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나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평소 패션을 좋아하던 그녀는 알음알음 바느질을 배워 패브릭을 주재료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술관을 표현하는 매체는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2016년 을지로 인쇄공장 골목 깊숙한 곳에 있던 작업실을 야간에만 개방하여 개인전을 개최한 적 있는데, 밤이 되면 굴뚝까지 고요해지는 을지로의 풍경을 배경으로 실내와 실외를 넘나드는 조각을 전시했던 경험을 지금과 같이 주목받는 미술 작가가 될 수 있던 결정적인 계기로 꼽는다.
이어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지속해 오던 작가는 지난 10월 12일부터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아트앤초이스’에서 개인전 <한나 플래시드 댓(Hannah Flashed That)>을 개최 중이다.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제목을 차용한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조명되었던 패브릭 조각을 포함하여 회화 작품 약 스무 점을 공개한다. 우한나 작가에게 이번 전시의 의미를 물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 아이디(@hannah.flashed.that)를 전시의 제목으로 차용한 이유가 궁금하다.
나의 인스타그램에서는 완성된 작업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 생기는 흥미로운 사건과 관련한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다. 창작자로서의 고뇌와 기쁨을 느끼는 순간도 포함이다. 이렇듯 특별한 영감에 의해 작업을 지속하는 작가 우한나가 아닌, 일상에서 언제나 작업 중인 작가 우한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깨 힘을 좀 빼고, 부담도 내려놓고 싶었다. 힘주어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던 과거 작업에 비교해 조명이 덜 되었던 드로잉이나 회화 작업도 공개하고 싶었다.
그중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가장 신작인 <밸런싱(Balancing)>을 언급하고 싶다. 나는 올해 상반기 내내 단단한 재료의 추상 조각을 만들고자 여러 시도를 했었다. 형태는 구현이 되었으나 그 조각이 기립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조각이 스스로 서기 위해선 조각보다 큰 좌대가 조각 전체를 받친다든가, 조각 속에 심봉이 있거나, 그 심봉 자체가 조각을 뚫고 나와 지지대로 역할해야 했다. 혹은 천장에 연결된 낚싯줄로 조각을 묶어 놔야 했다. 이러한 경험을 하고 나니 내가 상상했던 조각의 모습이 결코 현실화될 수 없는 일종의 풍경이자 상상화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Balancing”은 내가 상상한 조각의 모습을 최대한 실제화하고자 한 회화 작업이다. 이 작업을 시작으로 그간 내가 종이 위에 열심히 그린 연필 드로잉을 시리즈로 표현할 생각이다.
설치 미술, 조각, 회화와 같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창작 활동의 원천은 무엇인지?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 나 역시 드로잉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종이 위에 연필로, 펜으로, 혹은 붓으로 그리는 것을 드로잉이라고 하지만 어떠한 감각을 유지한 상태에서 천을 오려내는 것도 드로잉이다. 어떤 형상을 떠올리거나, 때로는 그 추상적인 형상도 떠올리지 못한 채 의심과 확신을 오가며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을 나는 영감의 원천이라 부르고 싶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나의 손과 내가 지닌 감각에 맡겨버리곤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G밸리 산업관의 개관전이자 단체전인 <내 일처럼>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다. 일본 교토의 츠타야(TSYTAYA) 서점에서 열리는 작은 조각전 “OBJECT”에도 참여한다. 연말에는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와 2021년을 함께한 작가들과 야외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천막 형식의 작업을 차근히 해보고 있다. 겨울 바람을 머금고 펄럭거릴 패브릭 작업을 기대해 달라.
글 신은별
자료 협조 아트앤초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