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3

1960년대 양옥에 앉아 마시는 차

북촌에 자리한 오설록 티하우스.
서울 종로구 북촌에 등 돌리고 선 한옥과 양옥이 있었다. 한옥은 1930년대에 양옥은 1960년대에 지어져 긴 세월 가까이 자리를 지켜오면서도 서로 마주 본 일은 없었다. 누군가 두 집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두 집을 엮으면서 피어날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떠올렸다. 3년간 부지런히 두 건물의 겉과 속을 매만진 끝에 지난 11월, 익숙한 채 새로운 공간이 문을 열었다. 한옥은 화장품 브랜드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로, 양옥은 차(茶) 브랜드 '오설록' 티하우스로 탄생했다.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사진 제공: 오설록

 

양옥에 자리한 오설록은 보다 느긋하게 앉아 쉴 수 있는 곳이다. 한 잔의 차는 여유를 가져오기 마련이므로. 오설록은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이지만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 늘기를 바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를 마실 때 생기는 여지가 얼마나 귀한지 더 많은 이가 알기를 바랐다. 3층 규모 양옥을 독창적인 차 콘텐츠로 가득 채운 이유가 거기 있다. 취향에 맞게 블렌딩한 차를 소분해 살 수 있는 상점부터, 다과와 차를 편안하게 즐기는 찻집, 고즈넉한 뷰를 누리며 티 칵테일을 마시는 바(bar)까지 알차게 즐기려면 한두 번 방문하는 것으로 모자랄 정도.

 

각 공간에 들어서려면 계단을 오르고 문을 열어야 한다. 마치 누군가의 집을 둘러보는 느낌인데, ‘집’이라는 콘셉트에 맞춰 철저한 계획이 따랐기에 가능한 일이다. 비마이게스트가 공간 콘텐츠를 구체화했고 원오원 아키텍스가 리노베이션과 인테리어 설계·디자인을 담당했다. 유무형 콘텐츠 모두 주목할 만한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을 만든 이들을 만났다.

 

 

Interview with

오설록 팀(크리에이티브팀 유정주 팀장, BM팀 이범진 팀장) · 비마이게스트 김아린 대표

 

1층 차향의 방. 사진 제공: 오설록

 

오래된 한옥과 양옥을 매만졌어요.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나요?

유정주 서로 다른 공간이었던 한옥과 양옥을 설화수와 오설록이라는 브랜드가 각각 사용하기로 하면서 수많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3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양옥은 요식업에 취약해 보여 한옥을 오설록 공간으로 하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비마이게스트와 공간별 기획을 발전해 나가면서 3층을 ‘찾아가야 하는’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콘셉트는 ‘집’으로 잡았습니다. 실제로 과거 집으로 쓰이던 건물이기도 하고, 팬데믹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집처럼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의 집에 방문해 환대받는 느낌을 안기도록 입구에는 우편함을 설치했습니다.

 

여러 층과 방으로 나뉜 공간을 자연스럽게 묶으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했겠어요.

김아린 넓은 데다 여러 층과 방으로 구획된 공간을 활용해 ‘오설록의 집’으로 탄생시켰죠. ‘일구다’와 ‘즐기다’라는 두 동사를 큰 축으로 잡았습니다. 오래도록 국내 차 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한 오설록이 ‘일궈 온’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면서 신선한 브랜드 경험을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다양한 차 원물 향을 맡아 보고 취향에 맞춰 블렌딩할 수 있다. 사진 제공: 오설록
2층 다식공방. 사진 제공: 오설록
2층 찻마루. 사진 제공: 오설록

 

차를 소분해 판매하는 ‘차향의 방’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됩니다. 차 소분 숍은 국내에서 아직 대중화되지 않아 더욱 신선했어요.

이범진 차향의 방에서는 맞춤형 티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해요. 오븐에서 갓 구워낸 ‘북촌 시그니처 베이크드 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원물을 즉석에서 블렌딩해 판매하죠. 소분 제품을 구매하면 최소한의 포장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줄일 수 있습니다. 

 

차를 마시는 공간이 ‘다식공방’, ‘찻마루’, ‘가회다실’ 등으로 다양하더라고요. 각각 다르게 만든 이유는 뭐예요?

유정주 실제 가족이 살았던 ‘집’이었기 때문에 방이 여러 개였어요. 동선이 복잡하다면 공간이 모두 흥미로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방문자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도록 구역마다 특화 콘텐츠가 달라서 자꾸 찾아오고픈 곳을 만들었습니다. 3층은 가장 높은 층인 만큼 더욱 놀라운 경험을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해 ‘바 설록’, ‘가회다실’처럼 색다른 메뉴와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도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으로 채웠어요.

 

베이스가 되는 차, 페어링 티푸드, 설명 카드가 함께 제공된다. 사진 제공: 오설록

 

바 설록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차향이 진하게 느껴지면서도 색다른 풍미를 지닌 티 칵테일이 매력적이었어요.

이범진 깊고 다양한 오설록 침출차를 재미나게 풀어서, 고객으로부터 ‘이렇게 즐길 수도 있다니!’하는 반응을 얻고 싶었습니다. 바 설록에서 선보이는 논알콜 티 칵테일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침출차에 믹솔로지(mixology) 기법을 적용하여 놀라움과 즐거움을 선사하려 했죠. 임병진, 박성민 등 유명 바텐더와 협업한 만큼 칵테일 맛이 훌륭하다는 평을 듣고 있어요. 바 설록의 색다른 인테리어와 그곳에서 보이는 환상적인 풍경, 티 마스터의 숙련된 서비스 등을 총체적으로 누릴 수 있어 무척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Interview with

원오원 아키텍스 최욱 대표

 

한옥과 양옥 사이 축대를 완전히 없애지 않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진: 김인철|원오원 팩토리

 

한옥과 양옥, 정원이 서로 묻히지 않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성격이 다른 공간을 한 프로젝트로 엮어내면서 염두에 둔 생각이 궁금합니다.

한국은 건축이면 건축, 담장이면 담장, 자연이면 자연이 툭툭 던져져 있어요. 그 요소들이 성장하면서 막 섞이기도 해요. 나무가 집 쪽으로 침범하기도 하고 담장이 자연과 얽히기도 하고. 이 프로젝트 역시 좋은 바둑돌을 놓듯이 한옥, 양옥, 마당을 툭툭 잘 던져 놓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2층 테라스. 사진 제공: 오설록
3층 테라스. 사진 제공: 오설록

 

식물, 자연을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또 인상적이었어요. 화단도 곳곳에 있고 테라스에 철제 난간과 테이블을 두어 마당과 거리감을 좁히고….

서양식 정원은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시각적인 정원이에요. 일본 정원은 손대면 약간 죄송스러운, 감성적이지만 만질 수 없는 정원이고. 그런데 우리는 좀 달라요. 우리나라에서는 정원을 선비들이 손수 가꿨어요. 우리에겐 자연이 아주 가까우면서 친숙하고 편안한 존재지.

 

석제 화단. 깨진 모서리를 푸르게 메꾼 부분이 눈에 띈다. 사진 제공: 오설록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기보다는 그 건물이 지나온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한편, 지금 이 건물이 사는 시간에 맞는 요소를 채워 넣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것과 새것의 경계를 분명히 드러낸 이유는요?

한옥과 양옥을 같이 리노베이션 해야 하는 작업이잖아요. 한옥 리노베이션 할 적에는 제일 칭찬 받는 일은 원형 보존이에요. 근데 생활 공간은 무작정 원형 보존하는 게 능사가 아니에요. 맘속으로 유네스코 기준에 의지해요. 보존에 관한 유네스코 기준은 간단해요. 판테온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대상은 원형 보존이 원칙이지만, 생활 공간일 경우 시간이 변하면서 새 기능이 필요하다면 창의적으로 복원한다는 게 기준이에요. 조건은 있어요. 오리지널과 덧붙인 부분이 명확히 구분되도록 할 것.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이 기준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3층 바 설록 안 자개장.
1층부터 3층까지 관통하는 빈티지 모빌.

 

원래 이 집에 남아 있던 자개장 등을 활용한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근사했어요.

처음엔 주인이 썼겠지만 나중에는 관리인이 썼던 것 같아요. 관리인 방에서 발견한 거거든. 자개가 굉장히 귀해 보여 잘 남겨야 겠다 싶어서 어디에 쓰면 알맞을지 오설록 팀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사이즈도 맞춰 보면서 적당한 곳에다가 썼지요.

 

건축이란 시간과 흔적, 삶을 반영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자주 말씀하시지요. 그 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이었어요.

독일 소설가 중에 마르틴 발저(Martin Walser)라고 있어요. 그 사람이 쓴 글 중에 ‘뒷면이 없는 앞면은 가짜다’라는 문장을 말하고 싶어요. 오리지널리티,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 집의 원형을 생각해서 그 분위기를 그대로 복원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1960년대 양옥, 1930년대 한옥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느낌, 추상적인 공감대랄까요? 그걸 구현해 보고 싶기는 했어요. 우리 맘속에 품고 있는 30년대, 60년대의 어떤 느낌을 현대에 보여주고 싶었지. 익숙한 대상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 느낌을 추상화해서 현대적으로 보여주려 했어요.

 

프로젝트 기획·운영 | 오설록
공간 콘텐츠 기획 | 비마이게스트
건축·인테리어 설계 | 원오원 아키텍스

 

 

김유영

자료 협조 오설록, 비마이게스트, 원오원 아키텍스

장소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
김유영
에디터.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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