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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9

젊은 여성들을 내쫓은 열매의 정체

도로에서 쫓겨난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빈랑’. 동아시아와 대만 일대에서 기호 식품으로 유통되는 열대지방의 열매로, 카페인과 같은 각성 효과와 약간의 환각을 일으킨다. 길거리에서 이것들을 파는 것은 다름 아닌 젊은 여성들. 그녀들을 둘러싼 복합적인 사회적 맥락에 주목한 이들이 있다. 바로 씨알콜렉티스(CR Collective)의 2021 CR 신진작가 공모에 선정된 ‘무니페리’다.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그의 국내 두 번째 개인전 <빈랑시스(檳榔西施)>가 개최된다.
무니페리_chapter 2_still image_1_빈랑시스_3 채널, VHS, 8/16mm, 4k, 스테레오 사운드_2021

 

전시와 작품의 제목 ‘빈랑시스(Betel nut Beauty)’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열매 ‘빈랑(檳榔, Betel nut)’을 판매하는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빈랑의 각성과 환각 효과는 주로 장시간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활발히 소비되어 왔고, 대부분 도로 위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주 소비층이 육체노동을 하는 남성들이었고, 빈랑의 무게가 가볍고 큰 자본이 필요 없다는 때문에 여성들이 쉽게 택할 수 있는 직업이 바로 ‘빈랑시스’였다. 그동안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의 교차 지점을 탐구해 온 무니페리는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사회적 맥락들이 만들어 내는 ‘오염’의 해석을 보여준다.

 

무니페리_chapter 1_still image_1_빈랑시스_3 채널, VHS, 8/16mm, 4k, 스테레오 사운드_2021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더 많은 고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이들이 택한 방법은 가능한 한 더 자극적인 방법으로 신체를 노출하는 것이었다. 오색찬란한 네온사인이 빛나는 부스 안에는 비키니 정도만을 간신히 걸친 빈랑시스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성 노동자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이들은 2002년 대만 내 빈랑 열매의 유통이 불법화되며 양지에서조차 미끄러진다.

 

이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추락한 존재(fallen beings)’로 일컬어져 왔다. 생물학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두 번이나 추락한 이들은 오염된, 더러운 대상으로 간주된다. 무니페리는 ‘더러움’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그 개념을 전복시킬 것을 요구한다.

 

무니페리_Green snake_2_청사&백사_Uki와 Luu Qoo_빈랑시스_사진_2021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 <빈랑시스>는 ‘더러움’과 연루된 존재들을 추적한다. 판소리로 막을 여는 첫 번째 챕터에서 소리꾼은 ‘추락한 존재’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본격적으로 빈랑시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상에는 두 종류의 노동자가 등장한다. 빈랑 열매를 기르는 농부와 빈랑을 판매하는 빈랑시스. 빈랑을 중심에 두고 이들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빈랑을 땀 흘려 일궈낸 농부에게 있어 빈랑시스는 자신의 결실의 가치를 ‘오염’시키는 ‘불온한’ 존재다. 빈랑시스인 두 여성 ‘Uki’와 ‘Luu Qoo’는 그 시선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불온한 존재인가? 그렇다 한들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인가?”

 

 

작가는 빈랑시스를 포함한 성 노동자를 가르는 이분법의 빈틈을 찾아내고자 한다. 옳고 그름을 기준 삼아 누군가를 섣불리 대변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며 다만 그들의 무수한 이야기들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을 때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다른 곳’으로의 점프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믿는다. 일종의 ‘포털’ 말이다.

 

‘포털’의 장력에 휘말려 다른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서사를 조각내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즐거운 장면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보여주는 ‘포털’ 즉 ‘빈틈’은 그동안 가려진 존재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료 협조 씨알콜렉티브

장소
씨알콜렉티브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120 일심빌딩 2F)
일자
2021.12.09 - 2022.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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