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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2

세계 최초의 아이폰 사진전

카메라 렌즈, 외부가 아닌 내면을 향하다.
지금은 바야흐로 크리에이터의 시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콘텐츠를 제작하고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 국민 10명 중 9명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인의 필수품 스마트폰. 이미지를 수집하고 생산하기에 더없이 편리한 이 기록 매체 덕분에 사진은 모두에게 친숙한 시각 언어이자 소통의 매개가 되었다. 모바일을 통한 사진의 대중화, 그 중심에는 애플이 있다.
Arielle Bobb-Willis, New Jersey 01, 2021. © Arielle Bobb-Willis

 

아이폰은 인물 사진·시네마틱 모드 등 괄목할 만한 기술의 발전을 이룩하며 예술적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을 주목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국제 사진센터(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ICP))다. ICP는 세계적인 종군 사진 기자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동생 코넬 카파(Cornell Capa)가 사회적 시의성을 지닌 사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그의 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전시관으로, 아이폰 사진전 “INWARD : Reflections on interiority”가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아이폰 사진만으로 구성된 전시회로는 세계 최초다.

 

Isaac West, Untitled, from IN LOVE, 2021. © Isaac West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 이번 전시는 ‘외부 세계를 포착하던 카메라 렌즈를 반대로 돌려, 내면을 향해 초점을 맞춘다면?’이라는 작은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지구를 덮친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 모인 다섯 명의 작가는 세상이 아닌 스스로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지난해 마틴 스콜세지의 발언을 인용하며 화제를 모았던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에 몰두함으로써 미지의 세계에 진입하는 패러독스. 이것이 “INWARD”의 기획 의도다.

 

Djeneba Aduayom, Transplace, 2021. © Djeneba Aduayom

 

구겐하임 미술관, 브롱크스 미술관을 거치며 커리어를 쌓은 이졸데 브리엘마이어(Isolde Brielmaier)가 큐레이터로 나섰다. 그녀는 “이번에 공개되는 신작들에는 내면과 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이것은 우리 모두가 마주한 새로운 현실의 국면에 대한 솔직하고도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입니다.”라 덧붙였다.

 

한편, 전시에 참여한 작가 5인이 모두 흑인이라는 점 또한 눈길이 간다. 최근 상업사진계에서 가장 바쁜 포토그래퍼로 꼽히는 이들은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격동의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이기도 하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블랙 라이브즈 매터*, 2020 미국 대선 등 자국 내 이슈에 공감하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 전시 키워드 ‘내면으로(Inward)’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느껴보는 것 또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오직 아이폰만으로 촬영한 대세 포토그래퍼 5인의 놀라운 작품들을 살펴보자.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 흑인에 대한 경찰의 차별 대응과 과잉 진압에 대항하기 위해 시작된 비폭력 민권 운동

 

 

아리엘 밥 윌리스

Arielle Bobb-Willis

 

Arielle Bobb-Willis, New Orleans 01, 2021. © Arielle Bobb-Willis

패션 사진과 현대미술 사이 그 어딘가, ‘아리엘 밥-윌리스 스타일’로밖에 규정지을 수 없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사하는 작가. 기형적으로 꺾인 관절과 두세 사람이 모호하게 엉킨 포즈는 그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인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한 듯한 사진은 마치 한 폭의 추상화와 같다. 팝한 컬러에서는 내면의 혼돈과 불확실성에 대항하고자 하는 긍정적 분투가 느껴진다.

어릴 적 우울증을 앓던 작가는 스승으로부터 선물 받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암흑의 시기를 환희로 승화시켰다. 2018년에 이어 또 한 번 애플과의 협업을 선보이게 된 밥-윌리스는 특유의 뒤틀린 이미지를 통해 삶의 복잡성에 대해 피력한다. 중고 상점에서 구매한 오렌지색 점퍼를 입고 힘껏 비튼 상체가 눈에 띄는 위의 작품명은 “New Orleans 01”. 지금의 회화적인 화풍에 큰 영향을 끼친 아버지가 계신 뉴올리언스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인생은 계속해서 변하지만, 서로 유대하며 현실에 충실히 머물길 바랍니다.”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지만 그것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스스로의 양면성을 수용하고 기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치유를 상징하는 그녀의 아름답고도 기이한 작품들은 우리에게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퀼 레몬스

Quil Lemons

 

Quil Lemons, Melanin Monroe, 2021. © Quil Lemons
Quil Lemons, Genesis, 2021. © Quil Lemons

 

뉴욕 패션 매거진 업계의 스타 작가 퀼 레몬스. 16세부터 카메라를 잡기 시작한 그는 23세에 배너티 페어(Vanity Fair) 커버 화보를 작업한 최연소 사진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지난 4월에는 제93회 아카데미상 전담 포토그래퍼로 발탁되며 윤여정, 젠데이아 콜먼 등 오스카를 빛낸 스타들을 무대 뒤에서 담아내기도 했다. 흑인이자 동성애자인 레몬스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 작업한다. “세상엔 나를 위한 공간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그 공간을 깎아서 만들죠.” 피부색, 젠더, 남성성, 미···. 그는 보편적인 기준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장을 내민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4점의 자화상은 2017년 “Glitterboy” 시리즈의 연장. 영롱한 조명과 거침없는 표현 방식이 돋보인다. 작가는 스스로의 취약성을 있는 그대로 내보임으로써 온갖 정치적 해석과 사회적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력과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브래드 옥보나

Brad Ogbonna

 

Brad Ogbonna, Paul & Peter, 2021. © Brad Ogbonna
Brad Ogbonna, Stella Ngozi & Brad Ogbonna, 2021. © Brad Ogbonna

 

브래드 옥보나는 사랑의 영원성을 탐구했다. 돌아가신 부친께서 남겨 주신 작은 사진 앨범이 이번 프로젝트의 도화선이 되었다. 아버지의 청춘이 담긴 앨범이었다. 애써 덮어두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헤집다시피 한 이 물건은 그에게 명쾌한 해답보다 더 많은 질문들을 남겼고, 연이어 코로나19 사태가 나이지리아에서 투병 중인 어머니와 그를 갈라 놓았다. 옥바나는 일련의 역경을 겪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했고, 그들을 향해 앵글을 맞추기로 결심했다.

 

작가는 서아프리카의 전설적인 인물 사진가 멜릭 시디베(Malick Sidibé)와 메이사 게이(Meissa Gaye)의 스타일을 오마주한 흑백 가족 초상을 선보인다. 이 사진들은 작가 본인의 존재를 향한 탐구이자, 후손에게 전하는 사랑의 실마리이다. 그래픽 패턴이 돋보이는 배경과 의상으로 모노톤의 매력을 극대화한 점이 인상적이다. 흑백 연구를 통해 새로운 스타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옥보나 작업 특유의 고요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작 웨스트

Isaac West

 

Isaac West, Untitled, from IN LOVE, 2021. © Isaac West

라이베리아 출신의 아이작 웨스트 또한 사랑을 주제로 한 4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연인 나이마(Naima)에게서 영감을 받은 그는 연인, 가족이 있는 일상의 풍경들을 포착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서로의 머리칼을 다듬어 주고, 뺨에 입을 맞추는 순간의 몸짓과 표정은 사랑과 헌신의 개념으로 확대되어 보는 이의 마음에서 공명한다. “제가 창조하는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요. 그래서 제 카메라는 항상 흑인의 피부를 향하죠.” 검은 피부색을 부각하는 구도, 강렬한 색감 대비, 과감한 빛의 사용. 작가는 파인더 속의 요소들을 자유자재로 지휘하여 의미를 함축한다. 개념 예술과 미니멀리즘에서 기인한 역동적 절제미가 작품의 큰 특징. 웨스트만의 감각적인 연출과 본질에 충실한 메시지에 몸을 맡긴다면 누구나 즐거운 감상 경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제네바 아두아욤

Djeneba Aduayom

 

Djeneba Aduayom, Invisible Walls, 2021. © Djeneba Aduayom

 

과거 무용수의 꿈을 꾸던 제네바 아두아욤은 예기치 못한 부상 이후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체의 형태와 움직임에 대한 이해는 훌륭한 초석이 되었다. 사람의 몸을 하나의 오브제처럼 인식한 화면 구성과 섬세한 디렉팅으로 무대를 꾸미듯 사진을 찍는 아두아욤. 그녀에게 사진은 “눈으로 보는 시”와 같다. 은유와 상징이 가득한 만큼 감상자의 적극적인 해석이 요구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몰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위의 작품 “Invisible Walls”는 작가의 자기 초상.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관객과 눈을 맞추고 있다. 그녀는 팬데믹이 가져다준 외부의 혼란이 아닌 내면의 정적에 집중했고, 이를 통해 발견한 확신을 작품에 녹여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모자의 엉성함, 팽팽하게 늘어난 천의 긴장감. 사진 속 여러 질감의 대비는 절망과 맞서는 심리적 투쟁을 의미한다.

 

 

사진은 현실을 투영하고 내면을 투사한다. 기록과 치유의 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 사진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다섯 명의 포토그래퍼. “INWARD : Reflections on Interiority”는 9월 24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약 4개월간 진행된다.

 

윤이정

자료 협조 ICP

장소
79 Essex Street, New York, NY 10002
일자
2021.09.24 - 2022.01.10
링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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