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3

예술과 식물 러버들이 모인 편의점

연희동 정음철물에 등장한 루비마트.
“여기 식물 파는 것 같은데?” 연희동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기웃거리는 오래된 한 철물점. 낡은 간판 아래 작은 공간에 수상한 가게가 들어섰다. 푸릇푸릇한 식물들과 다채로운 그림들로 단장한 화분, 감미로운 노래가 한데 어우러진 이곳의 정체는 바로 식물편의점, ‘루비마트’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상냥한 사장님은 오늘도 식물 러버들을 향해 손짓한다. “사러가마트 옆 루비마트로 오세요~!”

 

식물편의점 루비마트는 친환경 종이 화분 브랜드 ‘루비(RUBY)’가 리뉴얼을 앞두고 오픈한 팝업 전시이다.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모인 9팀의 아티스트와 7개의 브랜드가 식물을 둘러싼 각자의 취향을 가감 없이 뽐내며 예술과 식물이 어우러진 전시를 꾸렸다.

 

 

루비는 자연과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일상을 위해 플라스틱이 아닌 친환경 종이 소재를 활용한 실내 가드닝 제품을 소개하는 브랜드로, 지구를 아끼고 예술을 사랑하는 손길로 반려식물에 아기자기한 옷과 집을 선물한다. 돌가루 파우더를 활용한 미네랄페이퍼로 만들어진 화분은 전개도 형태로 판매되어, 직접 조립하면 마치 보석 같은 기하학적 형태로 탄생한다. 생기를 더하는 세련된 원색 컬러는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번 팝업의 더욱 특별한 비하인드는 <퇴사는 여행> 등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자 프리랜서 마케터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정혜윤 마케터가 오롯이 기획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루비의 하주미 대표와 깊은 인연이 있다고. 예전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두 사람은 식물을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모였다. “혜윤아,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오직 서로를 믿는 마음과 식물과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이 전시를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두 사람을 만나 그들이 나누는 유쾌한 대화를 함께 들어보았다.

 

Interview with 하주미, 정혜윤

루비 대표, 마케터

 

정음철물이라는 공간을 전시 장소로 택하게 연유가 있었나요?

혜윤 우연의 요소가 있었어요. 원래는 어반플레이가 운영하는 다른 공간에 대관 문의를 했는데, 그쪽에서 ‘정음철물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여긴 어떠세요?’ 하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살펴봤는데 더 마음에 들었어요. 공간에 이미 있던 작업복, 삽 등의 물건들이 식물편의점이라는 콘셉트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간판을 그대로 살려서 자연스러운 연출을 할 수 있었고, 연희동이라는 위치도 좋았어요.

 

 

식물편의점이라는 콘셉트를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나요?

혜윤 대표님께서 ‘식물편의점’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마자 저는 오! 하고 꽂혔어요. “이거다, 이거!”

주미 예전부터 편의점 관련된 콘셉트를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되게 쉽고 재밌잖아요. 편의점이란 온갖 다양한 것들이 있어 누구나 와서 마음에 드는 걸 사갈 수 있는 공간이니까요.

혜윤 ‘식물편의점’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다른 아이디어들이 술술 쏟아졌어요. 루비가 종이 화분이니 여기에 아티스트들이 그림을 그려서 전시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이미 발달장애인과 아이들의 그림으로 전시한 적이 있더라고요. 저도 브랜딩, 마케팅을 하고 있으니까 루비가 아예 하나의 플랫폼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예전에 같이 BX팀에서 일했다 보니 생각의 흐름이 비슷한 것 같아요. 루비가 눈에 띄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루비를 통해 서로 연결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식물편의점은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다가올 있는 곳이네요.

혜윤 편의점이 쉽고 재밌는 공간인만큼 저는 루비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엄청 고급스럽고 비싼 화분이 아니라 내가 직접 접어보며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죠. 식물을 처음 키우는 사람도 화분에 넣기만 하면 되잖아요.

주미 식물 초보자분들을 위해 이런 제품을 개발했어요. 토분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느껴지는 무게감 같은 게 있잖아요. 따뜻하고 가벼운 종이로 식물과 쉽게 만날 수 있었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크리에이터와 브랜드들이 어떤 기준으로 함께 모였는지 궁금해요.

혜윤 다들 식물편의점이라는 콘셉트를 듣고 ‘재밌겠다’고 해 주셨어요. 라인업을 조금만 말해줘도 ‘(이 분이 참가하신다면) 어, 네!’ 하시면서(웃음). 우선 떠올렸던 분이 예진문 님이었어요. 워낙 팬이기도 하고, 식물을 사랑하면서 공간을 잘 연출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예진문 님을 팔로우하고 있는 분들도 대부분 식물을 좋아하시잖아요. 다른 8팀의 아티스트 분들과는 루비 화분의 커스텀 작업을 함께 했어요. 다들 저희가 좋아하는 작가들이고, 식물을 많이 그려왔던 분들이세요. 계속 염두한 건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주미 커스텀된 화분에 그들의 식물 취향이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져요. 식물에 옷을 입히면서 식물과 교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루비마트 관람 포인트

 

1. 예진문과 마리아의 화가의

예진문이 연출한 쇼윈도 앞 화가의 방

 

루비마트 안에는 두 화가의 방이 있다.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쇼윈도 앞에서 반기는 60대 보헤미안 화가의 방은 오티에이치콤마(Oth,)의 대표이자 크리에이터 예진문의 손길로 탄생했다. 시골에서 살고, 꽃을 좋아하며 허브를 직접 재배하는 60대 보헤미안 화가의 방이 콘셉트. 고풍스러운 꽃무늬 의자가 놓인 곳에 담쟁이 식물들과 화분이 도처에 널려있다. 이젤 위에는 예진문의 감성을 담은 밤바다의 윤슬을 그린 그림이 놓여있고, 식물과 정원에 관련한 고서적들이 세월의 흔적을 품고 쌓여있다.

 

마리아 X 정혜윤의 취향이 가득 담긴 화가의 방

 

안쪽에는 마리아 작가와 정혜윤 마케터가 함께 꾸민 아늑한 공간이 펼쳐진다. 두 사람의 공통된 취향 ‘식물’과 ‘오래된 것’들을 활용해 각자 가져온 소품들과 마리아 작가의 물감, 작업 도구들로 화가의 작업실을 완성시켰다. 붉은 벽돌 위를 장식한 마리아 작가의 식물 그림 덕분에 숲 속 아늑한 오두막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문 틈 어딘가로 들어온 고양이가 앉아있다 갈 법 하다.

 

2. 아티스트의 커스텀 루비 화분

 

(왼쪽부터) 마리아, 오수, 순이지

 

다양한 장르로 활동 중인 아티스트들이 각자만의 스타일로 루비의 화분을 꾸몄다. 먼저 공간 연출에도 참여한 마리아 작가는 제주, 한강 등 좋아하는 자연 풍경을 추상적으로 담아냈다. 이끼를 주제로 작업하는 오수 작가는 모서리에 이끼가 낀 루비 화분을 연출했고, 순이지 작가는 위트 있는 캐릭터와 말풍선으로 유머 있는 장면을 그렸다.

 

(왼쪽부터) 임진아, 한주원, 설동주
영민
모스그래픽

 

임진아 작가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아기자기하고 간결한 드로잉으로 담아냈다. 또한 직관과 상상으로 추상적인 패턴을 입힌 한주원 작가와 집 앞 마당에서 마주한 잡초들을 그린 설동주 작가, 다양한 질감이 느껴지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콜라주한 영민 작가, 그리고 석윤이 디자이너가 론칭한 그래픽 스튜디오 ‘모스그래픽’은 자연의 생기를 담은 컬러와 도형 그래픽으로 개성 넘치는 화분을 꾸몄다.

 

3.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 제품들

 

(좌) 에디션덴마크 (우) 앱센트
(좌) 영민 작가의 엽서와 스티커 (우) 모스그래픽 행잉플랜트 엽서

 

식물편의점인만큼 루비 뿐 아니라 식물을 모티프로 전개하는 다양한 브랜드들도 모였다. SEELOOKWATCH의 ‘Mountain and Sea’ 블랭킷과 에디션덴마크의 차, 식물에 관련한 이름으로 향 라인을 구성하는 앱센트의 제품과 아침에서 얻는 영감을 다룬 매거진 ‘Achim’도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화분 커스텀 제작에도 참여한 모스그래픽의 식물 패턴 표지 노트와 행잉플랜트로 연출할 수 있는 엽서, 오수 작가의 이끼 코스터, 영민 작가의 엽서와 스티커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북노마드에서 출간한 정혜윤 작가의 <독립은 여행> 책도 구비되어 있다.

 

(왼쪽부터) 무과수, DJ 모과, 루비의 플레이리스트. 루비마트 인스타그램 프로필 링크에서 확인 가능

 

이번 식물편의점을 위해 특별한 플레이리스트도 준비했다면서요.

혜윤 마리아 작가님 공간에 놓인 LP인 ‘Mother Earth’s Plantasia’는 전자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 모트 가슨(Mort Garson)이 1970년대에 식물을 위해 만든 음악이에요. 저희가 정말 좋아해서 그것만 계속 틀다가 무과수 님과 DJ모과 님과 함께 곡을 꾸리고 싶었어요. 무과수 님은 집을 가꾸고 식물을 잘 돌보는 분인데 선곡도 잘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DJ모과 님은 전자음악 하시는 분인데 제가 산 그 분의 LP 곡 전체가 생태공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들이에요. 무과수 님은 <나의 반려식물에게>라는 테마로 자신이 식물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선곡해,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고 식물에 물 줄 때 듣기 좋은 음악들로 구성되었어요. DJ 모과 님의 곡은 촉촉하게 수분을 머금은 흙 위에서 식물들과 대화하며 함께 들으면 좋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웃음) 두 분의 색깔이 각자 다르면서도 일관성이 느껴져요. 세 번째는 저희 멤버들이 직접 선곡한 플레이리스트랍니다.

 

 

일을 하시다가 루비라는 친환경 종이 화분 브랜드를 만들게 계기가 무엇인가요?

주미 원래 창업하고 싶다는 마음은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자원 봉사를 하다가 자연스레 식물 쪽에 관심이 생겼어요. 화분의 재질로 종이를 선택한 이유는 콜라보를 염두했기 때문이에요. 종이는 쉽게 인쇄하고 제작할 수 있으니 다양한 색을 입힐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루비가 이런 비전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공감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함께 협업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죠. 또 식물 하면 흔히 떠오르는 제품이 아닌 새로운 걸 만들어 고정관념을 깨고 싶기도 했어요.

 

 

루비가 제안하는 식물 가꾸는 삶은 무엇인가요?

주미 쉽게 부담감 없이 접하는 동시에 재미가 있으면 좋겠어요. 또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즐길 수 있었으면 하고요. 사실 일반 화분에 비해 번거로움은 있어요. 접기도 해야 하고 조립도 필요하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과정에서 내가 반려 식물을 위해서 뭔가를 해 준다는 느낌이 들고, 식물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스토리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식물도 관계라고 생각해요. 저도 식물로부터 위안을 받은 적이 있고. 다른 사람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한 가지는 개성이에요. 어느 집에나 다 있는 것 말고 유니크한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화분은 식물이 머무르는 공간이잖아요. 어쨌든 식물이란 내가 살지 않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이니, 이 아이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멋있게 만들어 주자는 마음이에요.

 

 

이번 루비마트라는 콘셉트로 진행한 팝업으로 느낀 있다면요?

주미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이번엔 ‘루비마트’라는 콘셉트 안에서 식물편의점을 진행했지만, 마트는 라이프스타일과 밀접해서 모든 것과 연결될 수 있잖아요. 그렇기에 이 콘셉트로 다른 것들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꿈꿨던 협업이 가시화되는 게 너무 신기해서, 앞으로도 계속 해 보고 싶어요.

혜윤 둘 다 식물을 좋아하는데, 그냥 좋아한다는 마음으로도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이디어도 막 짜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모였고, 그저 저희가 좋아하는 것들이 명확한 기준 없이 모인 느낌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진짜이고 그게 공간에서도 드러나니까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주미 제가 이제까지 해왔던 일 중에 가장 재밌어요. 정말로.

 

 

인터뷰 중 “좋아하는 게 많으면 부족(部族)이 많이 생긴다”라고 말하던 정혜윤 마케터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또 그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또 다른 색깔의 무리가 꼬리 물듯 어우러지면 그 의외의 취향들이 결합하여 더 흥미로운 시너지를 내는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식물편의점은 그야말로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연결되는 곳이다. 서로가 서로의 팬을 자처하며 수줍게 인사를 건네고 다같이 모여 즐겁게 식물을 골랐다는 아티스트들은 식물의 집에도, 정음철물에 잠시 이사 온 루비의 집에도 다채로운 색을 칠한 셈이다. 여러 가지 물건을 만날 수 있는 편의점처럼, 이곳 루비마트는 다양한 취향으로 무장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앞으로도 루비는 좋아하는 것들을 사심 가득 모아, 지구를 아끼고 식물과 예술을 사랑하는 식집사를 위한 또 다른 오브제와 공간들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에 출시된 민트색의 플랜터와 조만간 출시되는 영민 작가와 모스그래픽과의 컬래버레이션 화분은 두 사람이 손수 꼽은 원스리스트. 그 예고편을 엿보고 싶다면 직접 정음철물을 찾아가 보길 바란다. 나만의 반려식물을 위한 귀여운 집 한 채를 마련하게 될지도!

 

 

소원

자료 협조 루비, 정혜윤

장소
정음철물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11길 26)
일자
2021.09.18 - 20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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