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9

제주에서 만나는 수중 식물 대향연

총 12개 공간! 역대급 스케일로 만나다
넘실대는 파란 물결, 햇빛이 알알이 부서지는 수면을 지나 어둠이 시작되는 깊은 바다로 내려가면 어떤 동식물이 살아가고 있을까? 현대 과학계는 심해에는 햇빛을 통한 광합성 없이 살아가는 독립적인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심해는 전 세계 바다의 93%를 차지할 만큼 광활하지만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존재한다.

달보다 가기 힘들다는 그 곳, 심해를 미디어 아트로 자유롭게 상상하고 그려낸 전시가 지금 제주 서귀포에서 열리고 있다. 아쿠아플라넷 제주에서 2021년 11월 8일부터 2022년 11월 6일까지 일년 동안 진행되는 <미구엘 슈발리에 제주 특별전: 디지털 심연 제주의 바다를 색칠하다>다.
전시장 풍경 ⓒ아쿠아플라넷제주

 

이번 전시는 미디어 아트의 선구자로 꼽히는 프랑스 작가 미구엘 슈발리에Miguel Chevalier의 개인전이다. 미구엘 슈발리에는 1970년대부터 세계 여러 도시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다양한 가상 세계 및 디지털 예술 작품을 선보여 온 인물. 꽃에서 관찰되는 프랙탈 구조, 블랙홀을 프로그래밍으로 패턴화 한 작업 등이 대표적이다. 1999년 광주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어왔다.

전시 주제는 ‘디지털 심연’. 제주 최대 규모의 수족관에서 열리는 전시라는 점을 반영했다. 작가는 깊은 바다 속에서 살아가는 혹은 상상으로 그려낸 동식물을 만나는 여정을 디지털 아트로 표현한다. 총 12개의 공간을 통해 소개되는 조각, 조명, 뉴미디어 작품은 독특한 색과 형태를 뽐내며 마치 꿈과 현실 사이를 걷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특히 관람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작품들이 다수 배치돼 몰입도를 높인다. 플랑크톤을 밟으면 발 끝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사라진다거나 화면에 다가서면 가상의 식물들이 좌우로 움직이는 식이다.

 

ⓒ아쿠아플라넷제주

 

“많은 사람들이 회화, 사진, 영상 작업과 비교하며 디지털 아트는 예술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시기의 예술가는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당대의 수단으로 작업하죠. 그래서 제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며, 사용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미구엘 슈발리에는 오늘날 디지털이 감정의 근원이 되고 회화, 사진, 영상과 동등한 영감을 준다고 말한다. 이번 미구엘 슈발리에 전시는 컴퓨터 기술과 함께 발전한 미디어 아트의 오늘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Interview with 미구엘 슈발리에

 

아쿠아플라넷 제주 전시장에서 만난 미구엘 슈발리에. 전시 개관 하루 전날까지 작품이 전시된 현장을 챙기며 디테일을 수정하는 열정을 보였다.

 

수족관에서 전시를 여는 건 처음이라고 들었다. 물리적인 장소를 캔버스 삼아 작품을 선보이는 만큼, 어디에서 작품을 전시하는지가 당신에게 꽤 중요할 것 같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내 전시는 주로 예술 공간에서 열린다. 수족관은 내게도 드문 기회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하지 않는 사람들, 예술에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수족관에는 온다. 지금 보이는 것처럼 부모와 아이가 함께 내 작품을 보고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걸 보니 기쁘다.

제주 아쿠아리움에서 전시 제안을 받은 건 2년 전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돼서 이제야 전시를 열게 됐다. 당시 한국을 방문해 이곳을 미리 둘러봤었다. 반원형의 굴곡진 벽이 있는 방이 있는가 하면 기둥이 있는 방도 있었다. 약간의 제약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가령 기둥 때문에 공간을 넓힐 수 없을 때는 전면에 거울을 설치해 넓게 보이도록 했다.

 

전시장 모습 ⓒ아쿠아플라넷제주

 

전시 주제가 ‘디지털 심연: 제주의 바다를 색칠하다’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

대부분 사람들이 오늘날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수족관에 오면 굉장히 큰 물고기와 미생물과 해초류를 볼 수 있지만 더 깊은 바닷속의 작은 미생물은 만날 수 없다. 심해는 95%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미 탐험 상태다.

이번 전시는 깊은 바닷속 세상을 다룬다. 심연에는 수많은 생물체들이 존재하고, 그 다양한 생물체들은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는 현상을 보인다. 또 산소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플랑크톤도 있다. 바다 깊은 곳에 사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생명체, 신비로운 풍경을 디지털로 보여주고, 이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길 바란다.

 

ⓒ아쿠아플라넷제주

 

개인적으로 전시 흐름이 거시에서 미시로 흐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섹션 ‘호기심의 방’과 ’세계의 기원’은 해저 동식물을 보여준다. 반면 전시 후반에서 보이는 ‘진동’, ‘복잡한 메쉬’ 등은 훨씬 추상적이다. 당신이 의도한 전시 스토리는 무엇인가?

맞다. 전시는 깊은 바다 아래 살고 있는 눈에 보이는 동식물을 보여주는 방에서 시작한다. 작업의 모티프가 된 생물체들이다. 그러다 뒤로 갈수록 자외선을 쬐어야 볼 수 있는 미생물, 플라크톤의 색과 패턴이 등장한다. 마지막 방에서는 음악이 나오면서 선과 이미지가 겹쳐졌다 흩어진다. 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닷속을 추상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예를 들어 물고기 가족을 떠올려보자. 물길을 타고 어떤 물고기 가족이 헤엄치다 물길이 겹쳐지면 다른 물고기 가족들이 합류한다. 모였다 흩어지는 물고기들로 대표되는 바닷속의 우연적인 풍경을 개념적으로 표현했다.

 

ⓒ아쿠아플라넷제주

 

작품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소트프웨어도 있고, 작곡가도 있더라. 개인적으로 ‘해저 음악’이라는 개념을 창시한 작곡가 미셸 레돌피(Michel Redolfi)가 작업한 음악의 주파수와 진폭에 따라 파도 같은 파형이 변형되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스타일의 작업은 팀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할 수 없다. 나의 경우 보통 다섯 명 이하의 팀원으로 꾸려진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나는 감독이고, 카메라 맨, 작가가 따로 있는 셈이다. 우리 팀에선 프로그래머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프로그래머가 구현해 주기 때문이다. 미셸 레돌피 역시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 왔다. 해저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뮤지션으로 돌고래 소리 등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든다.

 

ⓒ아쿠아플라넷제주

 

당신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나?

아이패드나 포토샵을 이용해 스케치를 만든다. 물론 일반 펜으로 쓱쓱 그릴 때도 있다. 팀원들과 논의하며 디테일을 발전시킨다. 자료를 얻기 위해 책과 사진을 많이 보고, 다큐멘터리도 자주 본다.

 

ⓒ아쿠아플라넷제주

 

‘엠피보리스(Amphibolis)’ 방에서는 식물을 거대하게 확대한 수중 초원을 만나게 된다. 이번 작품을 위해 해조학을 공부했다고 들었다. 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은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보인다. 2015년 영국 킹스칼리지 예배당에서 전시한 대표작 ‘디어 월드 유어스 캠브리지(Dear World… Yours Cambridge)’는 블랙홀을 주제로 삼았다. 과학에 대한 흥미가 남다른 것 같다.

2015년 ‘디어 월드 유어스’는 블랙홀을 주제로 연구해보자고 의뢰받은 작품이다. 과학 중에서도 특히 생물학에 많은 영감을 받는다. 생물학자가 어떻게 작업하고, 무엇을 발견하는지 보는 것이 재미있다.

 

 

‘엠피보리스’는 해조학을 참고해 상상 속의 해초들을 디자인한 것이다. 실처럼 가늘고 긴 모양의 이 발광 식물들은 관람객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구부러지고 움직인다. 관객을 참여시켜 작품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타입의 예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엠피보리스' 방. 수중 초원의 가상 식물이 무한히 꽃을 피우다 흐려지며, 고객이 작품에 다가가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어진다. ⓒ아쿠아플라넷제주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리히텐베르크(Lichtenberg) 도형. 전기가 물체를 통과할 때 특유의 나뭇가지 무늬를 그리면서 퍼지는 현상을 말한다. 18세기 독일의 물리학자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가 발견해서 그의 이름이 붙었다. 이 도형을 시발점으로 삼아 프로그래밍 아트를 구상하고 있다.

 

전기가 물체를 통과할 때 특유의 나뭇가지 무늬를 그리면서 퍼지는 리히텐베르크 현상. 미구엘 슈발리에가 최근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 시발점이 됐다. (사진출처=www.lindahall.org)
 
시간 10:00 ~ 19:00
입장료 성인 1만 7천원 (오션아레나 함께 입장 가능)

 

 

 유제이

장소
아쿠아플라넷 제주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 95)
일자
2021.11.08 - 202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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