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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술 익고 멋 흐르는 공간 뒷동산

전통주 매료된 공간 디자이너가 열다.
낙산공원으로 이어지는 언덕배기에 뒷동산이 있다. 오래도록 공간 디자인을 해 온 송대영 대표는 이런저런 전통주를 놀이하듯 마시다 그 매력에 푹 빠진다. 좋아하다 보니 만들게 된다. 쌀, 누룩, 물처럼 말갛고 예사로운 재료들은 술이 되면 완전히 낯설어졌다. 하나둘 느는 항아리 안에서 맛도 향도 각색인 술이 익어갔다. 독에 든 술을 나누려, 빚은 술이 주는 재미를 알리려 ‘공간 뒷동산’을 열었다.
ⓒ 길종상가

 

눈 두는 곳마다 굽이치는 인테리어는 송대영 대표와 박길종 작가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두 사람의 연은 깊다. 길종상가라는 이름으로 같이 활동한 데다 여전히 공간 디자인 일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 오래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뒷동산 역시 더불어 매만졌다. 송대영이 떠올리면 박길종은 만질 수 있는 것으로 구현했다. 술상과 의자, 잔과 접시는 물론 선반과 휴지 걸이까지 이곳만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무엇 하나 부딪치거나 과하지 않다. 술이든 멋이든 무언가 즐기는 이에게 열려 있는 곳, 공간 뒷동산에 다녀왔다.

 

 

 

Interview 송대영

공간 뒷동산 대표

 

 

취미처럼 전통주를 맛보다가 가게를 열었죠. 한국 술의 어떤 면에 이끌렸나요.

쌀, 누룩, 물처럼 맛이 무(無)에 가까운 재료로 맛을 만든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주식인 쌀을 쓴다는 점도요. 쌀로 만든 술 전반을 다루려고 하는데, 쌀 술을 어떻게 다변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다른 나라의 곡주도 마셔 보기 시작했어요. 쌀로 술을 빚는 지역은 대부분 동아시아권이더라고요. 생 사케 같은 술은 한국 술과 맞닿는 지점이 확실했어요. 이 재미를 알려드리고 싶어서 일본 사케를 들여놓고 중국 술도 준비 중입니다.

 

양조 공간
곡선 천장을 만드는 과정

 

천장과 테이블, 의자 등 공간 전반에서 구불구불한 곡선이 돋보여요.

천장을 곡선 형태로 만든 이유는 기존 후드를 가리기 위해서였어요. 구조를 대고 그 위로 합판을 하나하나 직접 붙였어요. 천장을 능선 형태로 계획하고 나니, 다른 부분 역시 각지게 하기보다는 둥그렇게 만들면 재미있겠더라고요. 술에 취해서 부딪치더라도 다칠 일은 없도록. (웃음) 콘셉트는 제가 기획했고 전체적인 가구 디자인 등은 길종상가 박길종 씨가 맡아서 제작까지 담당했어요.

 

공간 뒷동산의 잔

 

모양이 독특한 잔과 식기도 범상치 않아요. 유승협 작가와 함께했다고요.

유승협 작가와는 술을 만들다가 만났어요. 같이 술 마시다가 뒷동산을 위한 잔과 식기를 제작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제가 디자인하고 도안을 그리면 유승협 작가가 빚어 주었지요.

 

 

왜 잔과 식기를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술을 빚다 보면 자연스럽게 옛것, 옛날 자료를 찾아볼 수밖에 없어요. 술 빚는 법이 유실된 부분이 없는 채로 계승돼 오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고조리서와 같은 옛 자료를 참고하다 보면 옛 사람들이 어떻게 마셨는지 알게 돼요. 계영배(戒盈杯), 마상배(馬上杯) 등 다양한 잔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연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많이 공부했어요. 알게 된 내용을 토대로 잔과 식기 구성을 어설프게나마 해 보았지요. 과거 잔이 가진 특징을 어느 정도 띠고 있되, 새로운 디자인을 가미해 완성했습니다.

 

 

옛사람이 썼던 잔은 어떤 모양이던가요.

그 자료도 풍부하게 남아 있지는 않아요. 다만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는 굽이 있는 형태의 잔이 많아요. 제사처럼 무언가 기릴 때 사용하는 잔이 보통 그렇지요. 서민이 사용하던 막잔, 막사발 같은 잔도 있고요. 현재 뒷동산에서 사용하는 잔은 유리잔을 포함해 7가지 정도예요. 유리잔 역시도 유리 작가가 만든 작품인데요, 같은 것이 하나도 없고 모두 모양이 달라요. 표면이 울퉁불퉁해서 잡는 사람 손에 맞춰 쥘 수 있어요.

 

앞접시 일부

 

손수 제작한 간판과 메뉴판 디자인이 인상적이에요. 디자인하며 뭘 중요하게 생각했나요?

잘 알아볼 수 있을 것, 가독성이 좋을 것. 거기에 재미를 약간 더하고 싶었어요. 정자로 딱딱 떨어지는 세련된 느낌보다는 큼직큼직하고 투박한 기세를 표현하려 했죠.

 

메뉴 앨범 일부

 

‘뒷동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탁주를 마신 적이 있어요. 이 술이 여전히 시그니처 메뉴인가요?

요즘은 ‘오늘의 술’이라는 이름으로 매번 다른 술을 내고 있어요. 딱 하나의 시그니처 메뉴를 정해 두기보다는 그때그때 조금씩, 여러 방식으로 빚어 제공해요. 뒷동산에서는 오로지 쌀, 물, 누룩으로만 술을 빚고 발효 보조제나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아요. 아직 양조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아서, 자연 발효로 술을 빚으면 날씨에 따라 변동성이 크더라고요. 당분간은 오늘의 술을 제공하겠지만,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레시피를 정돈해 다시 뒷동산 탁주를 선보이려 합니다.

 

뒷동산 탁주

 

조금씩 다양하게 술을 빚기란 보통 일이 아닐 텐데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술을 빚어요. 양조할 때 22ℓ에서 30ℓ 정도 되는 크기의 항아리를 사용하거든요. 열심히 빚어도 완성되는 양이 많지 않아요. 그때그때 자주 빚어요. 요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지요. 손님들 입맛이 다 달라요. 어떤 분은 과일 맛을 좋아하는데 어떤 분은 질색하죠. 궁극의 맛을 찾아내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양하게 만들되, 공통적으로는 ‘편안한 맛’을 가진 술이라면 좋겠어요. 인공 감미료 쓰지 않고 깔끔한 맛을 내고 싶죠.

 

질 좋은 제철 과일로 술을 빚기도 한다.

 

빚는 술뿐 아니라 들여오는 술도 있지요.

캐릭터가 확실하면서 깔끔한 맛을 가진 술을 들여놓았어요. 손님이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생산지와 맛의 특징도 다채롭게 갖췄고요. 뒷동산에서 빚는 술과 마찬가지로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고 가급적이면 발효 보조제도 쓰지 않은 술을 준비했어요. 경기도 여주 휴동 막걸리, 문경 희양산 막걸리, 지리산 꽃잠 등은 오픈 초기부터 쭉 제공 중이에요. 과일 맛, 드라이한 맛, 강한 탄산감 등 개성이 확실한 술로 더 많은 분을 만족하려 해요.

 

농어 만두
점심 메뉴로 선보였던 나물 메밀면

 

나물무침부터 농어 만두 등 정갈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요리를 내놓아요.

오래된 문헌에는 술과 요리가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엔 술 만드는 사람이 요리도 했기 때문에 〈음식디미방〉 같은 조리서에는 술 빚는 법도 실려 있어요. 술을 공부하다 보니 조리서에서 소개하는 요리 역시 만들어 볼까 싶었어요. 맛은 좀 담백하게, 술맛이 도드라질 수 있도록 신경 쓰고요. 최근에는 술과 요리 맛이 부딪치도록 하는 스타일이 인기인 것 같지만, 저는 술맛을 좀 더 위에 두고 싶었어요. 그래서 양념 있는 요리가 많지 않아요.

 

 

지게미*를 활용한 반찬을 보고 술 빚는 집의 매력을 여실히 느꼈어요.

집집마다 술 빚던 시절에는 지게미를 정말 여러 곳에 썼다고 해요. 지금은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있기만 하다면 쿠키도 굽고 미용을 위한 팩으로도 쓰고 활용도가 높아요. 뒷동산은 술을 빚는 곳이고 지게미가 계속 나오니까 재미나게 써 보려고 해요. 무나 오이를 지게미에 절여서 내놓거나 요리에도 이용하는 식으로요. 그뿐 아니라 빚은 술이 성에 차지 않으면 식초로 만들어 쓰고, 장과 김치까지도 손수 만들어요.

*지게미: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

 

음향 기구와 엘피 일부

 

흐르는 음악이 분위기를 완성해요. 음악을 고르고 플레이하는 대표님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음악을 전공해서인지 공간 구성할 때도 음악을 허투루 할 수가 없더라고요. 동아시아권 술과 요리를 다루니까 이 지역 음악을 틀면 좋겠다 싶었죠. 되레 아시아 음악을 생소해 하는 분이 많아서 흥미로운 음악을 소개하고 들려드리려고 해요. 너무 어렵지 않은 음악, 이런 음악도 있네- 하면서 듣기 좋은 음악을 LP, CD, 테이프 등 여러 매체로 들려드리고 있어요.

 

음악 이벤트 포스터
이벤트 현장 사진

 

디제이DJ의 디제잉 세션이나 오케스트라 공연 등 음악 이벤트도 종종 열어요.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를 다양하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공간에 어울릴 만한 소리를 구상하는 편이에요. 벨 앤 라인즈 스몰 오케스트라 공연을 진행한 이유도 관악기 등 실제 악기를 공간에서 연주했을 때 무척 잘 어울려서였어요. 나무로 이뤄진 공간, 곡선이 주는 오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공간에 악기 소리가 퍼지니 근사했어요. 전자오르간 소리도 어울릴 것 같아서 알맞은 이벤트를 구상 중이에요. 물론 음악뿐 아니라 다른 콘텐츠를 선보이는 이벤트에도 열려 있습니다.

 

 

어떤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나요.

재미난 시도가 벌어지는 편안한 공간. 편안함이 저에겐 정말 중요해요.

 

 

김유영

자료 협조 공간 뒷동산

장소
공간 뒷동산 (서울시 성북구 삼선교로2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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