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이 설계공모를 진행했다. 당시 10여 팀이 안되는 건축사사무소가 공모했고 코어건축사사무소가 당선되었다. 한창 설계를 진행하던 와중에 이 사건이 기사화되었다. 토론회 현장에서 우리 아이가 다닐 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무릎을 꿇었던 발달 장애아 학부모의 모습이 보도되었고 반대하는 일부 주민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진행된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유종수 건축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학교를 짓는다는데 왜 반대를 해, 지어야 한다고 찬성하는 주민도 있었어요. 주민들은 각자 상황에 따라 여러 의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갈등을 무조건 선악의 대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실제로 영화는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현상 이면에 ‘주거 정책의 실패’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서울서진학교가 들어선 대지에는 폐교한 공진초등학교가 있다. 1990년대 초 가양동 일대가 개발되며 영구임대 아파트와 함께 들어선 학교로 2013년에 폐교했다. 서울 한가운데 있는 학교가 학생이 없어 폐교했다? 인구 고령화로 서울에도 폐교하는 학교가 하나 둘 생기고 있지만 공진초등학교가 폐교한 것은 임대 아파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주변 분양 아파트 주민은 자신의 자녀를 임대 아파트에 사는 학생과 같은 학교에 보내길 꺼려 했다. 서진학교 서립을 반대한 목소리와 폐교한 공진초등학교는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 공화국 현상이 만들어낸 2021년의 민낯이다.
Interview with 유종수, 김빈
코어건축사사무소
‘우리는 보편적인 특수학교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 깊습니다.
유종수) 몸의 불편함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어요. 나와 나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이 언제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일 뿐이죠. 우리는 특수학교를 특별하게 생각하기보다 사회의 필요에 의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교육 공간으로 바라보았어요. ‘특수’라는 단어를 빼고 일단 학교에서 출발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그래서 보통의 공립학교처럼 붉은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단지 여기에 몸이 조금 불편한 아이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여러 장치를 생각했어요.
초등학교에서 전공과 과정까지 총 28학급에 이르는 장애 학생들이 함께 배우며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어떤 학생은 14년 가까이 한 학교에서 지내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이 학교는 작지만 어마어마한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김빈) 맞아요. 초등학생으로 입학한 학생 입장에서 보면 14년을 한곳에서 생활하는 것이니 더 큰 책임감으로 임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린아이가 성인으로 자라 학교를 떠나는 것이니까요. 교실이 공부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학교의 보호 아래 직접 경험하며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안전한 장소로 인식되기를 바랐어요. 이를 위해 기존 공진초를 이용해 신축되는 교사동을 중정을 갖는 구조로 계획해 순환형 동선을 갖도록 했고. 중정의 외부공간은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구조물의 높이와 형태를 정하기도 했어요.
ㅁ자형 중정을 갖고 있는 학교 건물로 화제가 되었어요.
유종수) 이런 형태의 중정을 가진 건축물은 많은데 학교에 많이 사용되지 않는 형태라 특이하게 생각하실 수는 있겠어요. 중정을 만들어야 했던 여러 조건이 있었어요. 이미 폐교된 학교와 증축하는 교사동, 신축 교육 시설이 이어져야 하는 상황이라 가운데에 중정을 두고 순환형 동선을 갖도록 배치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죠.
김빈) 교실 외에도 음악실, 과학실, 전공실 등이 필요한데 학년별로 교실과 이러한 장소를 같은 층에 두려 노력했어요. 효율성을 생각하면, 관리자 중심으로 설계할 수밖에 없지만 이곳에서는 그와 달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죠. 일반 학교는 관리가 용이하도록 유사한 용도의 실들을 가까이에 배치하는데 이곳은 학생들이 건물 외부나 수직으로 이동하는 것을 줄이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혹여 길을 잃었을 경우에도 위아래로 이동하는 것보다 순환형 동선이 더 안전하니까요. 순환형 동선은 여러 이유로 택한 구조예요.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고 최선의 결과물을 찾아내는 것이 건축가의 일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번 프로젝트에 주어진 조건 중 어려웠던 점,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빈) 기존 공진초등학교 일부를 이용해 설계하다 보니 제한사항이 많았습니다. 여느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층고와 공사비, 규모, 공사기간 등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사항이 없었죠. 특수학교를 위해 필요한 제반 사항이 있지만 예산은 일반학교와 다름없이 책정되었어요. 이후에 일부 증액되었지만, 설계 이후에 결정된 일이라 설계에 반영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습니다. 보통 학교를 지을 때 평당 공사비가 5백만 원 대로 책정되어 있는데 이는 매년 발표하는 표준 주택 공사비보다 못 미치는 금액이에요. 다행히 변화 조짐이 보이지만 학교 건물은 무조건 빨리, 싸게, 짓는다는 생각이 여전히 견고합니다.
전국의 학교 건물이 하나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평면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예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유종수) 그것도 영향을 미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어요. 67.5㎡(20평가량)는 반세기 동안 교육공간이 만들어지면서 모듈화된 실의 단위입니다. 한 반에 학생이 5~60명일 때도, 2~30명일 때도 지침을 따르는 교실의 크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죠. 교육 제도는 수차례에 걸친 변화가 이루어져 왔지만, 학교 공간은 왜 과거에 머물러 있을까요? 수많은 학교 공간들이 획일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지켜야 하는 규정이 과거와 똑같이 존재하기 때문이고요. 이렇게 정해진 실의 단위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는 교실을 남향으로 쭉 배치하고 나면 그 앞에 운동장 공간이 나옵니다. 어디서나 봄 직한 학교 건물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김빈) 학교는 지역 사회에서 중요한 시설입니다. 학부모의 경우 학교 건물이 기존과 조금만 달라도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래서 학교의 설계 공모 프로그램을 보면 실의 크기와 가로와 세로 비율 대부분이 같아요. 학교 건물이 바뀌려면 교육 철학이나 정책과 맞물려야 해요.
각 층에는 파드(POD)*라는 공간을 두었어요.
김빈) 중정을 향해 유선형 모양으로 튀어나와 있는 공간들로 층마다 2개씩 계획했어요. 수업 공간의 연장인 동시에 교실 외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들을 담을 수 있는 이벤트 공간이죠. 보통 미술 수업 후에 작품을 교실 뒤쪽으로 걸어 두곤 하는데 이곳에서 학년 단위로 전시하거나 작은 음악회를 열 수도 있을 테고요.
* 건축물에서 덧붙이는 어떤 여분의 공간을 일컫는 용어
중정 내부에서 바라보면, 파드 공간 덕분에 조형적으로 신선한 느낌이 들어요.
유종수) 기능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공간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파드는 복도와 연결되는 부분에서 더 큰 효과를 발휘해요. 복도와 만나는 공간은 크기가 거의 교실 하나와 비등하거든요. 복도와 결합했을 때 제2의 놀이 공간이 될 수 있어요.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경사로를 만들었다면, 이런 설계는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김빈) 건축 설계를 할 때 지켜야 할 법규가 많습니다. 꼭 취해야 할 것은 취하지만, 절충할 수 있는 부분을 절충하며 조절한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였어요. 이 건축물은 내부에 경사로를 만들지 않았어요. 물론 있으면 유용하지만, 그것 대신 희생해야 할 부분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층별로 충분한 대피 공간을 주는 식으로 대응했어요. 경사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보다 2배 정도 되는 넓은 복도와 파드 공간을 둘 수 있었어요.
서진학교가 개교하기 이전 해인 2019년에 나래학교가 문을 열었어요. 서울에서 17년 만에 지어진 특수학교라고 들었어요. 17년이라는 시간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유종수) 서울에 25개의 자치구가 있는데, 그중에 7개의 구에 특수학교가 없다고 해요. 서울시에서 모든 자치구에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2019년 나래학교, 2020년에 개교한 서울서진학교, 그리고 논의 중인 동진학교를 시작으로 모든 자치구에 특수학교를 추가 설립하겠다고 했으니 잘 추진되기를 기다려 봐야죠.
그래도 이번에 서울서진학교가 대상을 수상한 후 특수학교에 대한 인식이 나아졌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김빈) 몸이 불편한 아이를 하루 2,3시간 걸려 학교 보냈던 학부모의 마음을 저희가 어떻게 헤아리겠어요. 다만 특수학교를 건축하기 이전에 특수하다는 인식이 지닌 편견을 버리려 노력했고, 그것이 조금이라도 전달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수요에 비해 특수학교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해요. 서울서진학교가 하나의 출발점이 되어 앞으로 지어지는 학교가 마주할 문제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두고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사실 유니버설 디자인은 특수학교뿐 아니라 어떤 장소라도 적용이 되어야 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김빈) 유니버설 디자인은 말 그대로 남녀노소, 언어와 장애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죠. 이번 프로젝트에서 장애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이곳에서 함께 생활하는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것이었어요. 초등학생부터 중, 고, 전공과 학생까지 발달 장애와 성장 정도가 다른 학생들이 생활하는 곳이니 이들을 담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편리한 디자인을 여러모로 연구했어요. 벤치의 세면대의 높낮이를 다르게 하고 휠체어에 탄 친구들이 화초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플랜트 박스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학교의 일부를 주민들의 편의 시설로 돌려준다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진행 상황은 어떤가요?
김빈) 현재 공진초등학교를 지역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하여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공모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것이 완공되었을 경우에는 학교를 보다 개방하고 지금의 풍경과는 달라지겠지만 현재는 외부에 개방하지 않았어요. 지역주민과 공존하는 학교라는 표어는 근사하지만,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일반인이 들어왔을 때 사고의 위험이 있을 수 있고. 관리하는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특히 어려운 일입니다. 학부모의 입장, 실제 운영자, 교육청의 입장이 모두 다른 사안이죠.
유종수) 지역 주민과 체육시설을 공유하는 고등학교 사례도 존재하지만 이는 애초부터 외부인과 학생의 동선을 분리해 설계한 터라 서진학교와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그래도 지역민에게 개방하는 방법을 조금씩 찾아갈 수는 있을 거예요. 현재 서진학교 1층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전공과 학생들이 커피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고요. 이러한 공간을 조금씩 개방하고 안전장치를 두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앞으로 특수학교 설계 공모에 응할 건축가들도 있을 텐데요, 그들에게 도움 될 만한 내용을 전달해 주세요.
유종수)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도 다 같은 장애가 아니기 때문에 공모 프로그램에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면 설계에 더욱 용이할 거예요. 나래학교는 지체장애, 서진학교는 발달장애 학생을 위한 공간이었어요. 발달장애 학생들은 심리적인 변화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신체활동에는 무리가 없는 친구들이에요. 이러한 특성에 맞춰 몇 가지 방향성을 도출할 수 있었어요. 앞서 말한 경사로 대신 복도를 넓히고 넓은 복도에는 무지개 컬러의 지시선을 두고 노란색, 빨간색 등 층별로 넓게 차지하는 컬러를 배치해 유사시에 대피 방향이 될 수 있게 했어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아늑한 중정을 두고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이용해야하는 점을 생각해 구조물의 높이와 형태를 정했습니다.
설계 유종수, 김빈 (CoRe Architects)
구조 ㈜김앤이구조
토목 CG E&C
기계/전기 하나기연
에너지/BF 에코다
시공 ㈜대들보건설
조경 그람디자인
설계팀 [CoRe] 김현수, 안치완, 이동민 / [Graft Object] 김윤환
건축주 서울특별시 강서양천교육지원청
사진 이택수/ 하스 스튜디오
글 김만나
사진 협조 코어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