버린 맥락을,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되찾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