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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4

영혼을 달래는 반가사유상의 미소

'사유의 방'에 자리한 반가사유상 두 점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볼 수 있게 됐다. 지난달 12일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 2관에 전시실 ‘사유의 방’을 개관한 것. 국보 제78호, 제83호로 각각 지정된 반가사유상 두 점을 함께 전시한 사례는 이제껏 1986년, 2004년, 2015년 단 세 차례뿐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반가사유상을 대표 소장품으로 브랜드화하고 국내외 관람객에게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전시실을 기획했다.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 6세기 후반.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허벅다리 위에 걸친 채 사유하는 모습을 표현한 불상이다. 결가부좌 자세를 취하거나 우뚝 선 불상에서 경건함과 자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흐르는 듯 앉아 사색에 빠진 반가사유상은 범인(凡人)에게 친근함과 위안을 안긴다. 금동으로 만든 금동반가사유상은 전 세계 70여 점, 한국에 20여 점 남아 있다. 예술적 완성도와 숭고미를 인정받은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은 세계에서 으뜸이라 칭송받는 유물이다.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 7세기 전반.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들어서면 반가사유상을 만나러 오는 이에게 특별한 경험을 안기고자 과감하게 시도한 면면이 돋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공간 최초로 건축가(원오원 아키텍스)와 협업했고 브랜드 스토리 개발팀, 미디어 아티스트, 다큐멘터리 제작팀 등 여러 분야 전문가와 협업해 총체적인 경험을 구축해냈다. 모르고 보면 놀랍고 알고 보면 감탄스러운 사유의 방 디테일을 짚었다.

 

 

1. 이야기가 있는 여정

 

사유의 방 입구. 사진 제공: 원오원 아키텍스
유물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는 입구. 사진 제공: 원오원 아키텍스

 

사유의 방은 초입부터 출구까지 하나의 이야기처럼 계획돼 있다. 유물과 공간을 오롯이 느끼도록 전시실 내부 설명 글은 최대한 줄이고 입구에 QR 코드를 비치했다. QR 코드를 찍으면 유물 해설과 공간 설명이 제공된다. 그 후 칠흑 같은 어둠이 관람객을 맞는다. 어둠이 익을 무렵 작가 장줄리앙 푸스(Jean-Julien Pous)의 미디어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익숙하지 않은 감각을 깨운 뒤 반가사유상이 자리한 공간으로 이동한다. 마음 가는 대로 걸음을 옮기며 반가사유상을 충분히 바라본다. 입구와 다른 위치에 마련된 출구를 통해 현실로 돌아온다.

 

 

2. 비정형 공간

 

사진 제공: 원오원 아키텍스
사람들은 자연스레 움직이며 반가사유상을 보게 된다. 앞, 뒤, 옆 모두 다른 감상을 안긴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은 자체로 움직임을 품은 상이다. 한쪽 다리를 올리려는지 내리려는지 인간은 알 수가 없고, 번뇌하고 수행하며 사유하다가 마침내 도달한 깨달음의 찰나를 포착한 상이기 때문. 이에 맞추어 공간 역시 비정형적으로 설계해 율동감을 주었다. 바닥 경사는 반가사유상에 다가갈수록 미묘하게 높아진다. 천장에는 2만여 개의 봉을 매달았는데, 하나하나 길이를 달리해 선 자리마다 천장 높이가 달라지도록 만들었다.

바닥 경사와 천장 기울기가 만나는 소실점에 반가사유상이 있다. 반가사유상을 모든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타원형으로 만든 전시대 역시 평평하지 않다. 공간감이 사라진 사유의 방에서는 거리라든지 높이라든지, 현실 속 수치는 모호해지고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 된다.

 

 

3.빛과 향

 

섬세하게 표현된 옷 주름, 손가락, 발가락을 바라보면 감동이 인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빛과 향은 반가사유상을 더 생생하게 보이게 하는 한편,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강화한다. 반가사유상의 물결치는 옷자락, 콧날과 입가 미소는 정교히 계획된 조명 덕분에 살아 있는 듯 명확해진다. 들어서자마자 나무와 흙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데, 이는 벽을 만든 재료 때문이다. 해남 땅에서 얻은 붉은 흙에 편백과 계피를 섞어 벽을 발랐다. 아예 재료에 향을 녹인 덕에 신비로운 공기가 은근하게 완성됐다.

 

 

Interview with 신소연 학예연구사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법 넓은 공간에 오직 반가사유상 두 점만을 전시했습니다. 퍽 과감한 시도인데 신선하고 반가워요.

반가사유상에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오래 고민했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하면 <모나리자>가 떠오르듯,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하면 떠오르는 문화재가 반가사유상이 되기를 바랐거든요. 최근엔 설명 텍스트를 읽는 등 여러 자료를 소화하기보다는 총체적인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람객이 늘고 있어요. 이러한 관람 경향에 맞춰 텍스트를 최소화하고 반가사유상 두 점의 전용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유물이 갖는 의미를 강조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누구보다 자주 반가사유상을 만났을 텐데요. 학예사로서 생각하는 반가사유상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미소와 생각하는 자세를 꼽겠습니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은 고뇌하는 모습을 표현했지만 사뭇 다릅니다. 로댕 작품의 인간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가사유상은 긴 고뇌 끝에 깨달음을 얻은 ‘찰나’의 모습이에요. 반가사유상의 미소에서 그 순간을 가늠해 볼 수 있지요. 반가사유상을 보고 영혼이 치유된다거나 울림이 있다는 감상을 전해 주는 분이 많아요. 따뜻한 미소, 깨달음에서 오는 미소가 그런 감정을 안기는 듯합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과 고민은 찾아오기 때문에, 반가사유상 앞에서 위안받는 것이 아닐까요.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의 미소.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과 관람객 사이엔 어떤 경계도 없지요. 관람객으로서는 관람 경험이 높아져서 좋았지만, 박물관 입장에서는 부담이 컸을 듯합니다.

반가사유상이 아주 오랫동안 유리 진열장 안에 있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난 16년 동안만 진열장 안에서 전시됐습니다. 그 전 시기에 반가사유상을 보았던 분들은 늘 아쉬움을 느끼셨을 겁니다. 여러분이 다시 반가사유상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랐고, 시스템을 모두 바꾸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 노출 전시를 선택했습니다. 안전·방범 시스템부터 지진 대비 설비까지 새롭고 완벽하게 갖추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실을 조성할 때 건축가가 참여한 것은 이번 사유의 방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박물관 자체의 전시, 연구 역량은 굉장히 높아진 상태입니다. 학예적인 능력과 디자인을 결합하는 시도도 여러 번 해 왔고요. 다만 이번에는 그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야를 제안할 외부 작가와 협업을 고려하게 됐지요.

 

유물을 둥근 전시대 위에 올려 직선을 배제해 시선이 걸리는 모서리가 없으므로 관람객은 반가사유상에만 집중할 수 있다. 사진 제공: 원오원 아키텍스

 

원오원 아키텍스와 함께했어요. 국립중앙박물관과 원오원 아키텍스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반가사유상은 한국 대표 문화재이면서 세계 문화유산이에요. 원오원 아키텍스 최욱 대표는 2009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한국실 갤러리 내부 디자인 설계를 맡았고 문화시설 프로젝트에도 다양하게 참여했어요. ‘공공성을 지닌 문화시설’ 프로젝트에 꼭 맞는 분이었죠. 또한 국내외 관람객과 모두 교감할 수 있는 건축가이기도 하지요.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최욱 대표가 적임이었습니다.

 

천장에 2만여 개의 봉을 매달았다. 봉마다 길이를 달리해 천장 높이가 달라지는 효과를 주었다. 사진 제공: 원오원 아키텍스

 

사유의 방을 조성하면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나요?

유물을 잘 보이게 하는 것. 반가사유상이 돋보이도록 조명과 진열대 등을 하나하나 고심해 결정했습니다. 경험의 여정을 엮어 나가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했습니다. 초입부터 출구까지 자연스레 연결하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고자 했어요.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유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천천히 익도록 했지요. 미디어아트 작품을 초입에 배치함으로써 초현실 속으로 진입하는 느낌을 주었고요.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반가사유상을 만난 후 아쉬움을 안은 채 현실로 돌아오는 여정으로 구성했습니다.

 

장줄리앙 푸스의 미디어아트 작품 일부. 사진 제공: 원오원 아키텍스

 

미디어아트 작품은 작가 장줄리앙 푸스가 맡았어요. 해외 작가와의 협업 역시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사유의 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낯선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다른 시선을 가졌으나 중요한 가치를 존중하는 작가로 장줄리앙 푸스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면서 제주도 해녀 다큐멘터리 <울림>(2017) 등을 만들었어요.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영상 <세한의 시간> 제작으로 이미 합을 맞춰 본 상대이기도 했고요. 사유의 방 초입 비치한 <순환>은 물의 순환에서 시작한 작품이에요. 전시 내용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으니 천천히 즐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유의 방은 어떨 때 방문하면 좋을까요?

지쳤을 때 오시면 좋을 거예요. 평일 낮과 수요일 야간 개장 때는 관람객이 많지 않으니 그 시간대 방문을 추천합니다. 조용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스스로 치유되고 있음을 느낄 겁니다. 더불어 이번 프로젝트가 반가사유상이 한국 대표 문화재임을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위안과 여운까지 안고 갈 수 있는 사유의 방에 큰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김유영 기자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주소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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