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모인 167개 브랜드 가운데 직접 찾아가볼 수 있는 브랜드 스팟 6곳을 헤이팝에서도 함께 소개합니다.
언택트 시대에도 살아 움직이는 로컬 브랜드와 크리에이터의 소식을 ‘헤이팝’에서 빠르게 만나보세요!
87MM
NO CONCEPT BUT GOOD SENSE
밤낮없이 청춘의 불꽃을 태우는 이들이 거니는 곳, 홍대. 힙합부터 스트릿, 빈티지와 모던, 음악과 미술, 인종과 언어… 그야말로 경계 없이 어우러진 청춘의 멜팅팟 한가운데, 87년생 동갑내기는 오래전부터 골목 한 귀퉁이에 눌러앉아 꾸준히 재미있는 일을 벌여 왔다. ‘NO CONCEPT BUT GOOD SENSE”. 이 동네만큼이나 개성과 콘셉트가 너무 다양한, 그래서 오히려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캐주얼한 일상 문화들을 ‘두드려’ 다양한 컬렉션과 프로젝트로 변신시켜 온 이야기다.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톱모델 김원중과 박지운이 론칭한 패션 브랜드 87MM의 첫 출발은 어느 날 편의점에서 무심코 꺼내 마신 바나나 우유로 거슬러 올라간다. 줄곧 옷으로 뭔가를 해 보고 싶었던 이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나나 우유에 적힌 ‘220ml’. 그렇게 그들의 탄생 연도 87에 좋아하는 알파벳 M을 붙인 단순하고도 위트 있는 패션 브랜드가 탄생했다. 그렇게 작은 일상에서 영감을 건져 올려 시작한 그들만의 크리에이티브한 여정도 어느새 10년째. 끊임없이 넘실거리는 서울을 주 무대 삼고 파도 타온 이들은 또 한 번 ‘뉴 웨이브(NEW WAVE)’를 일으키고자 한다.
지운) 87MM 로고 아래에도 ‘seoul’이 붙어있어요. 서울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서, 항상 ‘87MM 서울’이라고 붙여서 표현해요. ‘based seoul’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해외에서는 ‘paris’, ‘newyork’ 등 본인이 활동하는 곳의 지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데, 저희가 초반에 브랜드를 전개할 때만 해도 ‘서울’이 붙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어요.
서울에서도특히홍대에자리를잡고지금까지왔어요.
지운) 2015년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면서 처음 홍대로 오게 되었어요. 홍대는 무척 상징적인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미대도 있고, 주변에 디자인/출판 회사도 많고, 락/힙합 인디 뮤지션들이 공연도 자주 하고요. 그러한 문화적인 부분이 좋았어요.
원중) 올해로 10년이 됐는데, 가장 오래 터전을 잡은 곳이에요. 20대 때 모델로 활동하면서 자주 오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젊음’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지역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장충동에서 쫓겨나서 오게 된 건데,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많은 경험이 있었네요.
홍대는몇년사이에도많은변화가있었죠. 그사이브랜드를운영하는건어떠셨어요?
지운) 저희가 여기 처음 올 때만 해도 플래그십 스토어가 하나 정도 있었나요? 하지만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플래그쉽 스토어가 모여 있어요. 홍대 특유의 에너지가 브랜드를 모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어요.
원중) 저희 같은 규모의 브랜드는 대부분 홍대 메인 길목에 있지 않았어요. 큰길에서 한 번 (골목으로) 꺾여진 곳에 있죠. 하지만 87MM은 메인 길목에서 광고를 내거는 대형 브랜드보다 직접 찾아오려는 사람들이 발걸음 할 수 있는 숨은 골목에 있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쇼룸을 옮길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홍대에 있을 것 같냐는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답한 이들은 이미 그러한 전적이 있다. 변화의 중심 홍대에서 60년 동안 자리를 지킨 주택을 개조한 쇼룸에서 한 블록 내려와 2년 전 무렵 지금의 쇼룸으로 옮겨온 것. 자재들이 그대로 노출된 빈티지한 멋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한층 모던하고 단정해진 지금의 쇼룸에서 그들은 성장의 역사를 확인하고 새로운 뿌리를 심고 있다.
오래된주택을개조한쇼룸을벗어나지금의쇼룸으로왔어요. 비교하자면어떠한가요?
원중) 개인적으로는 주택을 개조한 스토어가 더 애착이 가요.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비즈니스 차원에서 조금 정제될 필요를 느껴 옮기게 되었는데, 87MM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정체성은 이전 쇼룸과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훨씬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거든요. 지금 여기는 큰 특징을 반영하기보다 87MM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느낌에 포커스를 맞춘 곳이에요. 특징이 있다면, 평소 작업할 때 이미지를 포스터로 만들어 아카이빙해 두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것들을 피팅룸 같은 곳에 녹여냈어요.
지운) 그리고 예전 쇼룸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려고 천장에 이렇게…
원중) 아, 그렇네!
87MM이최근에새롭게도전한것은무엇인가요?
지운) 2021년 10월 16일이 설립 10주년이었어요. 10주년을 맞아 어떤 프로젝트를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87MM 전용 서체를 개발했어요. 패션 브랜드로서는 이례적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현 수단이 글꼴이라는 점에 착안해 기획하게 되었어요. 87MM은 일상적인 문화를 터치하는 걸 좋아하는 브랜드이고, 일상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던지고 있거든요.
‘팔칠엠엠 일상 보통’과 ‘팔칠엠엠 일상 기울임’으로 구성된 두 가지 글꼴은 본문용 글꼴로서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독성과 호환성에 중점을 두고 설계했다. 그중에서 ‘팔칠엠엠 일상 기울임’은 기울임 효과를 통해 인위적으로 글씨를 기울인 것이 아니라, 글씨를 옆으로 쓸 때 나타나는 손글씨의 특징을 담아 처음부터 기울임체로 디자인한 최초의 본문용 한글 글꼴이다.
일상에관한관심을이어, 폰트외에도도전해보고싶다하는영역이있다면요?
지운) 브랜드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서브컬처를 지향하는 브랜드 중에서 대표적으로 ‘슈프림’ 하면 ‘스케이트보드’가 떠오르는 것처럼요. 그런 것을 고민하다 시작했던 게 ‘원즈서비스’라는 프로젝트예요. 일상을 되돌아보고 환기시키는 의미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만들거나 좋아하는 영화를 오마주해요. 처음엔 ‘와이키키비디오’라는 팀과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이후 서울을 기반으로 패션 필름이나 독립영화를 만드는 ‘세가지(Segaji)’라는 팀과 협업해 두 차례 영화도 만들었어요. 이 원즈 서비스의 범위를 더 넓히고 싶어요. 단순히 영상 제작뿐 아니라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저희가 직접 제작에 참여하거나 그런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을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브랜드를 이끄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해야 그게 브랜드의 문화가 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 꾸준히 잘 하면 알아주시지 않을까요(웃음)
원중) 그동안 원즈서비스의 주제가 편의점이나 택시운전자였어요. 그렇듯 저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영감으로 찾아왔을 때, 즉흥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패션을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인 만큼, 패션을 중심으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의 제품을 선보이고 싶어요.
올해 87MM은 줄곧 진출하고 싶었던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 아티스트 최경주, Smiley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며 그들만의 스타일을 주저 없이 펼치는 도전을 꾀했다. 이런 그들이 자신만만하게 내거는 슬로건은 “NO CONCEPT BUT GOOD SENSE”. 특정 콘셉트에 얽매이지 않고 경계 없이 선보이는 다양한 무드는 여러 레이블을 통해 전달된다.
87MM 서울 외에도 일상 속에서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데일리 캐주얼 레이블 ‘mmlg’와 선택의 피로감을 줄여주는 기본 아이템을 전개하는 에센셜 레이블 ‘MO’ 그리고 경계 없는 일상 문화를 소재로 창작 활동을 펼치는 ‘원즈서비스’까지. 누가 이들을 단 한 가지 단어로 형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을 한계 짓는 콘셉트는 없다. 다만 오랫동안 갈고 닦아 온 좋은 센스와 감각만이 있을 뿐!
지운) ‘No Concept’라는 게 콘셉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하나의 시즌 안에도 많게는 4~5개까지 콘셉트가 있어요. 다양하게 접근하며 틀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의미에요. 옷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많이 할 거다, 하고 싶다. 잘할 거다. 잘할 수 있다!(웃음)
원중) 저희가 엄청 콘셉트가 뚜렷하고 스토리텔링을 열심히 하는 브랜드라고는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대신 패션 이외에도 비주류적인 창작 활동을 하면서, 87MM을 이제껏 경험해 왔고 앞으로 경험할 분들의 흥미를 계속 두드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들은 저희를 보고 ‘무색무취다’, ‘콘셉트가 없다’라고도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보면 그게 바로 ‘일상’의 본질이 아닐까요? ‘서브컬처를 일상으로 삼는 게 약점이야’라는 말에도 동요해 본 적 없고, 오히려 87MM이 더 오래갈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해야 한다’는 게 지금 현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니즈일 수도 있지만, 저희는 ‘범대중성’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습니다!
지운) 이런 작업을 실제로 하거든요. 브랜드를 의인화해서 얘는 어떤 사람이고…하는 것을요(웃음) 이 질문은 지금 87MM이 가장 주력으로 전개하고 있는 라인인 mmlg가 좋아할 것 같은 책, 영화, 음악으로 바꿔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네요. 일단 말투부터 생각했어요. 딱딱하고 무겁지 않은 친절한 말투를 사용해요. 반존대라고 하나요? 또 팝이랑 밴드 음악 같이 주류 음악을 즐겨 듣지만, 때로는 재즈나 클래식 등 다양하게 듣기도 해요. 평소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축구를 하고, 휴가 때에는 레저 스포츠도 즐기고 친구 따라 캠핑도 갑니다. 특별한 장르를 가리기보다 예술/문화 전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원중) 87MM이 잠깐 반짝, 하고 시들어 버리는 브랜드가 아니라 더 오래 가기 위해서는 옴니버스식 컬렉션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스타일링 하느냐에 따라 다른 무드의 룩이나 또는 캐주얼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게끔요. 그래서 87MM 또는 mmlg를 영화로 따지면, 한 영화 안에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옴니버스식 영화일 것 같아요. 약간 이런 느낌일까요? 예를 들어 폴로 후드를 떠올리면, 누가 입었는지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바뀌거든요. 대학생이 입으면 남친의 정석, 유명한 힙합 아티스트가 입으면 서브컬처의 표본 같기도 해요. 그렇듯 mmlg 도 누가 입는지에 따라서 느낌이 확확 변할 수 있는 레이블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시즌마다 이런 느낌의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설정은 있지만 그것을 소비자에게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스토리텔링적으로도 아예 배제되어 있고요.
그런의미에서도‘노콘셉트(NO CONCEPT)’라고볼수있겠네요.
원중) 무적의 슬로건…!
또한 87MM은‘뉴웨이브스트리트컬처(New Wave Street Culture)’를표방하고있어요. 2022년에 87MM이기대하는스트리트씬의‘뉴웨이브’는어떤모습인가요?
지운) ‘이번엔 뭐가 유행할까? 그걸 따라가자’ 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기대하는 게 따로 있지는 않아요. 사실 ‘뉴 웨이브 스트리트 컬처’는 컬렉션을 작업하던 시절에 만든 말인데, 하이엔드와 스트릿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적절히 믹스시키고 싶다는 의미였어요. 말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네요.
원중) 올카인드(All-kind) 캐주얼? (웃음) 저희가 기대하는 건 조금 친절한(?) 스트리트예요. 아무래도 스트리트 문화라고 하면 비주류적이고 자극적인, 반항적이고 강렬한… 이런 단어가 먼저 떠오르거든요. 87mm는 꾸준히 친절하고 건강한 캐주얼 스트리트 의류를 선보이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그래서 ‘스트리트’라는 말보다 ‘캐주얼’라는 말에 더 포커스를 두고 있어요. 뉴 웨이브라고 해서 요즘 떠오르는 메타버스라든가 가상현실까지 갈 생각은 없어요. 인물이 아닌 어떤 새로운 캐릭터를 통해서 87mm를 소개할 수 있는 콘텐츠가 나올 수는 있지 않을까요?
“저희 같은 브랜드에 되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 중 하나가 ‘고증’이라고 생각해요. 가벼워 보이는 느낌의 룩을 선보이는 게 여태까지의 과정이자 숙제였죠. 그러나 저희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고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저희를 팔로업해 주시고 계신 소비자분들이에요. 그들에게도 질리지 않는 브랜드가 되어야 하고, 87MM을 새롭게 경험하게 될 사람들에게도 신선해 보이는 브랜드이고 싶어요. 10년이나 된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레시’한 감각을 가진 브랜드로 보이길 바라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김원중 대표는 그 잠깐의 틈에도 87MM의 현재를 일군 지난 10년을 돌이켜보고 지금까지 함께 걸어 온 든든한 소비자들을 언급했다. 새로운 물살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면서도 이제껏 걸어 온 돌다리를 다시금 되짚는 그에게서 신중함과 굳건한 포부가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SDF에서만나볼수있는특별한것들이있다면요?
아까 말씀드렸던 팔칠엠엠 전용 서체를 활용해서 만든 제품들이에요. 서체를 단순히 배포하는 것을 넘어 어떤 무언가를 해볼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가장 먼저 브랜드 아카이브 북을 떠올렸어요. 10년 동안 의미 있던 순간들을 글로 써 보고 사진도 꼽아 후드로 만들었어요.
이외에도 서체를 디자인적으로 보여주는 포스터 프레임, 터프팅 러그, 모듈 가구까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오브제가 준비되어 있다. 안그라픽스의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와 협업해 만든 10주년 기념 서체에는 놀라운 디테일까지 숨어 있다. 궁금하다면 8도와 7도로 기울어진 획들을 요리조리 잘 살펴볼 것!
“87MM이라는 회사 이름을 되게 가볍게 지었어요. 87과 알파벳 M의 의미를 지금도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어요.” 김원중 대표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87MM의 모든 소소한 부분들의 의미를 찾고 있다. 그런 오랜 벗의 말에 박지운 대표는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그래요?” 하고 웃었지만, 20대 때부터 함께해 온 이들은 이심전심, 말하지 않아도 같은 것을 좇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말했다.“저도 원중이도 다 알고 있는 건데, 말로 하려니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